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왕 유방은 수도 낙양의 남궁에 제후와 여러 장수들을 모아 놓고 술자리를 베풀었을 때 이런 질문을 했다.

“누구든지 마음을 탁 털어놓고 말씀을 해 보시오. 짐이 천하를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항우가 천하를 잃은 이유는 무엇인가를.”

고기와 왕릉이 나서 말했다.

“폐하께서는 오만하고 상대를 업신여기는 성품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항우는 감정에 약하고 부하를 사랑했습니다. 그 대신 폐하께서는 도성이나 영토를 차지하면 아낌없이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결코 혼자서 다 차지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항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시기심이 많아 뛰어난 부하를 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손에 넣는 것은 모두 자기의 공으로 돌려서 나누어 주기를 꺼렸습니다. 이것이 폐하께서 천하를 얻게 된 이유입니다.”

고조는 이에 대답을 했다.

“귀공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요. 내 말을 들어 보시오. 나는 유장(진영의 막사) 속에서 작전을 세우고, 천 리 밖에서 승리를 다투는 일은 장량을 따르지 못하오. 내정의 충실, 백성들의 안정, 군량의 조달, 보급로 확보를 도모한다는 일은 소하를 당하지 못하오. 백만 대군을 마음대로 지휘하여 승리하는 능력을 나는 한신에 비교되지 못하오. 이 세 사람들이야말로 호걸들이오. 짐은 이 호걸들을 뒤에서 조종할 수가 있었소. 그러기에 짐이 천하를 얻은 것이오. 항우에게는 범증이라는 빼어난 인물이 있었으나 그는 그 한 사람조차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소. 그래서 나한테 진 것이오.”

고조가 천하를 평정한 뒤 각지에서 반란이 계속 일어나 그때마다 그는 몸소 군사를 이끌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됐다. 그중에는 반역자라는 이름으로 목숨을 잃은 자도 많았다. 그들은 모두 한나라 공신이면서도 어떤 사람은 처형되고 어떤 사람은 살아남았다.

예컨대 고조에 의하여 ‘호걸’ 칭호를 받았던 세 사람 가운데 한신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으며 장량과 소하는 평화로운 만년을 보냈다. 그 행운과 불운, 희비야말로 지배의 역학이 나타내는 냉엄한 현실이라고 할 것이다.

항우가 멸망한 뒤 천하는 평화를 되찾았다. 고조는 낙양에 수도를 정하고 제후들은 모두 신하가 됐다.

그런데 임강의 구왕 관이 항우와의 의리를 내세워 한나라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고조는 노관과 유가에게 명령하여 그들을 토벌케 했으나 쉽사리 함락되지 않았다. 수개월이 걸려서야 가까스로 그들을 항복시키고 낙양에서 그들을 처형했다.

한나라 5년 5월 병사들을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고조는 낙양을 수도로 정할 생각이었으나 제나라 출신인 누경의 설득과 장량의 건의에 의하여 그날로 수도를 관중으로 옮겼다.

6월에는 나라 안에 대사령을 내렸다.

10월 연왕 장도가 반역하여 대군을 점령했다. 고조는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여 연왕을 생포함과 동시에 태위인 노관을 연왕에 임명하고 번쾌에게 대군을 공격하게 했다.

본디 항우의 부하였던 이기 또한 모반했다. 고조는 몸소 이를 정벌했다.

이기는 항우가 패배할 당시 진나라의 영주였으나 고조에게 항복했었다. 고조는 그를 영천영주로 임명했었는데 고조가 낙양에서 제후들을 소집했을 때 이기는 자신이 혹시 숙청이라도 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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