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소탈한 풍모로 세계인의 존경을 모으는 프란치스코 교황마저도 북한 핵을 걱정하고 나섰다. 교황은 바티칸 주재 각국 대사들에 밝힌 교황청의 신년 외교 정책 설명에서 북의 핵이 세계적인 핵무장 경쟁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북한 핵이 초월적인 교황의 걱정거리로까지 부각되고만 것은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물렁한 대북 정책과 중국의 앞 다르고 뒤 다른 이중 플레이(double play)가 결정적으로 작용해서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무리 미국과 유엔이 강한 압박책을 내놓아도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하는 중국이 북의 숨통이며 살 길인 뒷문을 열어주어 그들에 대한 압박 효과를 떨어뜨려 놓기 일쑤였다. 이렇게 북을 다스리는 책략도 부족했지만 중국을 상대하는 강대국 외교에서마저 실패함으로써 오바마 행정부는 북에 핵 기술 고도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와 시간만을 벌어주었다.

북의 핵 기술 진전은 실증적으로 뚜렷한 것이어서 그 대비가 급박할 수밖에 없었다. 북은 한·미·일을 향한 핵 공갈을 쏟아내면서 공개적인 도발 책동으로써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미사일 실험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개발 작업을 서둘러왔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 차원에서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의 배치를 계획한 것은 이 같은 북의 불장난에 대한 당연하고 자연스런 반응이며 방어책이라고 할 수 있다. ‘THAAD’는 누가 뭐라 해도 현존 세계 최강의 미사일 방어무기다. 설사 그런 최고의 효과적인 무기가 아니라할지라도 국가의 본령(本領)인 국민의 재산과 생명 보호 및 영토 보존에 최선을 다하는 책임 있는 정부라면 그 다음의 차선책이라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길게 설명할 일도 아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누구도 간섭할 수 없고 간섭이 있다면 단호히 배격해야 마땅한 안보 주권, 국가 주권, 국민 주권 사항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THAAD’의 장거리 초정밀 레이더가 그들 내륙의 군사 동태와 기밀을 훤히 잡아낸다 해서 이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거친 반응은 철저히 그들 본위의(self-seeking) 중국 이기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그들이 들이대는 ‘반대’의 근거는 ‘THAAD’가 그들의 핵심이익을 침해한다는 것이지만 이는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그들의 핵심이익 자체까지를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이 논리가 그들의 핵심이익 때문에 주권 국가인 우리의 핵심이익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면 ‘어불성설(語不成說)’도 이런 터무니없는 ‘어불성설’이 있을 수 없다. 이는 큰 나라의 오만무례이며 이웃 나라에 대한 내정간섭의 극치로 간주되기 쉽다. 더구나 ‘THAAD’를 배치할 수밖에 없는 직접적 원인인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그들은 구변(口辯)으로 내는 생색에 비해 실질적으로 기여한 것이 별로 없다. 이런 처지에서 긴급 대응이 불가피한 우리의 방어조치를 시비하는 것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분명하게 사리를 따진다면 ‘THAAD’를 배치한다 해서 우리를 ‘억압’하고 ‘압박’하며 ‘겁박’하려 드는 것은 그들의 방향착오이고 실수다. 중국은 우리가 아니라 핵 무장 추구로 우리의 대응을 불가피하게 만든 북을 더욱 강하게 ‘압박’하고 ‘억압’하며 ‘겁박’하고 그들이 훤히 열어놓은 대북 규제의 뒷문을 굳게 닫아 걸어야만 마땅하고 옳은 일일 것이다.

사리가 이러하다면 ‘THAAD’ 배치에 보복한답시고 한류(韓流)에 제동을 걸고 화장품을 비롯한 몇몇 품목에 대해 수입을 금지시키며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불이익을 주면서 그 같은 조치들을 늘려가려 은근슬쩍 시도하는 것은 졸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들 스스로도 그것이 그리 떳떳한 일이 아님을 모르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조치들이 한국의 ‘THAAD’ 배치에 대한 보복조치임을 세계 앞에 당당히 드러내거나 선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그들의 그 같은 조치가 우리에게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길게 내다본다면 그들에게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되는 측면이 많으면 많지 별반 큰 이익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저들은 투자 유치의 결정적 요인인 국가 신인도(信認度)를 잃게 되는 것이 뼈아프다. 더구나 한때 욱일승천의 기세를 보인 저들의 경제 사정도 지금은 그리 썩 좋은 것이 아니며 저임금 구조가 갖는 세계적 생산 기지의 매력도 많이 사라진 상태다. 여기에 어떤 나라와 조금만 비위가 상해도 국가가 나서 보복의 칼춤을 추어대는 불안정한 시장이라면 신규 진출은커녕 기(旣)진출 기업들도 새롭게 뜨는 시장인 인도나 베트남 미국 등지로 활동 근거지를 옮기려 할 것이 불 보듯 빤하다. 확실히 부자가 된 저들은 겸손을 잃고 필요 이상으로 쉽게 성을 내며 심통을 부리고 분(忿)을 터뜨린다. 그에 의한 보복의 칼춤이 남에게 타격을 가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길게 보아 그들 스스로 입는 자해(自害)적 타격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아직은 저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급기야 중국은 위험한 국면으로 한 발 더 내디뎠다. 군사력을 동원해 주변 나라를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12대의 폭격기 편대로 우리의 영토인 이어도 일대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해 우리 전투기의 대응 출격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제주도 남방 해역을 돌아 대한해협을 거쳐 동해까지 진출해 한바탕 무력 쇼(show)를 벌이다가 서태평양으로 진출했다. 이 바람에 한때 한·일·중 전투기들이 어지럽게 뒤섞이어 마치 동북아 3국의 공중 대회전(大會戰)을 보는 것과 같은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했었다. 중국의 이런 모험은 더 말할 것 없이 미국과 일본을 시험하며 놀리고 우리를 겁박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에 우리는 쫄기보다 ‘안 좋은 이웃’의 행태를 보이고 나선 중국에 대해 새삼 우리 전래의 불굴의 정신과 민족적 기상을 가다듬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들의 모험이 저들에게 벌어다 준 것이 별 것 없다고 할 수 있다. 도리어 저들에게 버거운 새로운 부담이 생겼다. 바로 우리에게 독자적인 대응 능력의 강화를 절박한 숙제로 안겨준 것, 동시에 저들이 털끝을 세워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미 동맹의 강화 및 한·미·일 삼각공조의 활성화에 우리의 노력이 집중되도록 우리를 밀어내는 역효과를 낳은 것 등이 그것이다. 저들의 겁박을 이겨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대통령이 되면 ‘THAAD’ 배치를 철회하겠다고도 했다. 그런가하면 일부 국회의원들은 중국을 방문해 스스로들의 주장과는 달리 저들의 이간지계(離間之計)에 힘을 실어준 것이 아닌가 의심을 사기도 했다. 왜 이렇게 쫄아야 하는가. 쫄면 저들은 더 달려와 겁박할 것이다. 그렇다면 막연한 ‘공포 그 자체(fear itself)’에 사로잡힘이 없이 비상하게 강한 정신으로 결연해져야 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 숙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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