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체력 고갈된 한국 경제… 정부 주도 부양책으로 성장
경제정책 리스크 관리 초점… 알맹이 빠진 ‘맹탕’ 업무보고

[천지일보=임태경 기자] 1997년은 대한민국이 경제 주권을 잃은 치욕의 해로 기억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금융이라는 명목하에 우리 정부에서 경제 주도권을 빼앗았고, 한국 경제는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IMF 외환위기를 겪은 지 20년째를 맞았지만, 그날의 트라우마가 우리 경제 곳곳에 드리우고 있다. 일각에선 지금의 위기는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국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각종 악재가 갈 길 바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데다 올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경제 보복,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 등 한반도를 둘러싼 경제 환경이 가시밭길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실물지표 흔들리고 불확실성 확대

지난해 우리 경제는 정부 주도의 경기부양책으로 성장을 떠받쳤다. 소비 촉진을 위해 개별소비세 인하 카드를 꺼냈고, 추가경정예산(추경) 등의 재정보강으로 정부소비를 활성화해 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기초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재정으로 버티던 한국 경제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파와 조선·해운업 등의 구조조정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진해운 법정관리와 자동차 파업, 갤럭시노트7 생산 중단과 더불어 지진·폭염 등의 돌발 악재가 연이어 발생했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한국 사회 전반을 마비시켰고, 국정 컨트롤타워마저 상실돼 한국호는 방향키를 잃은채 표류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경제 불씨를 살리기 위해 부랴부랴 추경 편성과 일자리 지원 등에 나섰지만, 꺾인 경기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 경제의 불안감은 주요 경제지표에서 곧바로 반영됐다. 실물경기는 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11월 기준 청년(15~29세) 실업률은 8.2%로, 전체 실업률(3.1%)의 2.6배를 넘어섰다. IMF 외환위기의 영향을 받았던 1999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경기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체감 지표인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지난달 기준 94.2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94.2) 이후 7년 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11월에는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전달보다 6.1p나 급락하기도 했다.

경제 성장의 발판이었던 수출은 외환위기 당시에도 증가세를 보였지만, 최근에는 2년 연속 감소했다. 2년 연속 마이너스 수출을 기록한 것은 1957~1958년 이후 5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세계 수출 순위도 지난해 6위에서 8위로 밀려났다.

이와 같은 우리 경제의 현실을 두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됐고 건설수주 등 선행지표도 부진해 경기가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최근 투자 및 생산 관련 지표의 부진이 일부 완화됐지만, 우리 경제의 성장세는 여전히 미약하다는 평이다.

◆알맹이 빠진 경제정책… 위험관리 초점

정부는 IMF 수준의 위기를 부인하고 있지만, 올해 경제정책을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출 정도로 대내외 불확실성에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5일 경제부처 업무보고에서 “올해 한국 경제의 화두는 불확실성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라고 말할 정도였다.

특히 정부는 2017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을 당초 예상치보다 0.4%p나 낮춘 2.6%로 제시했다. 정부가 실질성장률을 2%대로 제시한 것은 외환위기 터널에 갖혀 있던 1999년 이후 처음이다.

정부의 전망대로 내년에도 2%대 성장에 그치면 3년 연속 2%대 성장에 머물게 된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2014년(3.3%)을 제외하면 모두 2%대 성장률을 기록하는 셈이다.

암울한 경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지만, 새해 업무보고에서 발표한 올해 경제정책은 알맹이가 빠진 ‘맹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조원 이상의 돈을 풀어 경기 불씨를 살리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지만, 이전에 발표됐던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고, 대내외적으로 맞닥뜨린 위기 상황을 타개할 정책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경기 하강을 막고 경제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교수는 지난달 15일 열린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한국경제는 트럼프노믹스 등장, 유로존 위기 지속, 브렉시트 후폭풍, 일본 국가채무, 한반도 지정학적 위기 등 5대 외풍과 자영업·부동산·가계부채 3대 뇌관에 더해 ‘김영란 법’ 등 내풍이 몰아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논리를 배제하고 구조조정과 신성장산업육성에 주력해야 하며, 경제정책의 핵심을 일자리 창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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