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순국한 지 100년, 우리는 과연 안중근 의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일부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독립운동가 정도로만 알고 있지 않을까.

이제 우리가 단순 기념행사에 그치지 않고 100년 전 순국한 안 의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안 의사의 생각과 정신은 한국을 넘어 일본, 중국, 나아가 세계의 관심사이며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취급하던 일본 우익의 지배세력과는 달리 일본의 지식인들은 오래 전부터 이미 한 세기 전 ‘동북아공동체’를 구상할 정도의 안 의사의 정신세계에 깊이 매료되어 어쩌면 우리보다 많은 자료수집과 연구를 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 정도를 넘어 안 의사의 평화사상을 흠모하여 2500킬로미터를 도보순례한 일본인 테라시타 다케시(57) 씨는 “서거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가 생각하고 말씀하셨던 세계평화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라 밝혔다. 그는 역사공부를 통해 안 의사를 알게 됐고 “이미 100년 전 한국, 일본, 중국이 힘을 모아 평화로운 나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 안 의사의 혜안(慧眼)에 매료됐다”고 한다.

동북공정 등 한민족 역사 왜곡을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삼는 중국마저 지난 25~26일 하얼빈과 뤼순에서 열린 국회 외통위 대표단의 안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행사를 공식 승인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안 의사 저격 장소도 특별관리 하고 있다.

왜일까.  

안 의사는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뤼순 감옥의 차디찬 바닥에서도 자신의 목숨보다 조국의 미래를 먼저 염려했던 대인이었다. 그리고 그 대의는 대한의 독립을 넘어 평화를 말했다. 즉, 이토 히로부미가 민족의 원흉이기에 저격했다기보다 인류평화를 해치는 자였음을 알리는 총탄이었던 것이다.

안 의사는 독립운동가이기 전에 먼저 교육자였다. 그는 조선이 부국강병의 자주국가가 되기 위해선 서양의 선진문물을 알아야 한다고 믿어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신식 군사 교육을 가르쳤다. 그는 무지(無知)가 외세의 총칼 앞에 짓밟힐 수밖에 없음을 이미 알았던 것이다. 교육자로서 우리나라가 일본의 치욕을 당한 것은 지식인을 비롯한 국민의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에서도 유언과 같은 글을 남겼으니 “일일부독서(一日不讀書) 구중생형극(口中生荊蕀)- 大韓國人 안중근”이다. 즉,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이러한 생각과 정신은 거저 된 것이 결코 아니었음을 꼭 알아야 한다. 바로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일화에 볼 것 같으면, 독립운동을 위해 집을 떠난 안 의사는 심신이 지쳐 어머니를 찾아 고향을 향했다. 집에 도착한 안 의사는 불 켜진 방문 앞에서 어머니를 나지막히 불렀고, 아들의 목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버선발로 뛰어 나올 줄만 알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 아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려 나가고 없다. 큰 뜻 이루었다는 소식 듣지 못했는데 누가 와서 나를 부르느냐’는 대답이었다. 안 의사는 바로 여기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남을 이기려는 사람은 먼저 반드시 자기를 이겨라’는 깨달음이다. 이러한 강의(剛毅)한 의지력을 키우는 데는 무엇보다 어머니의 희생어린 교육이 있었음을 발견케 된다. 또 아들의 구형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편지를 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그 편지를 읽은 안 의사는 어머니의 뜻대로 항소를 접고, 어머니가 직접 지어 보내 주신 수의를 입고 뤼순 감옥에서 이슬처럼 사라졌다.    

결국 안 의사의 나라 위한 희생은 어머니의 희생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자기의 생각을 관철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독립에 대한 의지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고, 그 가르침으로 교육가 또는 종교인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결국 대한국인 안중근이라는 독립투사를 넘어 인류평화공존의 큰틀의 밑그림을 그린 위대한 정치가요 사상가요 교육가요 평화주의자였다. 

안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100주년을 맞아 꼭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서기동래(西氣東來)라 하듯, 물질과 무력의 시대가 끝나고 정신문화를 통한 인류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알리는 원년이 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안 의사의 평화사상을 더욱 빛나게 한 동 시대의 선각자 백범 김구 선생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것이며,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을 갖는 것뿐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그 문화는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라 했으니 전 인류가 의롭고 즐겁게 살 수 있는 ‘홍익인간’의 구현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니 백범이 사랑한 ‘높은 문화’는 ‘하늘문화요 종교문화’였다.

안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는 오늘의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 민족의 태동에서부터 이 순간까지 선각자들이 목숨 바쳐 알리고자 했던 것은 평화 곧 동양평화에서 시작해 인류의 평화공영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를 이제 만천하에 알리고 가르치는 일이 우리의 시대적 소명임을 잊지 말고, 대로(大路)를 걸었던 대인(大人) 안응칠의 기개를 품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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