박춘태 중국 북경화지아대학교 교수

 

일부 재외공관 직원의 윤리 및 책임의식의 부족, 사건에 대한 불성실한 대응 태세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시스템의 부족·부재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재외국민 안전 강화 및 보호 차원에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해외에 파견된 외교 공무원은 나라의 거울이다. 그러나 최근 칠레 주재 한국 외교관이 현지인 미성년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드러나면서 국제적 망신을 산 일이 있다. 윤리의식을 염두에 뒀더라면 과연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겠는가.

해외에서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을 때 영사콜센터나 재외공관 등에 연락하면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재외공관 직원이 신고자·국민의 입장에서 대처해야 바람직한데 그렇지 않은 사례가 꽤 많다. 올해 1월 12일 대만을 여행 중인 20대 한국 여성들이 현지 택시기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발단은 기사가 건넨 요구르트를 받아 마신 데서 유래됐다. 요구르트에 수면제 성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여성들은 현지 경찰은 물론, 대만 주재 한국대표부에 신고했다. 문제는 신고자가 느낀 한국대표부 직원의 불성실한 태도에 있다.

도움을 요청하고자 현지 한국대표부 직원에게 전화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왜 잠자는 시간에 전화를 하느냐라는 것과 신고 여부는 본인이 알아서 하라고 한 것이었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자국 국민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빠른 시간 내에 신고자들을 만나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해서 처리해야 되는 것 아닌가. 더구나 외국에서 성폭행 피해자가 되지 않았는가. 안타까운 일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공관 직원의 개인적 책임의식 부족도 문제지만 포괄적인 재외공관시스템, 그리고 재외국민보호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이러한 상황을 알지 못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현지 재외공관 대응 능력에 대해 평가절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업무 지침’은 외교통상부 훈령 제110조에 나와 있다. 여기서 보듯 ‘훈령’은 명령 또는 규칙에 해당하므로 법적 강제력이 없다. 제3조 “재외국민보호 업무수행의 기본원칙”에서 ‘재외공관은 국가의 기본의무인 재외국민보호를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재외공관이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여부가 불명확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가급적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적극적으로 재외국민보호 업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으며, 또 제13조 “재외국민의 체포·구금시 조치”에서는 ‘체포·구금된 재외국민이 주재국 국민 또는 제3국 국민에 비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을 주재국 사법당국에게 요청하여야 한다’라고 언급돼 있다.

위 내용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업무 수행 지침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 비춰볼 때 실효성 있는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현지국의 법률과 충돌하지 않게 협조 체제를 공고히 하여 어려움에 처한 재외국민들에게 법적·현실적 타당한 조언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재외공관 공무원들의 소명의식까지 더해진다면 재외공관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탈바꿈할 것 아닌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