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수도 6폭 병풍.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새벽 알리는 우렁찬 울음소리
한 시대의 시작 알리는 의미
부부 서약부터 손님 대접까지
행복과 정 표하는 데도 활용돼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닭은 12지의 열번째 동물로, 계유(癸酉), 을유(乙酉), 정유(丁酉), 기유(己酉), 신유(辛酉) 등으로 순행한다. 올해는 34번째 정유(丁酉)년이며, ‘붉은 닭띠 해’라고도 한다. 시각으로는 오후 5시에서 7시, 달로는 음력 8월, 방향으로는 서(西)에 해당하는 시간과 방향을 지키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에 해당한다.

십이지신도 중에서 닭(酉)은 울음으로써 어둠 속에서 희망의 빛을 예고하는 서조(瑞鳥)로 여겨져 왔다.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상에서 생활하는 닭의 이중성은 어둠과 밝음을 경계하는 새벽의 존재로서의 상징성을 가진 것으로 풀이된다.

닭은 길조로 여겨져 왔으며,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고 알려졌다. 닭의 벼슬(冠)은 문(文), 발톱은 내치기를 잘한다 해서 무(武)를 나타내며,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이며, 먹이가 있을 때 ‘꼬꼬’ 거리며 자식과 무리를 불러 모아 인(仁), 하루도 거르지 않고 때를 맞춰 울어서 새벽을 알림은 신(信)이라 했다.

▲ 금계도.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새벽을 알리는 우렁찬 닭의 울음소리는 한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노래 소리로 받아 들여졌다. 민간에서는 밤에 횡행하던 귀신이나 요괴도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시에 지상에서 도망친다고 믿어 왔다.

닭이 주력(呪力)을 갖는다는 전통적 신앙도 이 때문이다. 닭의 울음은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려주는 예지의 능력으로 인정받았다. 예부터 민간에선 장닭이 훼를 길게 세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들이 되돌아가고, 잡귀들의 모습을 감춘다고 믿었다.

축귀와 벽사의 동물로 닭을 정하고 닭그림, 닭피, 닭 등으로 사용하는 풍속도 많았다. 사람들과 같이 귀신들이 출입하는 대문에 닭과 관련된 것을 사용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정월원일(正月元日)조를 보면 새해를 맞은 가정에서는 액이 물러나기를 빌며 닭이나 호랑이, 용을 그린 세화(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그린 그림)를 벽에 붙였다.

▲ 닭그림 문.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닭그림은 입신출세와 부귀공명, 자손중다(子孫衆多)를 상징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의 그림을 걸었다. 닭이 머리 위에 볏을 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관(冠)을 썼다고 표현했다. 시계가 없던 시절 밤이나 흐린 날에는 닭의 울음소리로 시각을 알았다. 수탉은 정확한 시간에 울었기 때문에 수탉의 울음소리를 듣고 시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닭의 울음소리를 기준으로 뫼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

또 민화 속의 닭무속신화나 건국신화에서 닭 울음소리는 천지개벽이나 국부(國父)의 탄생을 알리는 태초의 소리였다. 흰 닭의 울음소리는 나라를 통치할 인물이 탄생했음을 알리며, 자연 상태의 사회에서 국가적 체계를 갖춘 단계를 예고한다.

한국에서 닭이 사육되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대부터인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 시조 설화에 닭이 등장하고 문헌상에는 삼한시대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그 이전부터 사육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육되고 있는 닭은 이탈리아 원산인 난육겸종의 백색 레그혼이다.

닭은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통혼례식 초례상에서 신랑과 신부는 반드시 청홍보자기에 싼 닭을 상 위에 두고 마주서서 백년가약을 했다. 닭을 길조·서조로 생각해 닭 앞에서 일생의 인연을 맺고 행복하겠다는 부부의 서약을 하는 것이다.

▲ 수젓집.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반가운 손님이 오면 닭을 잡아 대접했다. ‘닭 잡아 격을 나그네 소 잡아 겪는다’ ‘닭 잡는데 소 백정 불러오는 격이다’ 등 다양한 속담이 있다. 장모는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 대접했다. 병아리를 날 수 있는 귀한 씨암탉을 사위에게 대접하는 것이다. 손님으로 가서 그 집의 씨암탉을 먹었다면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닭은 정성스런 정(情)의 표하는 데도 활용됐다. 씨암탉이 낳은 달걀을 친척의 생일이나, 결혼·환갑 때 짚으로 달걀 꾸러미를 싸서 부조를 했다. 닭은 하루에 한알밖에 낳지 않기 때문에 매일 모아 10개가 되면 한 꾸러미로 만들었다. 출가한 딸은 친정집에 갈 때 닭을 가지고 가기도 했다.

다사다난했던 병신년이 가고 새로운 정유년이 왔다. 어둠을 물린 빛이 왔음을 예고하는 닭이 지닌 의미처럼 좋은 일만 가득한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 

▲ 쌍계도.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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