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공단 폐쇄 1주기를 맞아 피해 입주기업 대표를 만났다. 왼쪽부터 현진정밀 정지태 대표, ㈜일성레포츠 이은행 회장, ㈜금담 권주욱 대표이사 ⓒ천지일보(뉴스천지)

입주기업 대표를 만나다
폐업신고도 할 수 없는 신세 상당수
가동되더라도 회복기간 상당할 듯
“정부의 제대로 된 보상이 우선 시급”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시계 케이스 제조업체인 현진정밀(대표 정지태)은 완전휴업을 한 11곳 중 하나다. 생산기계가 중장비라 아무 것도 들고 나올 수 없었던 정지태(62) 대표는 1년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기계를 다시 사려고 해도 워낙 고가인 데다 현재 국내에는 제작하는 공장도 없어 그동안 그저 손 놓고 있어야만 했다.

시계 몸통을 제작하는 업체는 국내에선 현진정밀이 유일하다. 전국적으로 시계를 제작하는 업체 70~80곳이 현진정밀과 거래했고, 나머지 업체들은 중국에서 수입했다. 한국산 품질이 우수한 데다 북한의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해 단가를 낮출 수 있었기에 중국의 거대한 시장과 경쟁할 수 있었고, 중국 현지에서도 현진정밀을 가장 꺼리는 경쟁업체로 여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국내 유일 시계 케이스업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이곳과 거래하던 많은 업체들도 어쩔 수 없이 중국에서 다시 수입하고 있다.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인 셈이다.

2005년 개성공단에 첫 입주한 18개 기업 중 하나로 닻을 올렸던 정 대표는 8명의 남한직원과 100여명의 북한 근로자를 고용해 운영했다. 이곳 남한직원들은 정 대표와 함께 20~30년을 동고동락해왔던 기술자들이다. 기술력을 요하는 업종이라 북한 노동자들도 습득하는 데 3~5년 걸려 기능공이 됐다.

현진정밀에 맞는 기술력을 확보했는데, 공단이 재가동되더라도 이들과 다시 일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고, 새로운 노동자들은 또다시 오랜 세월 가르쳐 기술공으로 만들어놔야 한다. 현재 뿔뿔이 흩어져 이직한 남한 직원 역시 정 대표와 함께 또다시 같은 배를 탈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정 대표의 가장 큰 손실은 본의 아니게 거래처와 신뢰를 잃은 점이다. 작년 중단됐을 때가 명절을 앞둔 시점이라 거래처에 물건을 넘겨줘야 했는데, 폐쇄로 인해 제품을 제작할 수 없었고, 현진정밀로부터 제품을 받아야 시계 제작을 할 수 있었던 거래처들은 당장 주문수량을 맞추지 못해 이들 거래처 역시 손실이 매우 컸다.

정 대표는 금액적인 손실보다도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직원들과 그간 신뢰를 쌓아왔던 거래처를 잃은 것에 가장 마음 아파했다. 그는 “20~30년을 함께 근무하던 직원들이 본의 아니게 해고돼 실직자가 됐고, 재가동되더라도 언제 또 중단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 누가 우리를 믿고 거래하려 할지…”라고 말하며 잠시 울컥했다. 1년간 돌리지 못한 기계 역시 걱정이다. 그는 “집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망가지는 것처럼, 기계 역시 사람 손을 타지 못하면 습기 등으로 인해 고장 나기 쉽다. 공단에 있는 기계가 정상 작동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입주 전만 하더라도 자산력이 있었던 그는 폐쇄된 후 막대한 손실을 메우다 보니 은행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폐업신고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이마저도 못하고 있다. 재가동을 기대하며 버텨왔지만, 한계에 달해 작년 10월 직원들을 퇴직처리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저 하루빨리 정부가 보상이라도 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는 “기업마다 노하우와 재산권이 있는데, 터무니없는 지원 금액을 책정했고, 어차피 보상도 아닌 지원금인데 이마저도 다 못 받았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정 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입주기업들이 주는 북한근로자의 임금이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경제민주화를 외쳤던 정부는 오히려 개성공단 입주 중소기업만 죽인 꼴”이라고 현 정부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웃도어를 만드는 일성레포츠(대표 이은행)는 간신히 버티며 생활하고 있었다. 일성레포츠의 이은행(63) 대표는 섬유산업의 하향세로 해외 진출을 모색하던 중 개성공단을 택해 2007년 입주했고, 740여명의 북한노동자를 고용해 섬유산업을 꽃피웠다. 27명이었던 직원들은 현재 4명만 남아 어렵게 물건을 제작하고 있다.

그 역시 갑작스러운 폐쇄로 거래하던 60여개 업체에 물건을 주지 못해 40억원에 달하는 원·부자재 피해가 났다. 더구나 그는 개성공단 폐쇄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최근 동탄신도시 메타폴리스 화재로 친형과도 같은 사촌형을 잃어 유족 대표의 한 일원으로 장례절차, 보상문제 등을 놓고 관리업체 측과 각을 세워 협상을 벌이고 있다. 오산장례문화원 합동분향소에서 만난 그는 “우리 업체는 다행히 거래처들이 나를 다시 믿고 거래를 해주고 있어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거래처를 잃어 피해가 더 큰 입주기업들이 많아 남일 같지 않다”며 안쓰러워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보상 발표에도 정부의 제대로 된 보상과 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탓에 입주기업과 거래처 간 다툼이 발생하는 ‘자중지란’에 문제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이 회장은 “섬유산업이 발전하려면 사실 개성공단만한 생산처가 없고, 값싸고 품질 좋은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해외에서는 상품을 맞추기 어렵다”며 속히 재가동돼 다시 들어갈 것을 바라고 있다.

이와 함께 이 회장은 “우리 입주기업은 민간외교이자 통일의 역군들이기도 하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남북이 교류해야 하며, 개성공단 같은 곳이 더 많이 생겨야 대한민국의 비전이 생긴다. 정부가 진정 통일을 원한다면 경제통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소득수준을 높여 통일의 지름길로 가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티셔츠 등의 의류제작 업체인 ㈜금담(대표이사 권주욱)은 작년 폐쇄 이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로 선회하면서 겨우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지만 손실 역시 적지 않았다. 권주욱(55) 대표는 2007년 입주한 후 5명의 남한직원과 350여명의 북한 근로자를 고용해 개성공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자 국내 공장과 중국 공장을 매각해 개성에 집중시켰다가 손해를 보게 됐다.

권 대표는 올 상반기까진 계속 투자할 계획으로, 개성공단이 재가동되더라도 확실한 안전장치가 생기지 않으면 재입주는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2013년 중단 때도 개성공단 투자를 망설였으나, 정부의 약속만 믿고 진행한 결과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는 “IMF 당시에도 어려움을 겪었으나 잘 일어섰다. 이번 역시 돈은 계속해서 벌어 회복하면 되겠지만, 당시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억울해 화가 나서 화병이 생기는 줄 알았다”며 현 정부에 대한 원망을 잠시 나타내기도 했다.

이어 그는 “개성공단에 출입하면서 북한 노동자들이 같은 민족인데도 생필품이 열악한 것을 보며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하루빨리 통일의 소망을 가져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가 합당한 보상을 해주길 바란다는 의사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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