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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직업들-③뱃사공] ‘동동’ 나룻배 타고 강 건너 농사짓고 장보고
장수경 기자  |  jsk21@newscj.com
2017.02.09 08: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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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달은 직업을 변화시켰다.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는가 하면, 많은 직업이 하나둘씩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는 사진 속,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추억의 직업들. 그 시절을 살았던 세대에겐 아련하고, 젊은이에겐 그저 신기한 모습일 수 있다. 하지만 그때가 있었기에 현재도, 미래도 존재하는 법. 이와 관련, 역사 속으로 사라진 추억의 직업을 알아봤다.

 

   
▲ 대동강 나룻터 (출처:국립민속박물관)

교량 발달 전까지 중요 교통수단
뱃삯, 낮보다 밤에 더 많이 받아

강 낀 마을 사람, 배 타고 통학
‘큰 배’ 우두머리인 도사공 둬

관 설치한 나루터 사공인 ‘진부’
배 뒤집히면 사람 반드시 구해야

서울 주변 1960~70년대까지 존재
현재, 관광용 나룻배 뱃사공 남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두 척의 배 위에 여러 신분 계층의 사람이 가득 탔다. 이들은 어디를 가고 있던 걸까. 배에는 사람과 함께 짐이 가득 실렸다. 시장을 가는 정경임이 짐작된다.

이는 단원 김홍도의 ‘단원 풍속도첩’ 속의 ‘나룻배’ 그림 모습이다. 선조들은 무리를 지어 배를 타고 시장에 갔다. 당시 교통수단으로서 뱃사공의 역할이 뚜렷했음을 알 수 있다.

◆나룻배 타고 강 건너 시장가

뱃사공은 배를 부리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줄여서 사공(沙工)이라고도 부른다.

나룻배는 큰 강이나 사람이 건너지 못하는 깊은 냇물에 보통 있었다. 교량이 발달하기 전인 1900년대 초까지 나룻배는 교통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울의 북쪽 관문인 예성강과 남쪽 관문인 한강에 많은 나루터가 있었다. 배는 관에서 부리는 배인 ‘관선’과 개인이 부리는 ‘사선’으로 나뉘었다. 뱃삯은 시기와 이용자에 따라 달랐으며, 낮보다 밤에 더 많은 뱃삯을 받았다.

강을 끼고 있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강 건너 농사짓기·시장보기를 했고, 학생들은 통학을 했는데 이때 나룻배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속 나룻배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이형록(1808~)의 풍속화인 ‘나룻배’ 그림에도 많은 사람이 함께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두 척의 배가 나오는데, 한 배의 위쪽에는 햇볕을 가리는 포장이 쳐있다. 배 위의 사람은 갓을 쓰고 있는데 양반으로 보인다. 배 위에는 말의 모습도 보인다. 맨 뒤에서는 뱃사공이 큰 삿대를 젓고 있다.

큰 배를 서너 명의 사공이 부릴 때 그 우두머리를 ‘도사공’, 관에서 설치한 나루터의 사공은 ‘진부(津夫)’라 불렀다.

진부 수는 나루의 크기에 따라 달랐다. 진부들은 배가 바람을 만나서 뒤집히면 반드시 사람을 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곤장 100대를 맞았다.

만약 나루를 건너는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는 일이 발생하면 이들은 농간을 부리기도 했다.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연산군 때에 물을 건너지 못해 강변에 노숙하는 자가 많아 물의를 빚기도 했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배를 마련하고 사공을 따로 뒀다. 사공의 신분은 천민으로 그 업은 세습됐다. 사공은 나루터 근처에 마을에서 지어준 ‘사공막’이라고 불리는 집에서 살았다. 이들은 봄·가을로 곡식을 추렴해 삯으로 받았다. 만약 외지인이 한 마을에 드나들 때는 선가를 따로 지불하지 않았다.

◆왜적 침입 대비해 뱃사공 두기도

조선 중종 때는 왜적의 침입에 대비해 경상 우도에 배와 뱃사공을 더 두게 했다.

중종실록(중종 8년 11월 2일)에 따르면, 병조는 이같이 말한다. “거제와 남해는 모두 섬이라 혹시 적변이 있으면 배 2척으로는 졸지에 건너기가 어려울 것이지만, 각 고을에다 분정한다면 그 폐가 또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청컨대 수군절도사(조선 시대에 각 도의 수군을 통솔하는 일을 맡아보던 정삼품 외직 무관)로 하여금 10척을 만들게 해서, 견내량과 노량에 나눠 두어 원병들이 타고 건너가게 하시고 뱃사공은 관찰사가 마련해서 나누어 주도록 하소서.˝ 이에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산업화 이후 사라진 뱃사공

뱃사공은 산업화 이전까지 남아 있던 직종이었다. 서울 주변에도 1960~197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루터가 다리로 바뀌면서 점점 사라져갔다. 현재 각종 지자체에서 관광용으로 운행하는 재래식 나룻배는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노를 젓는 사공만 볼 수 있을 뿐 다른 곳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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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
장영수
2017-02-14 13:59:02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삭제하기 신고하기
우리의 역사다 저 배들 좀 봐라 저고
우리의 역사다 저 배들 좀 봐라 저고리에 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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