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새해 새날이 밝았다. 동녘 하늘위로 떠오른 은혜로운 아침 해를 보며 2017년 한 해의 무사강녕을 기원하는 것은 누구나가 가지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새해 첫날에는 뉴스 기사마저 마음속에 신선하게 전달되는바 단연 해돋이 행사가 돋보인다. 올해 첫 해돋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가족 친지들과 함께 유명산이나 바닷가 등지로 여행을 다녀왔고, 날씨가 맑아 바다에서나 산 위로 떠오르는 일출장면을 보며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으니 산뜻한 출발이다.

올해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은 독도이고, 그곳에서 해는 아침 7시 26분에 떠올랐다. 자료를 찾아보니 내륙에서의 첫 일출은 7시 31분으로 울산 간절곶이 가장 먼저였다. 이어 부산 해운대 7시 32분, 대구 팔공산 7시 36분, 광주 무등산이 7시 37분이었으며 서울은 7시 47분경이었다. 해돋이를 보러 해맞이 축제행사나 일출명소를 다녀온 많은 사람들에게 2017년도의 미명을 여는 첫날의 기분으로 가슴 설레었을 테고, 여행을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일상적으로 맞이한 아침 해가 여느 날과 달랐으니 저마다 새날의 의미가 달랐으리라.

해돋이구경은 마음 설레게 한다는데, 필자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돋이 보러 전국의 유명한 곳을 다녀봤고 그 때마다 느끼는 감흥은 각기 달랐다. 영덕과 울진 등 동해 바닷가에서 일출을 기다리면서 추위에 떨던 일, 그 혹한의 순간을 이겨내고 드디어 맞게 되는 일출의 장쾌함을 맛보던 때 신비스러움은 지금 생각해봐도 가슴이 뛸 정도다. 또는 새벽같이 출발해 어둠에 묻힌 관악산을 등반하고서 정상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일출 광경은 자연에 대해 저절로 머리 숙여지는 순간들이었다. 이같이 어디서 만나든 새해 해돋이는 장관이었던바 그중에서도 어둠에 쌓인 바다를 검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바닷가에서의 일출구경이 으뜸이다.

동해안이 고향인 나는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 광경을 자주 봐 왔고 그 풍경에 매료돼왔다. 지난해 봄날, 고향에서 동기회 모임이 있을 때에도 해돋이 구경을 했는데 멋지기는 마찬가지였다. 해변 숙소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친구와 함께 해돋이를 보았던즉, 출렁이는 파도가 뭍으로 몰려와 바위에 부딪쳐 하얀 포말로 갈라지는 장면도 멋지려니와 멀리 수평선 위 검붉은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 장면은 오랜만에 보았지만 사람마음을 부풀게 하는 묘약 같은 게 있었다. 게다가 그 날은 새벽하늘에 언뜻언뜻 비치는 태양 너머로 무지개까지 떴으니 그 장면은 내가 수없이 많이 보아온 해돋이 장면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그런 멋진 순간에는 나는 빠짐없이 고등학생 때 교과서에 실렸던 동명일기(東溟日記)의 한 구절을 외우며 희열을 다시 맛보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출장면을 묘사한 많은 글 가운데 조선 영조 때 의유당 김씨가 쓴 그 글만큼 일출의 표현이 잘 된 글이 있을까. 그런 까닭에 나는 비단 새해 해돋이가 아니더라도 새벽 바닷가에서 일출을 맞이할 때마다 ‘행여 일출을 보지 못할까 노심초사하여 가끔 영재를 불러 사공더러 물으라 하니, 내일은 일출을 쾌히 보시리라 한다 하되 마음에 미덥지 아니하여 초조하더니…’ 대목을 자주 읊조리곤 했다.

의유당(意幽堂) 김씨가 남편 신대손이 함흥판관으로 부임한 후 명소를 둘러보았다가 1772년(영조 48) 9월 17일에 귀경대(龜景臺)에서 해돋이와 달맞이를 마치고 3일 뒤에 기록한 글이 바로 동명일기다. 그 문장 가운데 ‘… 물밑 홍운을 헤치고 큰 실오라기 같은 줄이 붉기 더욱 기이하며, 기운이 진홍 같은 것이 차차 나 손바닥 너비 같은 것이 그믐밤 보는 숯불빛 같더라. 차차 나오더니, 그 위로 작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가 호박 구슬 같고, 맑고 통랑(通朗)하기는 호박보다 더 곱더라. … 만고천하에 그런 장관은 견줄 데 없을 듯하더라.(이후 생략)’ 일출을 묘사한 장면은 압권이 아닐 수 없다.

2017년 첫 아침 해를 보러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를 찾아 일출명소가 북적댔다는 소식이 들린다. 서울 등 수도권 사람들은 주로 동해안으로 몰리는데, 지난 주말을 이용해 강원권 동해안으로 떠난 관광객들의 차량이 1925만대라고 했다. 강릉 등지에서 해돋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귀경길이 밀려서 6시간 10분이 소요됐다고 하니 이제 젊은이들에게는 새해 해돋이맞이는 일상화되고 있는 행사다. 오가는 고생길에서도 가족과 함께 해돋이 행차는 아무래도 새해의 첫 해를 보면서 올 한해 가족들의 ‘무사강령’을 기원하는 애틋함의 가족애가 아닐까?

설령 해변이나 산상 해돋이를 다녀오지 않았더라도 저마다 새해 소원은 한결 같으리라. 새해 첫날, 나는 여느 날처럼 새벽운동에 나섰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며 밝아오는 여명 너머로 소망을 띄워 보냈다. ‘올해는 복 받아라. 뜻대로 살고지라’ 사실 이 말은 매년 새해마다 가장 행하는 말이고, 가족과 지인, 모든 이웃들에게 기원해주는 소망인 것이다. 그 뜻이 이뤄져 정당한 땀의 가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토 속에서 건전한 상식이 터전을 잡는 우리 사회가 됐음 좋겠다. 고달팠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엔 모두에게 행복한 일들이 많았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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