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음식과 간식들이 즐비한 인천 차이나타운. ⓒ천지일보(뉴스천지)

작은 어촌마을의 화려한 변신
개항이 바꾸어놓은 마을 풍경

우리나라 최초의 ‘짜장면 탄생’
120년 전 근대 역사·문화 간직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중국인 듯 중국 아닌 중국 같은 너.’

이미 영화, TV 드라마, 예능에까지 소개되며 유명세를 탄 인천 차이나타운. 한국과 중국 그 사이 어디쯤 있는 이곳은 이국적이지만 낯설진 않다. ‘한국 속 중국’이라 하기엔 2% 부족하다. 관광객을 겨냥한 먹거리나 상품 판매 위주라 사실 중국 옷을 입은 ‘관광지’에 가깝다. 하지만 화려한 외면 뒤엔 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이 많다.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 있다. 120여년 세월을 따라 함께 변화해온 차이나타운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추억의 음식, 짜장면. 졸업식 시즌인 요즘 더 많이 생각나게 한다. 졸업식이 끝나면 온 가족이 외식음식으로 짜장면을 많이 선택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추억의 짜장면, 그것이 알고싶다

매서운 겨울 날씨가 풀린 지난 3일 지하철 1호선 끝, 인천역을 나왔다. 크고 화려한 패루가 차이나타운으로 안내했다. ‘패루’는 중국인들이 큰 거리에 세우던 문을 말한다. 도시에 아름다운 풍경을 위해서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세웠다.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중국거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됐다. 인천 차이나타운 곳곳에 세워진 패루 역시 위용을 뽐내며 중국 느낌을 더한다.

패루를 통과하면 오르막길이 펼쳐진다. 거리가 온통 붉다. 간판도, 가로등도, 노점상도 온통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 색이다. 거리 곳곳에는 중국음식점들이 길게 들어서 있다. 차이나타운을 가장 ‘중국’스럽게 만들어주는 부분이다.

집 주변에서 들어봄직한, 익숙한 중국음식점 이름은 이곳에 다 모여 있다. 공화춘, 연경, 만다복, 자금성, 중화원….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들 가게에는 손님들이 가득했다. 평일인데도 테이블마다 북적댔고,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들어갔다. 주말에는 줄을 서서 기다렸다 먹을 정도란다.

수많은 가게 중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중 이색적인 짜장면에 끌렸다. 바로 ‘하얀짜장’.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주문했다. 짜장면의 상징인 검정 대신 노란 빛깔의 짜장면. 처음 보는 비주얼이지만 맛은 익숙한 그 맛이다. 검은 춘장 대신 중국 된장에 고기를 볶아 만든 소스를 부었다. 처음이더라도 익숙한 그 맛에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 인천 차이나타운의 이색 음식. 하얀짜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우리에게 친숙하고 편안한 음식, 짜장면. 우리나라 짜장면의 역사는 약 120년 전 시작됐다. 차이나타운 짜장면 박물관에서는 이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짜장면이라는 테마 하나만으로 박물관을 가득 꾸몄다. 짜장면이 한국에 들어오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짜장면의 ‘기특한 성장기’가 펼쳐져 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군대를 따라 화교 상인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산둥성에서 온 이주자들, ‘쿨리’라 불리는 노동자들을 위해 값싼 음식이 만들어졌다. 가난한 이들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삶은 국수 위에 춘장을 부어 만든 음식. 우리나라로 치면 밥에 고추장 비벼 먹는 셈이다. 그게 짜장면의 첫 모습이었다.

차이나타운의 유래도 그때쯤이다. 그 뒤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게 각종 채소와 고기가 추가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

1960년대 쌀 한가마니에 3010원이던 시절, 짜장면은 15원이었다. 이후 1970년대 140원, 1980년대 350원으로 물가가 오르면서 짜장면 가격도 올랐지만 그래도 짜장면은 서민음식이었다. 외식이 흔하지 않던 시절, 졸업식이 끝나면 가족이 함께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그래서인지 짜장면에서는 정겨움이 묻어난다. 박물관에서 검정 교복을 입은 학생과 엄마, 아빠가 졸업식을 마치고 함께 둘러 앉아 짜장면을 먹는 모습의 전시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리라. 또 짜장면 하면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손때 묻은 철가방도 무척 반가웠다.

