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적으로 파란만장한 사연을 간직한 채 병신년의 마지막 태양은 햇무리를 그리며 아쉬움을 머금은 채 그렇게 아련히 넘어갔고, 우리는 또 그렇게 보내야 했다. 특히 병신년 세밑까지 온 나라를 어지럽혔던 최순실 농단의 후유증, 그 농단사태에 장단을 맞춘 정치판의 추태는 정유년 정초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까.

식물 상태에 놓인 국정을 살릴 적임자임을 자처하는 잠룡들이 물을 만난 고기 떼처럼, 판을 치는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현 시국, 정치적 셈법으로 이합집산 내지 합종연횡하며 이해득실을 좇는 정치 아류들, 과연 국민들은 어떤 정치와 제도, 그리고 어떤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까. 지난해 정치와 위정자들의 배신에 가슴이 무너져야 했던 국민들은 이제 아픈 만큼 성숙해졌으리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줄 아는 민족,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속담, 그래서 희망을 품고 새 해 새 시대를 향해 일어나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내고 다짐을 해 본다.

정유년 새아침은 어둠을 이긴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이렇게 밝아왔다. 송구영신, 섭리를 따라 묵은해는 미련 없이 보내야 하고 새 시대를 기쁘게 맞이해야 하는 이유다.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집보다 감옥이 더 익숙했던 죄수번호 ‘264’, 그래서 저항시인 ‘이육사’가 된 그는 그토록 원했던 조국의 독립을 1년 남긴 채 베이징감옥에서 순국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펜으로 저항했으며 언젠가 찾아올 조국의 독립을 알리며 암울했던 시대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했던 저항시인이다. 위의 시는 바로 그의 유품 가운데 초라한 마분지에 쓴 시, ‘광야(曠野)’의 한 소절이다.

육사(본명, 이원록)는 맞이할 조국의 독립을 ‘백마 타고 오는 초인’에 빗대어 나라 잃은 백성들과 함께 그처럼 간절히 기다렸다. 오늘날 해방된 조국에 눈부신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뤘다고 하지만 원치 않는 허무한 권세에 속절없이 굴복당해 우리의 생각과 의식은 또 다시 처절하리만큼 비참한 갇힌 자의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절박한 현실의 때 참으로 필요한 것은 오늘날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그토록 바라고 원하는 세상, 유토피아와 같은 새 세상, 눈물 슬픔 아픔 고통이 없는 평화의 세상,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세상, 정의와 진실과 진리가 대접받는 세상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은 누가 거저 갖다 주는 게 아니다. 육사가 먼저 걸었던 그 길을 오늘 우리가 다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역사가 교훈해주고 있으니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무지하고 안타까운 세상을 향해 알리고 깨우치는 상록수(常綠樹, 늘 푸른 나무)가 필요한 것이다.

정유년 정초, 새해 인사를 대신해 쓰게 된 시론을 통해 본지야말로 펜으로 저항하며 시대를 일깨운 육사의 길을 걸어야 하겠다는 겸손한 다짐을 해 본다. 그 길은 본지의 사시(社是)에서 이미 밝혔듯이 ‘중도(中道)의 길’이다. 중도라 함은 중간지대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진보든 보수든 어느 편에 치우친 것도 아니다. 오직 진실의 편, 정의의 편, 진리의 편에 서는 것이며, 혼탁한 세상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의 역할인 것이다. 그것이 깨달음과 회개를 상징하는 정유년 붉은 닭의 의미며 사명이기도 하다.

금번 국정농단사태를 지켜보면서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다시 한번 깨닫게 됐으니 오늘의 이 수치스런 역사는 분명 우리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됐다. 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의 부패 뒤에는 종교의 부패가 도사리고 있었음을 깨닫게 했고, 결국은 종교가 정의롭고 진실한 세상을 구현하기는커녕 사회와 정치와 하나 돼 자멸의 길을 유도하고 견인하기도 했고, 때론 정치의 시녀가 되기도 했고, 정치의 나팔수가 되기도 함으로써 모두가 추락하는 비극적 현실을 가져온 것이다.

모든 것이 바닥을 쳤고, 우리 자신의 실체를 똑바로 보게 했으니, 정유년 새해 새로운 희망을 품고 모두가 바라고 원하는 홍익의 정신으로 새 출발하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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