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스포츠 영화 <국가대표>는 불모지 한국의 스키점프에서 꿈을 이루려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실제 현실을 많이 반영한 영화로 지난해 하반기에 개봉, 850만 명이 봤을 정도로 대박을 올렸다. 국가대표 등록선수가 5명뿐인 척박한 상황에서 하늘을 날려는 젊은 청춘들은 어린이 스키교실 강사출신인 국가대표 코치의 헌신적인 지도로 대망의 올림픽 출전의 뜻을 이루며 해피엔딩의 마무리를 한다. 영화 내용상으로만 보면 패기와 열정으로 뭉친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스키점프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명간 큰일을 낼 것 같은 착각이 들게도 했다.

이 영화의 흥행성공에 뒤이어 지난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스키점프 선수들이 큰 관심을 받았다. 영화 속의 가상현실이 진짜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영화 속의 이야기처럼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는 정도의 성적밖에 올리지 못했다. 노멀힐(K-95)과 라지힐(K-125)에서 최흥철과 김현기가 결선 1라운드 진출에 성공했으나 메달이 걸려있는 2라운드에는 오르지 못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 스케이팅 등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5개를 획득하며 종합 5위로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려 동계스포츠 강국의 위세를 보였던 한국 선수단의 화려한 성적과 큰 대조를 이루었다.

영화를 흥미롭게 본 일부 사람들은 동계올림픽 기간 중 스피드 스케이팅 등에서 메달이 쏟아지자 스키점프에 큰 기대를 걸어보기도 했지만 높은 현실의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영화 <국가대표>는 선수 5명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2003년 동계 유니버시아드과 동계 아시안게임, 2009년 제24회 동계 유니버시아드 개인전,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한 스키점프 대표팀을 소재로 삼아 감동적인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미화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은 대학생들의 잔치인 유니버시아드와 동계스포츠 후진국들이 참가하는 아시안게임 등과는 차원이 달랐다. 

사실 영화의 성공으로 스키 점프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아직 국내 수준은 세계 현실과 거리감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번 동계올림픽 성적은 예고된 것이었다. 국내의 스키 점프는 눈이 부족한 자연환경, 빈약한 경기장 시설, 변변치 못한 예산 지원, 절대 부족한 등록 선수 등 모든 면에서 스키 점프 선진국과 견주어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등 모든 여건이 만족스럽지 못한 형편이다. 스피드 스케이팅, 쇼트 트랙, 피겨 스케이팅에서 빙상연맹 회장사인 삼성그룹이 지난 10년간 120억 원을 투자, 올림픽에서 사상 최고의 전과를 올린 것에 견주어 볼 때 모든 지원이 부족한 스키 연맹이 이끌고 있는 스키점프는 열악할 수밖에 없다.

현대 스포츠는 투자에 비례해 성적이 나온다. 운동의 과학화와 기술화, 스피드화가 요구되면서 많은 투자가 따라야 특출한 선수가 발굴되고 좋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스키점프팀은 영화와는 달리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마음만 앞섰지 실제는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었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뒤늦게 스키점프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됐다. 강원도와 ㈜강원랜드는 한국 스키점프 대표팀을 지원하기 위해 상호 협약을 맺었다. (주)강원랜드는 4년간 총 40억 원의 훈련비용을, 강원도는 훈련장소를 제공할 예정이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스키점프를 위해서 아주 다행스런 일이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험한 한국 스키점프는 눈앞에의 성적에 서두르지 말고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쌓아 나가야 한다. 일본이 1998년 나가노 올림픽 스키점프에서 2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던 전례로 볼 때 한국 스키점프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 직전까지 영화의 성공으로 주변에서 스타 대접을 받았던 최흥철과 김현기 등 스키점프 선수들은 올림픽 이후 성적 부진으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니며 격려를 하는 주변 사람들도 피해 다녔다고 한다. 이들 국가대표 스키점프 선수들이 4년 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영화처럼 하늘 높이 비상해 어깨를 쭉 펴고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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