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믿거나 말거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등장하는 유비의 책사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신비한 초능력의 소유자였다. 제갈공명은 결코 인간의 소관일 수가 없는 ‘위력적인 천기(天氣)의 자연력(the fury of the elements)’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으켜 활용한 것으로 묘사돼 ‘소설’ 읽는 재미에 빠지게 해준다. 그는 유비 진영의 군사(軍師)로서 조조(曹操)가 그 유명한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 맞서 동원한 100만 대군에 심대한 타격을 안기도록 기획한 천하제일의 탁월한 전술가였다. 이렇다 했다. 그는 하늘에 빌어, 때가 겨울철이어서 얼토당토않아 보이던 거센 남동풍을 일으켰다. 바로 그 인공(人工)의 남동풍을 이용해 조조의 수군에 퍼부은 기습적인 화공(火攻)으로 그렇게나 어마어마한 대군을 거의 몰살시켰다. 조조는 이 싸움에서 간신히 줄행랑을 놓아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는 도망치던 길에 82근짜리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휘두르는 관우 장군에 붙잡혔지만 그것은 그에게 천만다행이었다. 관우 장군은 과거에 잠시 악어의 눈물과도 같은 조조의 은혜를 입은 일이 있었다. 조조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자 유비 장비 관우 사이의 도원결의(桃園結義)가 말해주듯이 의리에 살고 죽는 관우 장군의 마음이 흔들려 슬그머니 그를 풀어주고 말았다. 이는 제갈공명이 이미 짐작한 대로였지만 이 사실이 확인되자 제갈공명은 군율에 의해 관우 장군을 처형토록 명령했다. 이에 유비가 놀라 생사를 같이하기로 맹세한 형제를 죽일 수 없다고 통사정을 해 죽임만은 피할 수 있었다.    

천하의 조조가 불화살과 염초(焰硝)에 의한 화공에 허약하게 무너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수군은 대부분 육지 출신들이어서 뱃멀미가 심해 수전에서 제대로 전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이를 걱정하던 조조가 그 역시 난세의 책사인 방통의 제안을 받아들여 풍파에 함선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서로 단단히 연결해 묶어 두었다. 일종의 연환계(連環計)였다. 따라서 배는 안정화됐지만 화공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조조가 이를 모를 까닭이 없었지만 남동풍이 없이는 북서쪽에 진을 치고 있는 자신을 화공으로 공격할 수 없다고 안심한 것이 화근이었다. 제갈공명이 남동풍을 불게 할 줄을 그는 상상도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조조가 겨울에 남동풍이 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계절적인 특성으로 보아 결코 이치에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조조의 대군을 몰살시킨 연환계 역시 제갈공명이 은밀히 방통을 움직여 이루어낸 사전 공작이었다. 자고로 전쟁에서의 기습과 기만, 이간과 위계, 무자비함은 승리의 필수 요건으로 통해왔다. 조조가 그의 휘하 수군의 명장들인 채모 및 장윤을 반역을 꾀한다고 의심해 죽이도록 만든 것도 제갈공명의 이간책이었다. 두 장수가 사라짐으로써 그나마도 취약점이 노출됐었던 조조의 수군은 전투력이 더욱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전해지는 말대로라면 이처럼 제갈공명은 전설적인 전략전술가요 난세의 불세출의 책사였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는 유비의 통사정에 어쩔 수 없이 관우 장군은 용서했지만 친자식처럼 아끼던 휘하의 맹장 마속(馬謖)이 군령을 위반했을 때에는 엄격한 군율을 적용해 가차 없이 처형했다. 이래서 바로 제갈공명이 피눈물은 흘렸으되 무자비하게 ‘읍참마속(泣斬馬謖)’을 단행한 고사의 주인공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제갈공명은 또한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신화를 후대에 전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남만(南蠻)의 왕 맹획이 침공해 왔을 때 신출귀몰하는 기만과 위계 전술로 그를 일곱 번 놓아주고 일곱 번을 사로잡아 진정으로 그가 항복하게 했다. 

작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대망을 드러낸 인사들이 많기도 하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마땅한 인물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는 패거리 정치 탓이기도 하고 몸을 드러낸 인물들이 그릇이 안 돼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엇비슷하게 반반으로 갈린 패거리 정치에서 자신이 어느 쪽인가를 분명하게 드러낸 인물은 자신과 다른 편의 국민을 만족시키기가 사실상 어렵다. 반면 우리가 평화롭게 살 길은 통합이지만 그 통합을 내세우며 이쪽저쪽을 다 아우를 듯이 나선 인물에 대해서는 워낙이 특출한 인물이 아니라면 이쪽저쪽의 국민 모두가 열화와 같은 호감을 보이기보다 싱거운 맹물, 맹탕이 아닌가 보는 경향이 진하다. 패거리 정치에서 우리 국민에게 무의식적으로 길들여진 인물의 매력은 그가 풍기는 인간과 인격, 경륜과 철학, 정치적 언행에서 우러나는 풍미(風味)가 시거나 짜거나 달거나 쓰거나 하는 강렬하고 원소(元素)적인 것이어야 감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영혼론’에서 들먹인 4가지 원소적인 기본 맛과 같이 분간이 확실히 이루어질 수 있는 맛이어야 한다고나 할까 뭐 그런 것 같다. 물론 이쯤을 나라를 경영하겠다고 나선 인물들이 모를 리는 없다. 

그들은 그 폐해에 대해서도 잘 알 것이지만 갈수록 강한 ‘입맛’을 찾는 국민의 마음을 사고 표를 얻기 위해 정치를 그 같은 국민 편 가르기로 몰고 가는 경쟁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는 한편으로는 미래의 권력에 대해 단꿈을 꾸는 제갈공명과도 같은 재사(才士)와 책사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그들은 이 시대를 사는 유비의 제갈공명일 뿐 아니라 조조의 사마의이고 방통이며 서서이고, 그 이전 시대 유방과 항우가 겨루던 때의 한신이고 장자방임에 틀림없다. 역사가 웅변하듯이 이들이 세상을 주무르지만 그들은 양날의 칼이며 약이고 독이다. 제갈공명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자기의 때를 만났다고 설쳐도 정의롭지 않아서 천시(天時)의 흐름이 그가 당면한 인시(人時)와 호응하지 않으면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민초들의 소박한 믿음이 진리로 확고부동하게 굳어졌으면 좋겠다 싶어진다. 어떻든 국민을 이념과 지역으로 편 가름 하는 일은 오래된 병폐이지만 가끔 국민을 젊음과 늙음의 세대로 구분 지으려는 정치인의 시도가 나타나는 것은 설상가상이며 패륜에 가깝다. 더구나 인생 후반의 몇 살부터 ‘기로(棄老)의 전설’이 전하는 ‘사회적 고려장(高麗葬)’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몰라도 철없는 풋내기가 아니라면 정치인들이 해야 할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이는 사회의 인륜적 토대를 무너뜨리는 악(惡)이다. 어쩌면 제갈공명보다도 더한 총명과 지혜를 지닌 이 나라 인재들의 머리가 가끔 이렇게 엉뚱한 데에 쓰여지는 것은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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