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 뉴시스)

美 대선으로 본격 주목받기 시작
‘한국 상륙’ 가짜뉴스, 정치권 강타 

자극적이며 흥미로운 뉴스 위주
빠르고 쉽게 독자들에게 전파돼

페이스북 등 가짜뉴스 전쟁 나서
대선 앞둔 한국도 대책마련 고심

[천지일보=백지원·이솜 기자] 가짜뉴스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날로 영향력은 커지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어 애꿎은 피해자들만 늘고 있다. 

‘가짜뉴스’란 거짓 정보를 ‘진짜’처럼 포장한 뉴스다. 주로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노출, 확산된다. 높은 조회수와 광고 수익을 노리고 근거 없는 거짓말을 기사 형식으로 써내는 것이다. 

또 잘못된 정보를 담은 언론사 기사도 ‘가짜뉴스’에 포함된다. 이 경우, 사실과 거짓이 교묘히 섞여 있는 데다 해당 언론의 공신력이 밑바탕 돼있기 때문에 진위를 가리기 더 어렵다. 

◆전 세계 뒤흔드는 ‘가짜뉴스’

세계적으로 가짜뉴스가 주목받게 된 건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 때다. 당시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 힐러리가 IS에 무기를 팔았다 등과 같은 뉴스가 온라인상에서 퍼져나갔다. 하지만 모두 가짜뉴스로 판명 났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 트럼프 지지 발표’ 뉴스는 페이스북에서 96만건이 공유되며 기존 언론이 생산하는 ‘진짜뉴스’의 평균 공유건수를 압도했다. 가짜뉴스를 제작하는 폴 호너는 미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내 덕분에 백악관에 가게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짜뉴스가 이제는 한국에 상륙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여권 유력 대선주자로 꼽혔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낙마와 함께 가짜뉴스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일 대선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가짜뉴스로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다”고 가짜뉴스의 피해를 호소했다. 

지난달 7일 유로저널이 게재한 ‘반기문, 한국 대통령 출마는 유엔법 위반 UN 출마 제동 가능’ 제하의 기사가 그 중 하나다. 이 매체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총장이 반 전 총장의 대선출마를 유엔법 위반으로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해당 내용은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위력은 컸다. 야권에서는 이를 인용해 반 전 총장을 겨냥한 공세를 퍼부었다. 포털사이트를 떠들썩하게 한 ‘퇴주잔 논란’ 역시 짜깁기 편집한 영상으로 확인됐으나 이미 ‘외국에 오래 살아 한국문화를 잊었다’는 조롱이 휩쓴 뒤였다. 

‘신천지교회 연루설’은 CBS노컷뉴스가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UN 행사에서 세계여성평화그룹(IWPG)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에 각종 의혹이 더해지면서 일파만파로 확산했다. 이에 대해 반 전 총장과 신천지교회 측이 반박했으나 네티즌들은 의혹에만 관심을 뒀다. 

한국에서는 외국의 사례와 달리 기존 언론들의 오보나 ‘아니면 말고’ 식 기사에서 가짜뉴스가 많이 생산된다. 특히 이슈가 되는 정치인, 연예인, 단체 등에 집중된다. 

반 전 총장이 가짜 뉴스의 피해자인지, 가짜뉴스로 실제 지지율이 떨어졌는지 등은 더 따져볼 문제지만, 본인의 낙마 결정에 가짜 뉴스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해 6월 29일 ‘이건희 회장’ 사망설도 가짜뉴스였으나 그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오후 3시 엠바고’라는 단서까지 달아 SNS를 통해 순식간에 유포됐다. 이날 삼성그룹주 16개 종목 장중 시가총액은 309조 296억원까지 급등했다. 시총 최저치가 297조 1691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근거 없는 가짜뉴스에 12조원가량이 출렁인 셈이다.

이처럼 가짜뉴스는 정치, 경제까지 뒤흔든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점이다. 반 전 총장의 ‘퇴주잔 논란’은 뒤늦게 풀(full) 영상이 공개되면서 진실이 밝혀졌지만 최초보도만큼 이슈화되진 않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최초의 보도만 기억한다. 이후 오보로 드러나 정정보도를 하더라도 큰 관심이 없다. 

더구나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선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탓에 정정보도를 할 때쯤엔 잊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보도는 한순간이지만,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근거 없는 루머에 연예인들이 수년간 활동을 중단해야 하거나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나아가 가짜뉴스는 뉴스의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기 때문에 사회적 손실도 매우 큰 점도 지적된다. 

