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박준성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박광서 종자연 대표·전 서강대 교수

종교지도자, 몇 명이나 제대로 됐나
‘종교의 본질’ 가르쳐주는 이 없고
무엇인지 공부하려는 교인도 없어
‘패거리 문화’ 만연해 이단시비까지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예수·부처 가르침 실현된 적이 있나
종교가 거듭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
종교목적 상실, 인간적인 집단화해
‘종교의 목적’ 실현되면 ‘평화·절제’

조맹기 전 서강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낙원 회복 위해 이성으로 돌아가야
‘어둠 속에 빛 있다’ 빛을 따라가야
종교의 다원성, 관용있어야 성립돼
남 얘기 말고 자기 성찰로 일신해야 

[천지일보=강수경·차은경 기자]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로 드러난 정교유착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정유년 새해 종교가 갈 길을 모색한 천지일보 신년 종교좌담회가 6일 천지일보사에서 이상면 대표의 사회로 진행됐다.

‘2017 정유년 종교가 갈 길’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서 패널들은 헌법이 명시한 정교분리의 원칙에 벗어난 정치와 종교계 실태를 날카롭게 꼬집고, 다양성과 관용을 실천하는 종교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종교계가 이웃 종교에 대한 열린 자세로, 종교의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종교좌담회에는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로 활동하며 종교차별 반대에 앞장서고 있는 박광서 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한국언론학회 커뮤니케이션과 역사분과 회장 조맹기 전 서강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지난해 ‘쇼!개불릭’을 발간해 성직자와 불교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사회를 맡은 이상면 대표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종교가 무엇인가’ 본질을 모르고, 모르고 있는 이유는 알려고 하지 않은 부분도 문제”라며 “우리가 원론적인 부분부터 생각하고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종교계에 화두를 던졌다. 또 “종교의 부패와 타락이 종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와 국가적인 현실까지도 이렇게 만든 근본 원인이 뭘까 라는 것을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덧붙였다.

신년 종교좌담회의 첫 화두는 지난해 어지러웠던 종교계를 되짚으며 한국 종교계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진단이었다. 그다음으로는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임에도 오히려 종교 때문에 끊이질 않고 있는 세계분쟁, 겉으로는 화합‧상생을 외치지만 이면에는 갈등이 자리하고 있는 국내 종교계,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에 위배되는 행태들, 이 가운데 올해 닭의 해를 향한 기대감 등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 지난해까지 한국 종교계의 실태를 간단히 진단한다면.

우희종(우) : 종교가 우리 삶에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근대가 가진 과학 문명 시대와 자본주의가 상징하는 우리의 이성과 욕망을 넘어서 최소한 초월적인 영역까지 폭을 넓혀주는 기능을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작금의 행태는 오히려 세속적 가치에 함몰돼서 돈이나 권력에 오히려 앞장선 것 같다.

조맹기(조) : 염수정 추기경은 크리스마스, 연초에도 말했는데 ‘어둠 속에 빛이 있다’ 그러니까 빛을 찾아가는 가톨릭 신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분명 우리 사회에는 어둠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어둠이 깔려 있어야 제대로 빛을 본다고 하신 것인데. 어둠이 깔려 있는 것은 우리 현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박광서(박) : 어둠이 있어서 밝음이 있다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어둠이 짙으면 밝음이 더 드러난다는 의미다. 가끔은 종교가 평균 수준의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악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종교의 이면이라고 생각한다. 이분법적인 생각으로 종교가 오히려 사회 갈등을 촉발 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종교는 개인적인 평화‧안심뿐 아니라 사회의 건강성을 위해 역할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부족하다는 점을 되돌아본다.

― 종교의 출현목적은 바로 평화다. 그럼에도 세계 다툼·분쟁·전쟁의 유발 원인 중 80% 이상이 ‘종교’ 때문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지구촌을 덮고 있다고 보는가.

박 : 종교인들이 사회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종교인은 사회의 ‘평화’ ‘함께 살기’ 등을 ‘사랑’과 ‘자비’로 이루기로 늘 마음을 굳게 세우는 사람이기에 사회도 잘 알아야 한다. 종교인들도 눈을 크게 뜨고 내 문제, 내 종교만의 문제에만 국한하지 말고 ‘우리 이웃, 우리 사회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알아야 종교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해야 할 것인지도 세울 수 있다.

