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지난해 7월, 미국 정부가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을 인권탄압의 원흉으로 제재대상에 올렸을 때 북한은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며 ‘선전포고’로 간주한다고 발끈했었다. 그 당시 미국 정부는 북한의 실질적 2인자 김여정에 대해서는 명단에서 제외시키는 ‘배려’를 했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북한을 너무 코너로 몰지 않겠다는 분리의 원칙도 있었겠지만 모름지기 김여정의 ‘힘’을 잘 몰랐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김정은의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김여정은 현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며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공식 직함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파워는 북한 내에서 완전한 2인자이다. 그는 할아버지 격인 노동당 선전선동 부위원장 김기남을 비롯하여 제1부부장 이재일, 역시 제1부부장 최휘 등을 혁명화 보낼 정도로 막강하다. 그동안 혁명화를 다녀온 최룡해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역시 김여정에 밉게 보여 혁명화의 덫을 피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김정은 턱 밑에서 파워게임을 벌이는 호위사령관 윤정린 대장과 국가보위상 김원홍의 갈등도 일단락 잠재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드디어 미국이 김여정의 이런 존재를 확인하고 이번에 인권 탄압의 또 다른 주모자로 제재대상에 올리게 된 것이다.

미국 정부가 북한의 심각한 인권 상황을 문제 삼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작년 7월 김정은을 첫 인권 제재 대상에 포함한 데 이어, 재차 ‘백두 혈통’을 인권유린의 책임자로 지목한 것이다. 퇴임을 앞둔 오바마 행정부의 이 같은 대북 제재 의지는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11일(현지시간) 김여정을 포함한 개인 7명과 국가계획위원회·노동성 등 단체 2곳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김여정(Kim Yo Jong)이 “김정은의 여동생”이란 점을 분명히 밝히고 생일도 “1989년 9월 26일”로 명기했다.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김여정을 1987년생으로 추정해 왔고, 1988년생일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김여정의 나이에 대해서는 현재 미국에 그의 이모 고영숙이 망명해 살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아마도 1989년생보다 1987년생일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그 정도 나이는 돼야 북한 권력의 정점에 부상하지 아직 20대 말이라면 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말이다.

미국은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와 엄격한 검열을 문제 삼으며, “선전선동부가 검열을 담당한다”고 김여정의 제재 배경을 밝혔다. 이 외에 최휘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민병철·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 강필훈 인민보안성(경찰) 인민내무군 정치국장, 김원홍 국가보위상, 김일남 함경북도 보위국장도 명단에 올렸다. 미국 정부는 특히 민병철 부부장에 대해 “정치 사찰과 숙청을 담당하며 ‘저승사자(angel of death)’로 알려져 있다”고 분명하게 명시했다. 현재 북한 노동당 안에서는 조용원 부부장은 김정은의 오른팔, 민병철은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오른팔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민병철은 2013년 장성택 숙청 시 조연준의 오른팔로 앞장서 피비린내를 풍겼다. 조연준은 당중앙위원회 책임비서로 실권을 쥐고 있다 보니 은근히 그의 뒤에 줄서는 간부들이 많다고 한다. 내각의 최고 기관인 국가계획위원회와 노동성이 명단에 포함된 것은 북한 근로자 해외 파견에 대한 제재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국가계획위원회는 우리의 기획재정부처럼 예산을 편성하고 배분하며 경제계획을 수립하는 등 사실상 경제 및 행정의 중심기구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오르면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금융거래가 금지되며 미국 입국도 할 수 없다. 미국과 실질적 관계가 없는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는 상징적 의미뿐이지만, 북한은 작년 7월 김정은 지정 당시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범죄행위”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며 반발했다. 우리 정부 당국자는 “김여정의 제재 대상 지정도 북한 입장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지금 선전포고를 운운하면 곧 취임할 트럼프 행정부를 직접 도발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진퇴양난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됨으로써 “햄버거를 먹으며 김정은과 대화하고 싶다”는 트럼프의 약속도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 셈이다. 김정은의 미국 입국이 불허된 마당에 도대체 어디서 만나 햄버거를 먹는단 말인가. 대타로 워싱턴을 방문할 수 있는 황병서 총정치국장도, 김여정도 역시 제재 대상이긴 마찬가지다. 북한의 문은 더욱 굳게 닫히게 됐다. 그만큼 북한의 고립화도 가속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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