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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획인터뷰] “종교개혁, 개인이 국가권력에 맞서 승리한 역사적 사건”
강수경 기자  |  ksk@newscj.com
2017.02.03 08: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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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하고 있는 독일 마르틴 루터 2017 국가사무국 대표 아스트리드 뮐만. ⓒ천지일보(뉴스천지)


독일 마르틴 루터 2017 국가사무국 대표 아스트리드 뮐만

“루터, 교황·황제의 압박에도
믿음·양심 위해 굴하지 않아
사회전반에 큰 변화 가져와

개인주의 성향 강해졌다지만
공동체를 더 찾아가는 추세
공동체로서 ‘교회’ 의미 부각

루터의 소망, 끝나지 않았다
종교개혁 절대 멈춰선 안돼
성경 말씀 심어주는 게 ‘개혁’

[천지일보 독일 = 우수연 특파원, 강수경 기자] “한 개인이 이토록 놀라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루터를 통해 발견했습니다.”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교황청의 부패와 면죄부 판매에 반대해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슐로스(Schlosskirche)교회에 내걸어 촉발된 종교개혁은 특정 종교의 개혁을 넘어 힘없는 민중이 부패한 기득권을 타파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를 기점으로 유럽 질서뿐 아니라 세계 질서가 다시 짜여졌다.

역사적 의미가 큰 만큼 비텐베르크가 있는 작센안할트(Sachsen-Anhalt) 및 그 주변 주(州)에서는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던 1517년 10월 31일을 종교개혁기념일 및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종교개혁 핵심 성지인 비텐베르크에서 5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 중인 아스트리드 뮐만 ‘루터 2017년 국가사무국’ 대표를 만났다.

뮐만 대표는 “루터는 국가권력과 맞섰다. 교황과 황제의 압박에도 그는 자신의 양심과 믿음을 위해 싸웠고 사회전반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소수일지라도 옳은 일을 위해 초지일관 굳건히 행한다면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 루터의 정신을 기리고자 동상이 세워진 비텐베르크의 마르크트 광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독일인에게 마르틴 루터는 어떤 의미를 갖나.

몇 년 전 독일 TV에서 시청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시청자들에게 독일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100명을 고르는 것이었는데 루터가 2위였다. 이 설문조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루터를 독일 역사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 결과는 종교인들에게는 정말 인상 깊은 결과였다. 신학적으로 보면 루터는 지속적으로 재평가되고 활용된 인물이었다. 특히 19세기 신학자들은 루터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홀로 이끌었던 인물로 인식해 그를 위한 기념비도 세웠다. 약 200년 전 전환점에 서 있던 유럽은 루터를 전면에 내세워 독일 화합을 이끌었고 사람들은 루터를 ‘독일의 소나무’라 불렀다.

- 종교개혁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종교개혁을 바라보는 시각이 천차만별이기에 쉽게 답할 수는 없지만 우선 종교의 본질 회복을 위한 활동이라고 보고 싶다. 마르틴 루터는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를 개혁하고 싶어 했다. 그는 교회가 잘못돼가고 있는 사실에 주목했고, 그것을 바꾸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이 때문에 교회가 분리되거나 새로운 교회가 설립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루터는 하나님께 가는 길이 꼭 성직자, 주교 또는 교황을 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점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사회 쪽으로 더 부각됐다. 교인 개인이 ‘내가 종교인으로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수 있을지’를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는 지를 고민하게 했다. 루터는 종교개혁 초창기부터 ‘수도승이라고 해서 더 나은 기독교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많은 수도원의 문을 닫게 만들었다. 가난한 사람과 구걸하는 사람들을 도왔던 수도원들이 문을 닫게 되니, 수도원을 대체할만한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다. 이를 위한 재정시스템의 일환으로 교회세금이 도입됐고, 동시에 후원금이 모금됐다. 이것은 현재 사회복지시스템의 기초가 됐다.
 

   
▲ 루터가 가톨릭의 부패성을 지적하며 작성했던 95개조 반박문. ⓒ천지일보(뉴스천지)

- 500년 전 종교개혁이 2017년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뭐라 보는가.

