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 신년 종교좌담회가 ‘2017 정유년 종교가 갈 길’이라는 주제로 6일 천지일보사에서 이상면 대표의 사회로 진행되고 있다. 사진: 박준성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 강수경 차은경 기자] ①편에 이어서 

― 최순실 사태의 이면에 들어가 보면 종교와 정치의 함수관계가 있다.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고 타락한 유사 종교 내지 개인의 욕심을 위해 정치를 이용했던 모순의 극치다.

박 : 종교계도 그렇고, 우리사회에 패거리 문화가 만연해 있다. 종교·정치·학술적이건 간에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이 열려서 소통하는 훈련이 안 돼 있다. 어느 한 가지 가르침을 자기 걸로 소화한 다음 그게 진리라고 믿고 그게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하는 게 있는데, 종교의 권력화도 그중의 하나일 수 있다. 종교가 권위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세속적 권력을 가짐으로 인해서 더 권위가 커진다고 생각하고, 또 권력은 세속적 권력으로 정치만 하는 게 아니라 종교적 권위를 뒤집어써야만 훨씬 더 권력이 커진다는 생각이다. 이 양자 때문에 우리사회가 이렇게 정교 야합 권력 유착이 생기지 않았나. 핵심 중 하나는 종교가 기능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 종교의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가 타당하다고 보는가.

박 :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권력은 분리돼야 한다는 면에서 정교분리에 동의한다. 원칙적으로 인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종교라는 권위가 세속적 권력을 가졌을 때 좋을 수도 있다. 신정(神政)이다. 기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률적으로는 인류가 동의하는 것은 많은 부패와 살인, 패거리 문화. 확률적인 것으로 봤을 때 ‘권위’와 ‘권력’으로 분리했으면 좋겠다는 데 동의한다. 문제는 헌법 20조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는 개인의 종교자유다. 그런데 이걸 강조한 나머지 아주 불쾌할 정도로 다른 사람의 종교가 틀렸고 한다. 종교자유는 타인의 종교의 자유 선에서 그쳐야 한다. 타인의 종교의 자유를 넘고, 진리를 펼치고 가르치는 유일한 수단으로까지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조 : 우리 사회의 패거리문화는 얼마 못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점차 종교도 개인으로 넘어가고 있다. 패거리에서 개인으로 넘어간다. 앞으로는 패거리를 자꾸 조장하는 사람은 종단의 대표로 뽑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국 헌법정신이 관용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다원성이라는 것은 관용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앞으로는 종교지도자들 패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관용이 핵심이 될 것이다. 민주공화국의 핵심이 관용이다.

우 : 정교분리는 타당하다고 본다. 최순실 사태가 과연 정치와 종교의 관계인가는 생각해볼 문제다. 권력의 사유화, 즉 공사구분이 안 된 게 작동했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 바닥에는 정교분리 원칙과 이어지는 점이 있다고 본다. 종교는 이웃의 고통이 내 고통으로 느껴지는 보편적 삶의 가치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그런 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러나 정치는 어떠한가. 정치는 집단 논리다. 권력을 위한 패거리 문화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서 권력을 잡기 위한 패거리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함께 함’을 이야기하는 종교가 특정 패거리, 정치적인 형태로 취해진다면 철저하게 자멸하는 길이다. 종교, 정치 양 측 모두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교분리는 단순한 법률 조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식의 문제고, 종교라는 근본적 가르침 즉 이웃의 고통을 함께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얼마나 일상에서 생활화 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기독교적 측면에서 종교개혁50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에 대해 기념행사를 하기 이전에 개혁보다 더한 각오로 새롭게 나야 하지 않을까. 정유년 새해는 어떠해야 하는가.

조 : 우선 종교인들은 자기성찰이 있어야 한다. 염수정 추기경이 일신우일신이라고 했다. 계속 고민하라고 한 것이다. 이제는 남 얘기하지 말고 이제는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우 : 종교는 기본 정신에 철저해야 한다. 종교적 가르침을 모르는 게 아니라, 가르침의 일상화와 체화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종교 가르침이 해가 되고 패거리 문화가 되는 것인가. 말로는 유명 스님 신학자 좋은 이야기 다 한다. 얼마나 이것을 삶의 현장에서 구현해 나아가느냐의 문제다. 이러한 실천 체화 일상화의 문제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서로 내 것 만이 아니라 이웃 종교에 대해서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박 : 정치인은 100년쯤 뒤를 보고 정치를 했으면 한다. 유명한 말이 있다. 정치가는 미래세대를 보고 정치를 하지만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보고 한다고 한다. 우리사회에서 정치가가 많은가 정치꾼이 많은가. 종교인은 어떠한가. 종교인은 종교지도자를 말한다. 종교지도자인가. 종교꾼인가. 종교지도자라면 생각이 다르고 사는 모습이 다른 한 민족이, 세계인이 어떻게 하면 잘 살 것인지 걱정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물질적인 것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다 행복하게 서로 보듬고 살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나치에 부역한 사람도 자기가 잘못한지 몰랐다. 악의 평범성이라고 했다. 자기가 아무것도 안했다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이었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잘못됐다면 거기에 이해관계를 붙이지 말고 확실하게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움직이는 것이 국민이라야 한다. 갑자기 곪아서 터지고 나서야 모여서 하니까 너무나 상처도 크고 힘이 드는 것이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게 혹시나 우리 사회를 어렵게 만들지는 않았나. 종교인으로서는 더욱더 그러한 생각을 해야 한다.

― 세월호 사건, 국정농단 등이 현실로 대두된 상태에서 잘못된 부분은 우리가 잘못된 걸로 바라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호도해서 지나치게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그것대로 잘못된 것 아닌가. 종교는 이런 부분에 대해 정리를 제대로 해줘야 한다. 종교가 어떤 잘못된 부분에 편승하고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옳고 그름을 분별시키고 정리하는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오늘날 모든 부분에 대해 종교적인 측면에서 바라 봤을 경우, 종교의 부패와 타락은 종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적인 현실까지도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이 뭘까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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