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가짜뉴스는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매력적이고 입맛에 맞는 ‘가짜뉴스’

▲ 지난해 미국 선거 전 3개월간 페이스북에서 공유된 가짜뉴스는 870만건으로, 진짜뉴스 공유 횟수 736만건보다 많았다는 버즈피드의 조사 결과. (출처: 신문과 방송 1월호 캡처)

 

가짜뉴스는 ‘진짜’보다 빠르고 쉽게 독자들에게 전파된다. 지난해 12월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23%는 고의로 또는 모르는 사이에 지인들에게 가짜뉴스를 공유했다. 

지난해 미국 선거 전 3개월간 페이스북에서 공유된 가짜뉴스는 870만건으로, 진짜뉴스 공유 횟수 736만건보다 많았다는 버즈피드 조사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가짜뉴스를 믿는 걸까. 일단 구분이 쉽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성향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노어 차니 교수는 지난 5일 미국의 온라인 매체인 살롱에 사람들이 가짜 뉴스를 믿는 이유로 ‘확인 편향’을 들었다. 그는 “당신이 이미 믿거나 이론화 한 것에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고, 당신의 주장과 모순되는 증거를 건너뛰거나 합리화하려는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생각과 성향에 맞는 기사가 있다면 사실 여부를 파악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사실로 받아들이는, 곧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다.

▲ 독일 공영방송 ZDF 기자들이 페이스북에 극우성향의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실험한 결과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입맛에 맞는 가짜뉴스에 열광하면서도 그들의 신념에 반하는 진짜뉴스를 게재하자 무시하거나 역겹다는 반응을 보였다. (출처: ZDF 방송 캡처)

최근 독일 공영방송 ZDF 기자들이 페이스북에 극우성향의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실험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입맛에 맞는 가짜뉴스에 열광하면서도 그들의 신념에 반하는 진짜뉴스를 게재하자 무시하거나 역겹다는 반응을 보였다. 

ZDF 기자들은 이번 실험에 대해 소통 전문가 볼크강 슈바이거의 말을 인용해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정보를 다른 정보보다 우선적으로 믿는다. 이런 정보는 페이스북에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결국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의 의견을 강화시킬 뿐이다”고 결론 지었다. 

◆전문가들, 생산자~수용자 유기적 책임 강조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 가짜뉴스 확산을 방조하며 트럼프 당선을 도왔다는 비판을 받은 페이스북과 구글은 최근 가짜뉴스 대응에 적극 나서고 있다. 

 

페이스북은 오는 4~5월로 예정된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가짜뉴스 차단을 위해 최근 AFP, BFM TV, 르 몽드 등 8개의 프랑스 유력 언론사들과 협력하기로 했다. 이들 언론사는 페이스북의 가짜뉴스 차단 툴을 통해 이용자들이 올리는 뉴스 기사를 검증하고 팩트(fact) 체크를 하는 역할을 한다. 

구글 뉴스랩도 17개 프랑스 유력 언론사들의 공동 프로젝트인 ‘크로스 체크’의 파트너로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로스 체크는 AFP 버즈피드 뉴스, 프랑스 TV, 리베라시옹 등 언론사들이 가짜뉴스를 걸러내기 위해 만든 협력체다.

우리나라 역시 조기 대선이 거론되는 가운데 가짜뉴스가 중요 변수로 떠오르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각 정당에서 서둘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모니터링과 신고, 법적 조치 등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가짜뉴스 생산자에 대한 강력한 제재나 피해자를 위한 대책은 아직 미비하다. 

한 언론계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사이트 기반으로 가짜뉴스가 많은데 한국에서는 그런 구조가 나오기 어렵다”면서 “(외국의 가짜뉴스와는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한국형 가짜뉴스에 대한 논의와 이에 따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본적인 ‘팩트(fact) 체크’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강석 텍사스대 샌 안토니오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언론사들은 사실 뉴스의 가치와 중요성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항상 수용자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면서 “양질의 ‘훌륭한 저널리즘’을 실행함으로써 믿고 소비할 수 있는 사실에 입각한 뉴스를 보도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에서 사실상 언론 역할을 하고 있는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의 역할도 중요하게 거론되고 있다.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가짜뉴스를 걸러내야 하는 SNS나 포털사이트 등 뉴스 유통 플랫폼의 적극적이고 공적인 책임을 주문했다. 윤 교수는 “이제는 영향력이 큰 디지털뉴스 중개자의 책무를 어떻게 제도화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수용자들을 교육하는 방식에 대한 목소리도 있다. 강석 교수는 “가짜뉴스를 포스팅한 이용자에게 공개적 댓글 또는 개인 메시징을 이용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법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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