루터와 그의 서적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한 개인이 놀라울 만큼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는 거대한 힘(오늘날 국가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힘)과 대항해 맞섰다. 교황과 황제는 그에게 ‘내가 잘못 생각했다. 다 철회하겠다’라고 말하라고 압박했다. 그럼에도 마르틴 루터는 자신의 양심과 믿음을 위해 싸웠고 사회전반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큰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자신과 같은 믿음과 의견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이라고 느끼겠지만, 루터가 한 것처럼 초지일관 굳건히 선다면 밀고 나간다면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고 많은 깨우침을 준다.

- 오늘날은 제2의 종교개혁이 요구되고 있다. 교회의 회복을 위해 계획한 것이 있다면.

기독교는 교회 회복을 위해 ‘가톨릭-개신교 통합’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 그래서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뭔가를 할 수 있으며 함께 예배를 드리는 힐링 메모리 예배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주로 차이점에 대해 집중했기 때문에, 지금은 좀 더 공통점에 집중하고자 한다. 두 번째는 추진하는 모든 종교개혁과 관련된 프로젝트에서 종교개혁자의 소망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루터·멜란히톤·부겐하겐 등 종교개혁자들은 종교개혁이 언젠가 마무리되는 하나의 프로세스라고 여기지 않았다. 멜란히톤이 한 말을 번역한다면 ‘우리는 항상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종교개혁을 절대 멈춰서는 안 되고 항상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좀 더 개선해야 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종교적인 개념을 사용한다면 성경 말씀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프로젝트의 목표는.

종교개혁은 독일 역사와 사회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이 때문에 독일 사회·민족, 해외에서 오는 손님들에게 이 역사를 알리고 종교개혁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데 우선 목표를 두고 있다. 그다음으로는 해외 관광객들에게 독일의 의미 있는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목표도 갖고 있다. 독일 역사에서 어둡고 불행한 점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선(善)이었던 순간 빛나는 순간들을 보여주고 싶다. 특히 관광분야 등을 통해 동독지역이 발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찾기를 원한다. 동독지역의 관광 인프라는 지난 몇 년 동안 아주 많이 개선됐다.
 

   
▲ 루터가 1517년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던 슐로스교회. 만인성자교회로도 불리며 비텐베르크 성교회라고도 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500주년을 맞은 종교개혁의 현장에서는 현재 어떤 프로그램들이 준비·진행되고 있나.

루터의 종교개혁이 독일사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종교개혁운동은 사회는 물론 독일어까지 영향을 끼쳤다. 성경 번역 작업을 통해 현재 우리가 읽고 쓰고 말하는 부분까지 영향을 줬다. 종교개혁은 독일 뿐 아니라 전 세계도 영향을 끼쳤다. 이를 보여주는 전시회를 마련했다. 베를린에서 ‘루터효과’라는 큰 전시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 전시회에서는 개신교가 스칸디나비아, 아프리카 또는 한국에 가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다른 프로그램도 있다. 가령 개신교가 각 나라의 문화에 어떻게 흡수돼 변화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500년 전 어떠했는지를 돌아보는 것뿐 아니라 세월이 흘러가면서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또 현재는 어떤 부분에서 기대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수많은 콘서트와 예배, 등 다양한 종교적인 행사들도 있다. 관광이나 토론, 세미나도 준비하고 있다.

- 구체적으로 어떠한 프로그램들이 있나, 다른 도시들도 참여하는가.

실제적으로 독일 전역에 걸쳐 많은 다양한 행사들이 있다. 베를린에선 비텐베르크 전시회와 여름 청소년 캠프가 진행된다. 루터가 성경번역을 시작한 바르트부르크에서도 전시회가 열린다. 독일 어느 곳이든 현지 박물관에 가면 종교개혁과 관련된 내용을 볼 수 있다. 비텐베르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마르틴 루터와 카타리나 본 보라와의 결혼식의 축제 분위기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 코부르크와 뉘른베르크가 있는 바이에른 주에서도 다양한 행사들이 마련되고 있다. 바이에른 주는 가톨릭교회와 더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그당시 종교개혁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도시들이 있어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다. 독일 어디에 살든 어떤 교단에 속했든 상관없이 독일에서는 어디서든 종교개혁의 효과를 느낄 수 있다.

