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고(故) 삼성창업자 이병철(李秉喆) 회장이 지난날 반도체에 투자하기로 결단할 당시에 이 사업의 성공을 확신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지금과 같이 세계시장을 제패하는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을 미리 내다본 듯 모험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보통사람 같으면 간이 떨릴 일인데 큰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그 통 큰 결단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자못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건설의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鄭周永) 회장도 통 큰 결단과 모험을 무릅쓰기로는 이병철 회장과 앞뒤의 순위를 매길 수 없을 것이다. 울산 해변 갈대밭 불모지에 뿌린 야망의 씨앗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세계 1위의 조선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자동차 생산국의 결실을 창조해냈으니 말이다. 그것이 배짱만으로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미래에 대한 통찰과 확신이 설 때에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두 말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것 역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포항제철의 신화를 일군 살아 있는 철인(鐵人) 박태준(朴泰俊) 회장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그가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세계가 부러워하는 포항제철, 더구나 국내외적으로 최상의 종업원복지를 실현한 인간경영 모델의 포항제철은 태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포항제철은 그의 인본주의적 경영철학과 애국적 헌신이 만들어낸 신화라고 한들 지나칠 것이 없다. 그렇다면 그의 이 같은 포철의 신화를 일군 집념과 의지, 무(無)에서 출발하면서도 앞을 내다본 통찰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들 세 사람에게 공통적인 것은 불확실하고 위험한 미답(未踏)의 미래를 향해 자신 있게 나아간 점일 것이다. 산업 불모지에서의 그 같은 일은 열대의 원시림을 탐험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을 것 같다. 그들은 한국경제에 미답의 길을 찾아낸 개척자들이다. 이들을 개척자의 길에 나서게 한 원동력이 무엇인가. 자칫 자신이 쪽박을 차는 것은 물론 실패하면 공공의 적이 되는 엄청난 일에 도전하면서 무턱 댄 배짱이나 막연한 낙관에 의존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철저한 준비와 계산, 고뇌,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있었을 것은 기본이고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식 및 정보, 판단력을 동원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을 것 같다. 이들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탁월한 직관(直觀; Intuition)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업 감각과 경륜, 철저한 준비와 계산, 고뇌 끝에 나온 어떤 영감(靈感)과 같은 직관을 얻게 된 것이 아닐까. 이 직관에 의해 우물쭈물하는 불필요하게 긴 사유(思惟)나 논리적 추론을 넘어서 ‘사업이 된다 안 된다, 성공할 수 있다 없다’를 한순간에 섬광처럼 꿰뚫어 보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 국민이 북한과 반세기 넘게 아옹다옹하다 보니 국민 전체가 북한 문제 전문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탈북자와 아사자가 그치지 않는 북한, 선군(先軍)이라는 마지막 통치수단에 의존하는 정권, 국제정세의 흐름에 역주행하는 북한, 핵(核)에 의한 한방을 노리고 공갈 협박을 일삼는 북한이 이미 정상적인 나라는 아니다.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은 섭리와 같은 것이다. 이런 마당에 북한이 막장에 왔다는 데로 수렴되고 일치하는 국민들의 직관은 주목할 만하다. 국민들이 접하는 북한에 관한 정보라 해봤자 여기 저기 언론에서 산발적으로 나오는 것이 다이지만 직관이라는 것은 정보와 논리나 추리를 뛰어 넘는 영역이다. 꼭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 박태준 회장의 경우처럼 발군의 직관은 아니더라도 세계적으로 우리 국민처럼 평균적으로 학식이 많고 지능이 출중한 국민은 없다고 볼 때 우리 국민의 직관이 한 곳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대비태세다. 국민은 마음이 절박한데 더 절박해야 할 정치권과 정부가 국민의 관심과 걱정에 호흡을 같이 하지 못하거나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정치권력에 대한 무한 투쟁, 큰 국가 어젠더(Agenda)에 대한 찬반의 시끄러운 내홍(內訌) 속에서도 우리 정부의 어딘가에서 조용히 치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정말 우리의 대비태세는 잘 돼 있는가. 숨 넘어 가는 북한보다도 그 점에 대해 국민의 관심과 걱정이 더 뜨겁다는 것을 위정자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북한 정보에 예민한 것에 비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대해서는 비교적 차분한 것 같다. 틀릴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커트 켐벨 국무차관보가 김정일 수명이 길어야 3년이라고 한 언급, 어느 매체에선가 중국이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 한국, 미국과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는 보도 등은 관심도에서 선거 쟁점을 뛰어넘는다. 국민이 이렇게 예민해 있는 문제에 대해 정부는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만한 충분한 정보와 상황 인식, 대비가 돼있다는 것을 시원하게 대답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과의 교감의 폭을 넓히는 것은 국민의 직감이 언제쯤 어떤 형태로 맞아 떨어질진 모르지만 그런 것에 관계없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북한이 무너지든 회생하든 국민과의 교감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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