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아쉬움과 허탈감이 교차한다. 지난 10년간의 유엔 사무총장직을 마치고 귀국한 반기문 전 총장의 그간 행보는 하루하루가 마치 전쟁터 같았다. 워낙 바쁜 일정이기도 했지만 가는 곳마다 바람 잔 곳이 없었다. 반 전 총장 스스로 ‘가짜뉴스’와 ‘인격살해’를 거론할 정도였다. 게다가 마음을 둔 유력 정치인들과의 회동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물이 없었다. 어쩌면 냉대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반 전 총장 탓이 크다. 정치현실을 몰라도 그렇게 몰랐다는 것인가. 그리고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애초부터 정치에 뜻을 접었어야 했다.

더 복잡해진 제3지대론

반기문 전 총장은 대선 로드맵과 정책비전, 핵심 참모그룹을 갖고 있어야 했다. ‘정치교체’를 선언한 대선 주자로서의 ‘반기문의 길’을 명확하게 보여줄 핵심 가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주변의 인사들은 대체로 정치교체의 대상이었다. 더욱이 ‘반기문의 길’을 열어갈 로드맵은커녕 우선 현실인식부터 뒤틀렸다. 특히 광장의 촛불 민심을 폄하하는 듯한 발언은 ‘실수’가 아니라 현실인식에 대한 그의 ‘실체’였다. 그런 그가 ‘정치교체’를 선언했지만 누가 그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정치교체’의 진의를 제대로 알고나 있었을까 싶다.

아무튼 반기문 전 총장은 이제 대선 레이스에서 조기에 퇴장했다. 그의 빈 공간은 중도보수층과 노령층 그리고 충청권을 아우르는 넓은 공간이다. 이전 같았으면 상대적으로 여권에게 유리한 지형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기문 없는 그 곳이 어떻게 재편될지 아직은 예상하기 어렵다. 다만 문재인 전 대표 지지층과는 결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민주당 밖의 ‘비문 그룹’ 재편에 상당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반기문 지지층을 놓고 보면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제3지대 중도개혁을 표방한 국민의당 등 세 개의 그룹이 경쟁하는 모습이다.

반기문이라는 보수세력의 대안이 갑자기 탈락했다는 점에서 일단 새누리당도 기대를 걸 만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연장’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반기문 지지층이 망설일 수밖에 없는 딜레마라 하겠다. 그렇다면 바른정당으로 시선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유승민과 남경필이라는 쟁쟁한 신예들이 ‘보수의 혁신’을 놓고 경쟁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들이 본선에서 과연 문재인 전 대표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두 번째의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 부분에서 국민의당 후보와 연합 또는 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이른바 ‘제3지대 빅텐트’가 꾸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기문 전 총장의 조기 퇴진은 제3지대 정치변동의 가능성과 역동성을 더 넓혀준 셈이다. 독주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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