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박상천(1955~  )

수서 분당간 고속도로의 초입에
담을 타고 넘어온 능소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높은 소음차단벽을 타고 넘어올 정도로
이쪽 세상이 많이 궁금했나 봅니다.
웅웅거리는 소리는 들리는데,
대체 무슨 소리일까?
궁금하기도 했겠지요.

뿌리내린 세상과 꽃을 피운 세상이 다른,
참 특이한 주황의 꽃이
담 너머 또 다른 세상을 넘겨다보고 있습니다.

당신이 참 좋아했던 꽃 능소화.
당신, 딸과 남편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넘겨다보고 있나요?

 

[시평]

한여름 더위 속에서 주황색으로 피는 꽃, 능소화는 그 뻗어나가는 넝쿨들과 함께 여름을 탐스럽게 장식해주는 꽃이다. 무엇을 찾아서, 혹은 무엇이 보고 싶어서인지 넝쿨은 여름 내내 자라고 자라 마침내는 담장이나 나무를 휘감고, 마침내는 그 넘어, 담장 밖으로까지 얼굴을 내어민다.

이와 같은 꽃이 지닌 속성과 함께, 능소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내 죽어 꽃이 되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담장 너머로 오고 있을,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보고 싶어, 넝쿨을 뻗어 담장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고 한다. 

수서 분당 간 차들이 쌩쌩이며 달리는 고속도로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하여 설치해 놓은 담장, 그 너머에서 넝쿨을 타고 능소화가 고속도로 안쪽으로 얼굴을 내밀 듯이 피어 있다. 뿌리 내린 세상과 꽃을 피운 세상이 다른, 그래서 차들이 내달리는 그쪽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궁금해서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바라보듯이, 능소화가 그렇게 담장 너머로 피어있다. 담장 너머 다른 세상으로 먼저 떠난 당신. 오늘도 이쪽의 딸과 남편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이렇듯 넘겨다보고 있나요? 세상은 다만 웅웅거리며 내닫는 차들로만 가득한데도.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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