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되려면

이창수

 

배추가 김치로 변신하려면
여러 번의 죽음을 거쳐야 한다.
밭에서 뽑혀 뿌리 잘릴 때
배 갈려 두 쪽으로 찢어질 때
소금에 절이고 양념으로 숨죽일 때
제 잎에 둘둘 발려
통에 갇히고 딤채에 잠길 때
이렇게 여러 번 죽은 후
그리고도 자성의 긴 시간을 지나며
썩지 않는 싱싱함을 지녀야
비로소 깊은 맛의 김치가 된다.

 

[시평] 

지금은 세태가 많이 바뀌었어도, 30여년 전만 해도 김장은 겨울을 나는 중요한 필수 품목 중의 하나였다. 겨우내 김장김치만을 먹으며 보내야 하는 집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1월 찬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되면, 집집마다 김장을 담그는 것이 큰 행사 중의 하나였었다. 

밭에서 뽑아온 허연 배추라는 놈이,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그런 깊은 맛이 든 김치로 변해서 우리의 밥상에 올라오면, 실은 우리는 아무러한 생각 없이 그 김치를 맛있게 먹는다. 그러나 배추가 밭에서 뽑혀와 김치가 되기까지 배추는 실로 많은 일을 겪는다. 밭에서 뽑힐 때 뿌리가 잘리는 아픔을 당해야 하는가 하면, 저려지기 위하여 두 쪽으로 잘리는 아픔, 그리고는 이내 짠 소금에 저려지는 쓰라림, 그런가 하면 깜깜하고 답답한 김장독 속에 갇혀서 스스로 숙성이 되어야 하는, 자성의 시간까지, 실로 많은 시간과 아픔을 겪는다.

그렇다. 그러나 어디 김치뿐이랴. 한 사람이 한 생애를 살아오며 겪는 일들 역시 이와 같으리라. 이와 같은 과정을 겪고 난 이후 사람들 성숙한 한 사람으로 이 사회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만 해도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번지는, 그런 속 깊은 사람으로 성숙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기도 한가. 그래서 저 김치와 같이, 살아가면서 겪는 아픔이란, 어쩌면 우리 모두 성숙의 시간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그 단계인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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