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해와 하늘 별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문둥이’, 서정주)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을 보겠네…”(‘울음이 타는 가을 강’, 박재삼)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외인촌’, ‘설야’, 김광균)

공감각(共感覺)이란 어떤 자극이 감각에 주어졌을 때 기존의 감각계통에 직접적으로 속하지 않는 다른 감각반응이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공감각을 멋지게 형상화한 작품들을 보라. 청각을 시각화거나 시각을 청각화한 순우리말 시어 표현이 얼마나 절묘하고 아름다운가. 공감각적 표현이 녹아 있기 때문에 시가 독자들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공감각은 시적 감동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정치지도자들의 민심수람과 외연확장을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보수와 진보, 어느 진영 가릴 것 없이.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늦기 전에 대선 전 개헌에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으면 한다. ‘최순실 사태’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인 제왕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대선을 치르자는 것인가. 자신이 제왕적 대통령이라도 되겠다는 것인가. 중도 보수층으로의 외연 확장, 패권주의 이미지 불식을 위해서도 개헌 수용 선언을 치고나가야 하지 않을까. 사심 비우고 내려놓아야 한다. 현재 지지율 1위의 대선주자이지만 성급한 대세론은 금물이다. 수면 아래에서 관망중인 유권자가 족히 과반수를 넘는다. 브렉시트나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더라도 여론조사 결과는 맹신하면 안 된다. 응답률이 너무 낮다. 주로 응답하는 층은 스마트폰 세대이다. 노년층은 여론조사기관의 낯선 전화에 잘 응답하지 않는다. 속마음도 드러내지 않는다. 개헌파 잠룡이 똘똘 뭉칠 경우 고립무원이 될 수 있다. 안보 노선, 반(反)북 노선을 기치로 중도·보수세력이 연합전선을 형성할 수도 있다. 측근인 ‘세 명의 철’ 혹은 ‘8인방’에만 의존한다는 의구심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또한 많은 네티즌들은 4년 전 모바일 경선 때부터 맹위를 떨친 ‘문빠’의 댓글부대 조직이 그대로 있다고 믿는다. 실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악성 댓글을 통한 선동적인 언론플레이가 말없는 다수에게 심한 거부감을 유발하는 것은 사실이다. 댓글수준이 조악하고 야비한 욕설이 많다. 저질 악플에는 만만찮은 역풍이 우려된다. 타 후보에 대한 악의적이고 졸렬한 비방댓글을 자제하도록 이끌어야 부메랑을 피할 것이다.

개헌에 부정적이거나 유보적인 유승민·안철수 씨도 마찬가지. 유씨가 강조한 헌법 제1조 ‘민주공화국’, 안씨가 가슴에 늘 품고 있는 ‘국민’이라는 용어를 감안해도 그렇다. 여기에 보다 충실한 헌법체제와 국정운영시스템이 필요하지 않는가. 최고권력자의 권력이 아래쪽으로 대폭 위임되고 일반인의 기본권은 강화돼야 한다. 국민소환제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가 보다 더 반영돼야 한다. 전제적 대통령제는 시급히 내다버려야 할 구시대 유물이다. 정치력은 세력의 크기에 좌우된다. ‘벚꽃대선’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 개헌파에 포위되면 호헌파쪽은 속된 말로 한 방에 훅 간다.

반기문씨와 손학규씨. 회동결과가 실망스럽다는 의견들이 많다. 그간 ‘친박’도 ‘친문’도 싫고, 피로감 안겨주는 이념대결에도 초연하다던 중도성향 인사들이 ‘반-손 연대’ 불발에 우울해한다. 필자 주위 많은 지인과 선·후배 언론인들이 그렇다. 말로는 개혁과 빅텐트론을 외치지만 고질적인 ‘대통령 병(病)’부터 극복했느냐고 묻고 싶다는 것이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를 자칭한 반씨. 2012년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였던 손씨. 비교적 양식있고 경륜있는 두 사람이 제3지대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로 대승적인 상생의 정치에 나서주기를 희망했다. 빅텐트 설립이야 차후 과제다. 이번 회동 후 정치개혁과 개헌이라는 큰 원칙에 두 사람이 함께 공감했다고만 발표했어도 좋았겠다. 어쩌면 YS나 DJ였으면 그랬을 것이다. 손씨는 ‘수구’ ‘뜨거운 얼음’이라는 말까지 쓰며 반씨와는 노선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정확히 따지자면 지금의 정치권 모두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수구세력 아닌가. 보수며 진보니 하지만 다 허울좋은 말장난이 아닌가. 구태여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선을 그으며 견제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견이 많은 실정이다.

그러나 첫술밥에 배부르랴. 지금은 샅바싸움을 하고 있지만 필자 생각에 결국엔 개혁공동정부 연정은 성립될 것이라고 본다.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다. 포용력 있는 합종연횡을 주도하는 이가 최종승자가 될 것이다. 이념과 노선을 초월해 이번에야말로 한 편의 시처럼 공감각을 살린 멋진 정치를 온 국민이 지켜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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