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재심’ 스틸. (제공: 오퍼스픽쳐스)

실화에 영화적 재미·상상력 더해
실존인물들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공감·분노 일으켜… 치유 메시지도
“관객들, 희망 품고 극장 나가길…”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사로 거짓자백을 해서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면 그 억울함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용의자 X’ ‘또 하나의 약속’ 등으로 사회를 향해 과감하게 메시지를 던져온 김태윤 감독이 영화 ‘재심’으로 한번 더 묵직한 진심을 전한다.

영화 ‘재심’은 증거도 없이 자백만으로 목격자가 살인범으로 뒤바뀐 사건을 소재로, 벼랑 끝에 몰린 변호사 ‘준영(정우 분)’과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현우(강하늘 분)’가 다시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재진행형 휴먼드라마다.

돈 없고 빽 없는 벼랑 끝 변호사가 10년을 살인자로 살아온 청년을 만났다. 2000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12차례나 칼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된다. 유일한 목격자였던 다방 배달아르바이트생인 ‘현우’는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에 누명을 쓰고 살인범이 돼 10년을 감옥에서 보낸다.

복역 후 사회에 나왔지만 살인자라는 수식어가 ‘현우’ 인생의 걸림돌이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근로복지공단이 ‘현우’를 대신해 사망한 택시기사 유족에게 준 보상금 4000만원에 이자가 붙어 1억 7000만원의 빚더미에 앉게 된다.

한편 돈도 없고, 빽도 없이 빚만 쌓여 아내와 딸도 곁을 떠난 ‘준영’은 “사건의 진실, 사회의 정의(正義)보다 돈이 우선”이라고 외치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못해 인간답지 못한 속물 변호사다. 신도시 아파트 집단대출 사기 사건을 해결해 한번에 몫돈을 만져보려고 했으나 패소 당한 ‘준영’은 친구 ‘창환(이동휘 분)’이 일하는 거대로펌의 대표 ‘필호(이경영 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료 변론 봉사를 하다 ‘현우’의 사건을 접하게 된다.

▲ 영화 ‘재심’ 스틸. (제공: 오퍼스픽쳐스)

이 사건이 유명세와 명예를 얻기 좋은 계기가 될 것을 직감한 ‘준영’은 ‘현우’를 만난다. 실제로 ‘현우’를 만난 ‘준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현우’사건을 맡기로 한다. 그런 ‘현우’를 본 ‘준영’은 다시 세상에 나가기 위해 발을 뗀다.

이 영화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실제 사건에 연관된 인물들과 허구의 인물을 배치해 재구성됐다. 김태윤 감독은 지인으로부터 일명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듣고 영화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단순 사실 과정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스타일이 아닌 영화적 재미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로 구성했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이 사건을 영화화하기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김태윤 감독은 용기를 냈다. 당시 피해자 ‘최군(가명)’과 어머니, 실제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이후 김 감독은 상업적인 목적을 떠나서 사건에 관계된 모두가 치유될 도화선을 만들고자 했다.

영화가 말하는 진심은 세상을 바꾸자는 것 하나다. 김태윤 감독은 “‘재심’을 본 관객들이 극장 밖을 나설 때 희망을 가슴 속에 품고 나가길 원했다”며 “좌절하지 않고, 죽지 않고, 꾸역꾸역 살다 보면 언젠가는 ‘희망’이라는 녀석이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김 감독은 ▲실제 인물들과의 인간적 유대 관계를 중요시 할 것 ▲최대한 디테일하게 캐릭터와 사건의 경위를 파악할 것 ▲영화의 결과물이 실제 인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 것 등 3가지 원칙을 세웠다. 이 원칙은 영화를 보면 잘 드러나 있다. 실존인물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관객이 공감과 분노를 함께 일으킨다.

주제만큼 무겁지만 않았기 때문에 119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오롯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가볍진 않다. 강한 자는 강하고 약한 자는 약한 이 세상이 스크린에 담겼다.

▲ 영화 ‘재심’ 스틸. (제공: 오퍼스픽쳐스)

충무로가 주목하는 연기파 배우 정우와 강하늘의 열정도 볼 수 있다. 변호사 하면 영화 ‘변호인’의 송강호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이런 변호사도 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정우는 소시민적인 변호사 ‘준영’을 특유의 능청스러운 캐릭터로 연기했다.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는 정우의 한마디가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억울하게 감옥살이 한 ‘현우’를 연기한 강하늘은 캐릭터 표현을 위해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했다가 지운 흔적이 있는 특수 분장을 했다. 특히 세상에 날을 세운 듯한 ‘준영’이 절규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도 무겁게 만든다.

영웅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재심’에는 시원한 한방이 없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에 예의를 갖춘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래! 한번 가보자”하는 희망이 생길 것이다. 영화는 오는 1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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