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카라스갤러리에서 만난 이승철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수탉 그리는 이승철 작가
세상 호령하려는 제왕 같은 닭 그려
늦게 시작한 계기, 창작의 발돋움 돼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꼬끼오~!’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시작된 정유년(丁酉年) 새해의 명절이 코앞에 다가왔다. 십이지신도 중에서 닭(酉)은 울음으로써 어둠 속에서 희망의 빛을 예고하는 서조(瑞鳥)로 여겨져 왔다.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상에서 생활하는 닭의 이중성은 어둠과 밝음을 경계하는 새벽의 존재로 상징된다.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카라스갤러리에서 만난 이승철 작가가 푸근하고 인자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이승철 작가가 하얀 A4 용지 위로 연필을 들고 몇 번 쓱쓱 그리니 어느새 닭이 완성됐다.

“그림을 선물 받으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림을 선물로 받는 일이 많진 않잖아요. 세상이 험난한데 닭의 기운을 받으시라고 이렇게 선물로 드려요.”

그가 그린 닭은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쉴 새 없이 모이를 먹는 그런 가축이 아니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발톱은 대지를 꽉 움켜진 것 같으며, 붉은 볏은 힘 있는 왕관처럼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 있다. 큰 눈은 정면을 직시하고 있으며, 닭은 한국의 색으로 강렬하게 표현돼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세상을 호령하려는 제왕 같다. 그림에서 수탉은 절대적인 권력과 원기 왕성함의 상징이다.

▲ ‘제왕이 돌아왔다, Return of the King’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이승철 작가의 작품. 닭을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승철 작가는 “일반 작가들은 닭을 멋있거나 예쁘게 똑같은 모습으로 그린다. 저는 그런 닭을 그리고 싶진 않았다”며 “닭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덕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곤 다섯 가지 덕을 캐릭터화했다”고 설명했다.

예로부터 닭에는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고 전해지고 있다. 닭의 벼슬(冠)은 문(文), 발톱은 내치기를 잘한다 해서 무(武)를 나타낸다.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이며, 먹이가 있을 때 ‘꼬꼬’ 거리며 자식과 무리를 불러 모아 인(仁), 하루도 거르지 않고 때를 맞춰 울어서 새벽을 알림은 신(信)이라 했다.

이 작가는 다섯 가지 덕에 오행의 각 기운과 직결된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의 다섯 가지 기본색 오방색(五方色)을 더했다. 음양오행설에서 풀어낸 다섯 가지 순수하고 섞음 없는 기본색으로 한국 색의 미(美)를 표현했다.

2년 전부터 닭을 그려온 이 작가는 책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그는 “민속이야기가 담긴 책을 보고 닭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전부터 계속 그려왔는데 지난해 겨울부터는 오로지 수탉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닭에는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애달프기도 하고, 귀엽고 생동적이기도 하다. 눈은 우리와 대화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닭을 그리면서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 ‘제왕이 돌아왔다, Return of the King’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이승철 작가의 작품. 닭을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그의 그림 속 닭의 눈은 부리부리해 마치 캐릭터 ‘앵그리 버디’가 생각난다. 이 작가는 “닭의 눈은 원래 정말 작다. 어떤 생명체든 상대방을 가장 제압할 수 있는 게 눈이다. 눈싸움에서 지면 끝”이라며 “눈은 마음의 창이다. 눈동자를 통해 본 모습이 매력적인 오브제가 된다. 그래서 눈을 작게 그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림을 보는 사람에 따라 닭을 슬프게 보기도, 외롭게 보기도, 화가 난 것으로 보기도 하시더라고요. 보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게 맞죠. 그림을 그릴 때 작가의 감정이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강한 작품을 그려도 슬프면 눈이 슬프게 그려지더라고요.”

그의 표현기법은 다양하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한 가지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여느 작가와 달리 그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닭을 그린다. 그는 “기본적인 것을 보여준 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더 나은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이 먹고 늦게 화가의 길에 입문한 저는 두려울 게 없었다.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 쉽지 않았다”며 “일반적인 회화의 발상보다 다른 발상을 주는 것이 예술의 세계에서 내가 살아갈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료에 특수성을 줬다. 실력이 더 쌓이면 설치미술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국도 어렵고, 개인마다 힘든 일도 많은 이때 닭을 보면서 기운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문화로 많은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잖아요. 그게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그림 한 장으로 수천만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요. 그게 저의 예술가로써 목표입니다.”

▲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카라스갤러리에서 이승철 작가에게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는 배카라 관장과 박서현 큐레이터. ⓒ천지일보(뉴스천지)

한편 카라스갤러리(배카라 관장)가 이승철 작가의 전시 ‘제왕이 돌아왔다, Return of the King’로 새해를 맞았다. 배카라 관장은 “이승철 작가의 작품은 다른 작품과 다르게 닭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며 “다사다난했던 병신년이 가고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전 국민이 힘들고 지쳐 있으니 닭의 영롱하고 힘찬 기운을 받아 가시길 바라면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2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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