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연초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발언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뜬금없이 기자들을 불러 모아 간담회를 하겠다는 발상도 그리 온당치 않았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상황이라면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것이 헌법정신의 구현이다. 그럼에도 검찰수사까지 거부했던 대통령이 갑자기 기자들을 모아 자신의 입장을 밝히겠다는 것은 헌정질서 수호자로서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더욱이 청와대 비서실의 일부 참모들까지 배석시켰다. 홍보수석에게 대하는 태도는 마치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형식보다 내용은 문제가 더 많았다. 뭐 하나 제대로 박 대통령의 진솔함이나 진정성을 엿볼 만한 내용이 없었다. 과거 했던 얘기를 똑같이 반복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태도는 국민 보기에도 민망한 대목이었다. 특정 중소기업을 도왔다는 대목에서는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 운운하는 발언으로 진실을 호도했다. 문제의 본질을 일부러 간과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아직도 내용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5일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 2차 변론이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 이중환 변호사는 예상대로 박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를 전면 부인했다. 물론 대통령 대리인단으로서 박 대통령을 대리하는 것을 탓할 순 없다. 그러나 거기에도 상식이 있고 염치가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아직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핵소추 사유들에 대한 주장을 보면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끝까지 국민과 싸우겠다는 뜻인가.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은 먼저 촛불 민심이 국민 전체의 민심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 헌정사를 뛰어 넘어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연인원 1000만명의 촛불시위를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촛불민심이 민심이 아니라면 대리인단이 생각하는 민심은 무엇이란 말인가.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서, 또 그 대리인으로서 할 수 없는 발언이다.

게다가 이번 탄핵심판의 핵심 내용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서도 쉽게 납득되지 않은 주장을 내놓았다. 박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것은 합병이 이뤄진 후 8일이나 지난 2015년 7월 25일이라며 이미 다 끝난 일에 대해 합병 결의를 찬성하도록 요청받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실무 작업은 사전에 은밀하게 이뤄지는 법이다. 그리고 정상들은 그 결과 위에서 악수를 나눈다. 그것이 상식이요, 관행이다. 이미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기금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진상은 곧 규명되겠지만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주장은 국민의 눈높이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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