- 종교개혁 주인공인 ‘마르틴 루터’에 대해 알고 싶은 순례객이 방문하면 좋은 지역은.

먼저 ‘비텐베르크’다. 이곳은 마르틴 루터가 대부분의 생애를 보낸 곳이다. 그가 살던 집은 상당히 크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개방돼 있다. 일반 집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큰데, 이곳이 원래는 수도원이었기 때문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루터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그의 가족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특별전시회가 열린다.

‘바르트부르크’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도시다. 독일 역사를 알기 위해선 바르트부르크를 빼놓을 수 없다. 1000년의 역사를 지닌 아주 거대한 기념비적인 도시다. 마르틴 루터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이 도시에서 루터는 약 10개월 동안 머물면서(황제로부터 자유인으로 선고됨) 지금 현재 우리가 말하고 쓰고 독일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성경 독일어번역을 시작했다. 물론 루터와 종교개혁은 많은 다른 지역과 장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근처인 ‘토가우’에만 가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그는 첫 번째 개신교 교회를 설립했다.

인쇄기술이 발명된 ‘뉘른베르크’도 있다. 이 인쇄기술 없이는 루터의 글이 인쇄될 수가 없었다. 또한 그가 황제 앞에서 변호를 해야 했던 아주 중요한 장면이 펼쳐진 ‘봄스’도 있다. 루터가 공부하고 수도원에 있었던 ‘에어푸르트’가 있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루터의 주택. 원래는 수도원이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독일 국민들의 기대감도 클 것 같은데.

준비한 프로그램만큼 기대감도 굉장히 다양하다. 연방주들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독일 문화와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켜 관광의 붐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500년 전에 했던 질문들을 오늘날에도 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든다면 ‘나는 지금 이 사회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내가 개인으로서 변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등 이런 질문들은 지금 현재에도 당면한 질문들이다.

- 현재 독일에서는 개신교인이 감소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흥미로운 점은 중요한 종교개혁의 장소인 비텐베르크·바르트부르크 등 모두 과거 동독의 지역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이 지역들은 확실히 다른 지역보다 기독교인이 적다. 그럼에도 마르틴 루터와의 연관성은 어느 곳보다 강한데 심지어 종교적인 색이 강한 도시보다 더 강하다. 이것이 매우 흥미진진한 부분이다. 루터는 이 지역의 역사의 한 부분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를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 사람들이 점점 더 개인주의적 성향을 갖게 됐고, 자기중심적이 됐다는 조사연구도 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사람들이 공동체를 점점 더 많이 찾고 있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특히 교회와 같은 종교공동체의 의미가 좀 더 부각된다. 이와 관련한 영향이 개신교인 변화에 영향을 끼칠지를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 독일 교회는 통일의 주역이었다. 독일 발전을 위해 교회에 바라는 게 있다면.

교회가 얼마만큼 개입해야 하는 것인지를 놓고 실제로 많은 토론이 있었다. 500주년 기념의 해를 준비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독일의 개신교회는 이번을 좋은 기회로 보고 있다. 즉 사회의 구성원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싶어 한다. 개신교뿐만 아니라 다른 기독교 공동체도 같은 뜻을 갖고 있다. 현재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걸쳐 우리의 기본가치관과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에 대한 큰 토론을 하고 있다. 교회는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 통일을 염원하는 한국인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포기하지 마십시오’가 가장 적합한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동독지역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가족들은 서독에 있어서 만나거나 방문할 수 없었다. 부모님들은 통일 전 해까지도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장벽이 열리고 독일이 하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상상을 못했다고 지금까지 말한다. 40~50년을 동독에 살던 사람들, 독일이 통일되기를 꿈꾸었던 사람들, 물론 서독도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 이러한 일이 이뤄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거의 기적에 가깝다.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에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한 민족이 바로 통일 후의 독일인들이다. 한국인들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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