차이나타운을 돌다보면 다양한 중국 간식을 만날 수 있다. 포춘쿠키, 월병, 홍두병, 공갈빵 등이 곳곳에서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신기한 먹거리에 지나가던 이들이 발걸음을 멈춘다.
 

▲ 인천개항박물관. 근대 개항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근대문화의 길목, 인천

인천 곳곳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독 많이 붙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항지로서 근대 문화의 길목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물 건너 온 서양문물이 첫발을 디뎠고, 근대 건축양식을 입고 건물이 처음 들어섰다. 차이나타운 지척에 있는 개항박물관과 개항 근대건축박물관은 이 같은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미처 몰랐던 120여년 전 역사, 과거의 그 순간을 더듬어 가볼 수 있다.

1883년, 제물포항이 외세에 의해 강제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부근에 조계지가 설정됐다. 조계지는 일정한 지역 범위 안의 외국인 전용 거주지역을 말한다. 청국(중국) 조계지와 일본 조계지, 그리고 서구 열강의 공동 조계지가 들어섰다. 치외법권이었던 터라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어 이들을 위한 도시계획이 세워지고, 이들이 사용할 건축물이 들어섰다. 최초의 근대식 호텔, 공원, 학교, 철도, 화폐, 우편업무 등이 시작되면서 작은 어촌마을은 어느새 이국적인 풍경으로 탈바꿈했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도 당시 일본 18은행지점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일본이 한국의 금융계를 지배하기 위해 나카사키에 본점을 둔 은행이 1890년 문을 열었다. 현재는 그 자리에서 근대 건축물의 모형과 사진, 그리고 자료 등을 전시하며 당시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많은 건축물들이 소실돼 사진과 모형으로밖에 만나지 못하지만 일본우선주식회사, 일본58은행, 답동성당, 제물포구락부 등 현존하는 근대건축물도 마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 인천 차이나타운을 걷다보면 송월동 동화마을이 나온다. 특히 아이들과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마을 전체를 동화속 배경으로 꾸며 놓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동화 속에 온듯 아기자기한 마을

최근에는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관광객들을 모으기 위한 전략으로 마을이 꾸며지고 있다. 부근에 들어선 송월동 동화마을이 대표적이다.

“엄마, 이건 엄지공주.” “이 얘 이름은 뭐였지? 아 맞다, 팅커벨.” 마을 전체를 동화 속에 들어온 듯 꾸며놓았다. 동화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배경으로 벽화가 가득하다. 상점은 물론 빌라, 유치원, 마을회관, 계단에 이르기까지 빈틈없이 동화로 채웠다.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전봇대, 가로등까지 나무 등으로 변신해 마을 전체적으로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특히 아이를 둔 가족 단위나 연인들에 인기가 많았다. 마을 곳곳에 세워진 포토존에서 저마다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최근 차이나타운에는 또 다른 새로운 풍경이 생겨났다. 지난달 24일 한국에 출시된 포켓몬고(Go) 영향이다. 게임에 필요한 아이템을 주는 포켓스탑이 많이 있고, 포켓몬이 많이 출현하면서 핫플레이스가 됐다. 휴대폰을 응시하며 삼삼오오 모여 포켓몬 사냥에 나선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 차이나타운에서 더 올라가면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이 있는데, 이곳은 운동하는 노인 반, 포켓몬고 하는 학생들 반이었다. 게임이 바꿔놓은 인천 차이나타운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작은 어촌마을에서 근대문화 역사의 현장으로, 그리고 관광지로서 우리네 삶과 함께 변신을 거듭해온 차이나타운. 역사와 문화를 읽으며 마을 한 바퀴를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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