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문화가 지난 11월 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로써 제주해녀문화는 우리나라의 19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다. 당시 무형유산위원회 회의에서는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점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점 ▲관련 지식과 기술이 공동체를 통해 전승된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해 공식 등재했다. 이와 관련, 제주해녀문화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깨달아보고자 한다.

 

▲ 물질하는 해녀의 모습(제공: 국립무형유산원) ⓒ천지일보(뉴스천지)

드넓은 바다 무자맥질로 헤엄쳐
단출한 장비, 해녀들의 생명줄

입기 편하고 옆트임 있는 ‘물옷’
임신·몸 변형 때 쉽게 입고 벗어

어려울 땐 ‘밀가루 포대’로 제작,
‘고무 옷’은 1970년대 초 등장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망사리’에 꿈을 담아 올렸다. 숨비소리(잠수를 했다가 물 위로 나와 숨을 고를 때 내는 소리) 한 번에 자식을 키웠고, 숨비소리 두 번에 부모를 모셨다. 생계를 위해 더 깊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해녀의 삶이었다.

한평생을 무자맥질(물속에서 떴다 잠겼다 하는 것)을 해 내려간 바닷속. 그곳에서 해녀들은 해삼․전복․우뭇가사리 등 다양한 해산물을 채취했다. ‘물질’이었다. 해녀들은 육지에서는 농사를 짓고, 바다에서는 물질을 해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갔다.

물질은 비바람이나 한겨울 폭설에 관계없이 사시사철 이뤄졌다. 해녀복과 물안경, 채취도구 등 단출한 장비만 챙겼다. 그리고 드넓은 바다를 무자맥질로 헤엄쳤다. 단출한 장비는 해녀들의 생명줄이었다.

◆‘소중이’ 입고 사시사철 물질

28일 국립무형유산원의 ‘제주해녀문화’자료에 따르면, 해녀는 바다에서 물질할 때 작업하기 편한 ‘물옷’을 입었다. 전통적 해녀 옷인 ‘물소중이’는 ‘소중이’ ‘속곳’으로도 불렸다.

손명희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연구관은 “물옷은 입고 벗기 편하며, 품을 조절할 수 있는 옆트임이 있다. 해녀가 임신하거나 몸이 변형될 때도 쉽게 입고 벗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물옷은 속옷의 기능을 겸했기에 흰색이 많았다. 전통적으로 가정에서 직접 짠 무명을 재단하고 손바느질해 소중이를 만들었다”며 “하지만 물질할 때 쉽게 얼룩져서 나중에는 검정색을 많이 입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던 해녀는 밀가루 포대로 만든 물옷을 입었다. 한때 머리를 정돈하는 ‘물수건’ 대신, 일본이나 육지로 출가 물질을 했던 해녀들에 의해 ‘까부리(머리에서 뒷 목덜미 전체를 넓게 감싼 모자)’가 보급돼 유행하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 소중이 위에 저고리 모양의 ‘물적삼’을 입기도 했다.

▲ 전통 작업복인 ‘소중이’ ⓒ천지일보(뉴스천지)

◆1970년 `고무옷’ 등장

1970년대 초부터는 대다수의 해녀들이 ‘고무옷’을 입었다. 잠수복이다. 일본에서 들어온 고무옷은 처음에는 비싼 가격과 새로운 형태로 반감을 샀다. 하지만 보온성이 뛰어나고, 장시간 작업이 가능했다. 더 깊은 곳으로도 잠수가 가능해 점차 고무옷 착용이 확산됐다. 이를 통해 채취하는 수확량이 크게 증가하는 등 작업환경이 크게 변화됐다.

고무옷은 목까지 내려오는 통으로 된 ‘모자’와 고리가 달린 ‘상의’, 그리고 발목부터 가슴까지 올라오는 바지 형태의 ‘하의’로 구성됐다. 또 ‘오리발’이라고 부르는 물갈퀴를 신고 작업했다. 2012년부터는 바다에서 작업하는 해녀를 쉽게 찾기 위해 주황색 고무옷이 보급됐다.

◆바다 특성 맞게 ‘물질도구’ 제작

해녀는 바다의 특성에 맞게 물질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물질도구는 해녀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물안경인 ‘눈’을 쓰고, ‘테왁·망사리’를 멨다. 테왁은 물 위에서 숨을 쉴 때 의지하는 도구였다. 테왁에 연결된 해산물을 담는 ‘망사리’는 해녀를 상징하는 도구였다. 어린해녀는 ‘애기테왁’을 받고 해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기량이 향상됨에 따라 테왁도 ‘중테왁’ ‘큰테왁’으로 바뀌었다.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테왁은 해녀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해녀의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물질할 때 사용하는 도구는 해산물의 성격에 따라 나뉘었다. 전복을 캐는 ‘빗창’, 미역·감태 등 해조류를 딸 때 쓰는 ‘종게호미’, 바다위에 붙은 해산물을 캐는 ‘까꾸리’ 등은 육지의 밭에서 사용되는 농기구와 비슷해 보이지만, 바다와 해산물에 맞춰 제작된 맞춤 도구였다. 해녀는 바닷속에서 이 도구를 마치 한 몸처럼 사용해 해산물을 채취했다.

▲ 물직작업도구인 ‘테왁망사리’ ⓒ천지일보(뉴스천지)

◆쉼터이자 지식의 전승 공간 ‘불턱’

‘불턱’은 해녀가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었다. 또 물질의 피로를 푸는 휴식 장소였다. 해녀는 바다 위 적당한 곳에 돌담을 쌓고, 물옷을 갈아입거나, 불을 지펴 몸을 덥혔다. 이런 불턱은 단순히 옷을 갈아입는 곳이 아닌, 담소의 공간이었다.

해녀들은 물질 기술과 바다에 대한 정보, 개인과 마을의 일상사를 나눠 정보교류를 했다. 어린 아이가 있는 해녀는 이곳에서 아이를 돌보기도 했다.

제주도 해안에는 마을마다 3~4개의 불턱이 있었으며 현재도 70여개의 불턱이 남아있다. 1985년을 전후해 해녀보호 차원에서 마을마다 현대식 탈의장을 설치했으며, 과거 불턱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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