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서울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인간’ 프레스콜에서 배우 박광현과 김나미가 열연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어느 날 눈 뜨니 유리 상자 속|
지구는 핵전쟁으로 멸망 당해

최후의 한 쌍, 인류 보존 고민
두 사람의 대화 속 교훈 전달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 던져
구어체로 소설보다 이해 쉽게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프랑스 천재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유일한 희곡인 ‘인간(Nos Amis les Humains)’이 연극으로 한국에서 공연 중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2001)’ ‘나무(2003)’ ‘신(2008)’ ‘제3인류(2016)’ 등 최근 10년간 가장 많은 작품이 한국에서 판매된 소설가다.

연극 ‘인간’은 인류 마지막 생존자인 화장품 연구원 ‘라울’과 호랑이 조련사 ‘사만타’가 ‘인류는 이 우주에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재판을 여는 2인극이다. ‘인간’은 두 남녀 주인공이 영문도 모른 채 유리 감옥에 갇혔다는 독특한 설정에서 시작된다.

◆유리 상자에 갇힌 두 남녀

암전된 무대에서 굉음이 세 번 울린다. 밝아진 무대에 흰 가운을 입은 한 남자가 쓰러져 있다. 남자는 화장품 제작을 위해 동물실험을 해온 남자 과학자 ‘라울’이다. 투명한 유리 상자에 갇힌 그는 혼란에 빠진다. 다시 어두워진 무대 암전이 끝나니 웬 여자가 ‘라울’처럼 쓰러져 있다. 여자는 호랑이를 제 마음대로 하는 조련사 ‘사만타’다.

▲ 22일 서울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인간’ 프레스콜에서 배우 오용과 김나미가 열연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저기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이봐요! 여기 사람 있어요!”

처음 만난 둘은 자신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왜 왔는지 추측해보지만 알 턱이 없다. ‘라울’과 ‘사만타’는 자신들이 유리 상자에 갇힌 이유는 무엇인지, 왜 하필 둘인지 등 논의하기 시작한다. 논의는 다툼이 됐고 점점 목소리가 커지다가 ‘라울’이 ‘사만타’의 양 손목을 잡기까지 이른다.

‘딩동’하는 소리와 함께 상자에서 빛이 난다. 상자를 열어보니 작은 봉지가 나왔다. 생명연장을 위한 식량이다. 사이좋게 나눠먹은 둘은 또 싸우게 되고 이번엔 포옹을 하자 물이 나왔다. 식량을 주는 누군가가 있음을 감지하고 말을 걸어 보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외부의 누군가로부터 핵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했음을 알게 된 둘은 인류의 보존을 위해 종족 번식을 하는 것이 옳은가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인류의 보존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만타’와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인류는 없어져야 한다’는 ‘라울’은 판사와 검사, 변호사, 증인이 돼 인류를 대변하며 모의재판을 벌인다. ‘사만타’의 주장처럼 인류는 보존돼야 할까.

▲ 22일 서울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인간’ 프레스콜에서 배우 김나미가 열연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인간의 근원적 문제 다뤄

오는 2017년 3월 5일까지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연극 ‘인간’은 2003년 10월 프랑스에서 발간돼 25만부 이상 판매됐으며, 연극으로 각색돼 2004년 9월 프랑스 파리 ‘코메디 바스티유’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스위스, 체코, 러시아 등 유럽 전역에서 공연됐다.

국내에서는 2004년 국내 출간 당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10년 충무아트홀 블루소극장에서 아시아 초연을 펼쳤다. 이후 6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연극 ‘인간’은 문삼화 연출이 각색 및 연출을 맡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인간’이 어렵다고 느껴졌다면 연극 ‘인간’은 조금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소설과 희곡의 경계가 모호했던 원작과는 다르게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가 구어체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작품은 인간이라면 생각해야 할 근원적인 문제를 다룬다. 동물 학대와 독재자, 전쟁 등을 통해 인간의 잔인한 내면을 지적하는 한편 정직하고, 선한 모습을 가진 인간도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서로를 위해 사랑하고, 배려하고, 애썼던 인간을 칭찬한다.

‘의심을 의심하면 믿음이 생길 거예요’ ‘인간은 고문했고, 환경을 오염시켰고, 자살행위도 했습니다. 우리에겐 미친 독재자도 있었고, 전쟁도 있었습니다’ 등 배우들의 대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다.

▲ 22일 서울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인간’ 프레스콜에서 배우 스테파니와 전병욱이 열연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인극 인만큼 두 배우의 호흡이 중요하다. ‘라울’ 역에는 고명환, 오용, 박광현, 전병욱, ‘사만타’ 역에는 안유진, 김나미, 스테파니가 캐스팅돼 설전을 벌인다. 베테랑 배우들의 출연으로 연기력은 입증됐으나 경험이 부족한 탓일까. 스테파니의 부족한 호흡으로 ‘사만타’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 귀를 기울여야 했다.

무대 양측으로 배치된 객석도 인상적이다. 유리 상자에 갇힌 연극 설정처럼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둘러싸여 연기한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두 배우의 움직임과 표정을 더욱 현장감 있게 관찰할 수 있다. 유리 상자를 바라보는 외부의 존재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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