조 : 한마디로 예(禮)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종교가 하나는 믿음이고 하나는 집합표상인데 쉽게 예를 들면 예(禮) 중에 가장 높은 예의가 제의다. 제사지낼 때 ‘예(禮)’ 질서가 있고 절제가 있다. 또 그곳은 혼과 같이하는 장소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등은 너무 이러한 것들을 강조하니 그것만 자꾸 이야기한다. 무슬림의 극단주의들은 sacred(종교적인) 정신이 철저하다. 기독교인들은 그것에서 조금 벗어난다.

우 : 종교인이 믿는 신, 예수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거꾸로 묻겠다. 예수님, 부처님의 가르침이 과연 지구상에서 한번이라도 실현된 적 있는가. 없다. 여전히 사회는 갈등과 혼란 속에 있다. 그 만큼 그 집단이 진정한 종교의 실현 목적이나 존재 이유에 대해서 거듭 태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한다. 역사상으로 종교전쟁이 많은 것, 종교권력이 다른 세속과 야합해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은 종교가 목적을 상실하고 적당히 포장된 인간적인 집단화가 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종교의 목적이 제대로 나타난다면 ‘평화’ ‘절제’ ‘이타적’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신념’ ‘종교’라는 형태로 포장되기 때문에 더욱더 변화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것이 인간역사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된다.

박 : 잘 알다시피 서구의 역사는 400여개의 종교전쟁의 역사라고 하는 말이 있다. 왜 그럴까. 종교가 그렇게 싸우자고 만든 것이 아닐 것이다. 개인의 종교와 사회적인 종교의 역할에 대해 충분히 합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돈 권력 종교가 합쳐진 게 우리사회다. 어떻게 합쳐졌을까. 종교는 권력과 돈과 합쳐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합쳐지는 순간 사회 갈등이 극대화된다. 종교가 얼마나 권력과 팽팽하게 거리를 두느냐. 정치와 돈 종교가 얼마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긴장관계를 갖느냐가 바로 사회 건강지표와 직결된다고 본다. 그게 종교의 역할이기도 하다.

― 우리나라는 다종교, 다문화 국가다. 겉보기에는 ‘화합·상생·이해’ 관계가 잘 형성된 것 같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종단 간, 또는 종단 내에서도 갈등·모함·핍박·이질감 등이 어느 나라보다도 심하다. 종교적 의미로 양극화 문제가 나타나게 됐는데 그 원인은.

조 : 이성보다 감각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결국은 감각이 아닌 이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창세기에 보면 감각으로 율법을 어기고 따먹지 말라는 과실을 따먹으니 실낙원이 왔다. 이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세상을 열심히 살면서 신과 낙원의 세계, 영원을 가진 세계를 가는 것이다.

우 : 다종교 다문화로서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평화로운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반목하는 부분이 많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많은 종교가 있으면서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서로 배타적이다.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것은 우리나라의 종교들이 서로 간 세력에 있어서 나름 균형을 이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반도에는 본래 불교가 먼저 들어왔지만,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을 거쳐 일제 강점기, 해방 후 개화를 거치면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어느 특정 종교가 다른 종교를 철저하게 배척하기에는 어려운 사회적 상황이 있었다. 2000년 넘어오며 이웃종교 간 대화가 자리 잡는 것 같다. 그럼에도 또 특정 종교 안에서도 보면 ‘주류’ ‘이단’ 이런 논란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들의 권력구조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실제 가르침에 대해 얼마만큼 이해하고 소통하느냐의 문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다름’ ‘차이’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필요하다.

박 : 우리나라 종교인들이 제대로 된 분이 몇 명일까. 종교의 본질이 무엇이냐.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느냐. 공부할 생각도 그런 걸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이 ‘우리 패거리에 들어오면 잘 살 거야’ 이런 것들만 이야기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그걸 이용하기가 참 좋다. 내 편이면 더 많이 줄게. 돈도 권력도. 이러다보니 종교인이 희생됐다. 쉽게 말하면 패거리 문화다. 거기에 속하지 않으면 배제된다. 정치도 통합 공정한 배분이 정치의 근본인데, 내편이냐 아니냐를 따졌다. 종교인도 편승하지 않았나. 그러면서도 ‘내 종교가 훨씬 더 잘 나가’ ‘색깔이 다른 종교는 사라지면 좋겠어’ 이런 생각을 한다. 종교계 내부 이단시비도 그러한 게 있을 것이고, 정치에 줄 대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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