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어딘가를 향해 달음질치고 있다. 붉은 닭은 힘차게 새벽을 알렸지만 아직 새벽이 오지는 않았나보다. 그래서일까. 왠지 모를 어둡고 음산한 기운이 지구촌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세계는 한반도를 제외하고는 동서의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면서 이념과 사상 인종 종교 문화를 아우르는 다문화 다민족 등 다양성이 존중되고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나름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 즉, 하나의 지구촌(村) 건설을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작금의 인종과 종교와 이념과 사상이 만들어낸 다툼과 분쟁과 전쟁은 이민과 난민을 발생시키면서 세계는 다시금 과거로 돌아가려는 예기치 못한 역사의 운명 앞에 서 있다. 즉, 여기서 이대로 멈출 것인가, 아니면 뒤로 물러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이 절실한 때다.

세계 현실을 떠나 먼저 우리 대한민국이 처한 정치문화의 현실은 어떠한가. 가장 작은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그것도 모자라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이 나라는 지금 ‘파벌문화’가 날개 돋친 듯 온 나라를 집어삼킬 기세다. 그 파벌문화의 중심에는 예외 없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다. 파벌이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파벌에도 내용 즉, 정책과 관점과 철학이 있으면 된다. 그러나 현실은 내용은커녕 지역우선주의와 그 지역이 낳은 인물이 파벌의 중심에 서 있으니, 파벌은 다시 패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다양한 내용이 있는 파벌은 오히려 순기능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정책과 관점이 조직이나 정파라는 그릇 안에 담겨 있을 때, 경쟁력과 함께 긍정적 변화와 성장을 가져오기 때문이며, 사회 국가 인류를 진보시켜 나가는 데 커다란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IS(이슬람극단무장단체)로부터 비롯된 이슬람종파분쟁은 종교전쟁으로 확대됐으며, 장기 독재정권에 맞서 일어난 튀니지 민주화 운동(재스민혁명)은 리비아 시리아 등 중동과 아프리카의 주변국가로 이어지면서 수많은 유민과 난민을 유발시켰고, 그들은 지중해를 건너 이웃한 유럽으로 몰려들었고, 그 과정에서 난민선 전복으로 헤아릴 수 없는 난민들이 희생됐으니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EU(유럽연합) 국가들의 난민 정책으로 이어지며 세계는 새로운 국제질서에 직면하게 됐다. 예기치 못했던 국제질서에 가장 먼저 반응한 나라가 영국이며, 영국은 난민 수용이라는 유럽연합의 입장에 반기를 들며 소위 ‘브렉시트(EU탈퇴)’라는 초강수를 두며 유럽은 물론 세계의 새로운 정치 경제 문화 인종질서를 촉발시켰다. 영국의 이 같은 결정은 세계 글로벌화의 상징이며 무대인 미국으로 불똥이 튀면서 그동안 다민족사회로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잠재된 불만들이 한꺼번에 분출되는 동시에 백인과 다민족 간의 인종갈등은 더욱 노골화됐다. 이러한 틈새를 활용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인종 경제 군사 외교정책의 대변혁을 예고하는 파격적 선거 전략으로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즉, 미국우선주의에 보호 분리 고립 인종 민족 극단주의를 표방하며, 지금까지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을 향해 달려온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았다.

인종으로 보면, 영국은 ‘앵글로색슨족’으로 독일지역에서 영국으로 건너가 여러 왕국을 건설한 게르만민족의 일부 혈통이며, 지금 영국민의 주된 혈통을 이루고 있다. 미국은 영국의 청교도혁명을 피해 아메리카로 이주해 정착한 혈통으로 영국과 같은 앵글로색슨족의 후예들이다. 이들이 오늘날 인종과 종교를 나누고 미국우선주의를 앞세우며 세계의 신질서를 또다시 주도해 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인류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새로운 사조(思潮)를 불러오며, 세계경제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위협이 되고 있으며, 정치 외교 군사적으로는 신냉전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동서를 가로막고 서 있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지 28년이 지난 지금, 멕시코와의 국경을 장벽으로 건설하겠다는 현대판 만리장성 건설계획에 트럼프가 서명함으로써 아이러니한 역사의 현실 앞에 세계는 당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는 ‘이슬람 7개국 입국금지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세계는 충격 혼돈 분노로 초비상이 걸렸다. 제16대 링컨 대통령이 선포한 노예해방의 정신은 선포 154년 만에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물론 장벽 건설 계획에 중남미 국가들은 즉각 반발하는 등 연대분위기가 감지되고, 이슬람을 대표하는 이란은 미국에 대한 보복조치에 들어갔으며, 중국은 미국의 보호무역에 맞서 아세안 국가들과 연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세계는 파벌 분리 보호 극단의 아우라에 뒤덮이면서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게 됐으며, 인류가 노력해온 글로벌질서에 대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이는 “글로벌니즘이 아닌 아메리카니즘(미국우선주의)이 우리의 신조”라는 트럼프의 대선 공약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는 백인주의이며 나아가 기독교주의를 말한다. 종교, 그중에서도 기독교의 정신은 높고 낮음이 없는 평등이며 박애이며 평화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인들의 차별성 즉, 편파 편향이 얼마나 종교적 배타성을 가져오며 비종교적 행위를 낳으며 사회와 나라를 어지럽히는지를 되돌아 볼 때다.

‘숲을 보고 나무를 보라’는 말이 있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 세계의 흐름을 진단하고 대처해 나갈 방도를 찾기 힘쓴다면 파벌과 패거리에서 벗어나 큰 그릇이 될 수 있으며, 이 나라는 물론 인류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을 보기 위해서는 한국만을 봐서는 볼 수도, 보이지도 않으며, 세계 속의 한국을 볼 때 진정한 한국이 보일 것이다. 이는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이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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