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갓 부화한 물오리 떼나 병아리 떼의 봄나들이 같았다. 최근에 있은 중국의 첫 번째 항모 랴오닝(遼寧)이 이끄는 항모 전단의 서태평양 첫 나들이가 영락없이 그러해 보였다. 랴오닝은 지난 2012년에 취역했으나 그동안 먼 바다를 휘젓고 다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줄곧 연안에만 머물거나 그곳에서만 떠돌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대망의 항모 보유국 진입을 위해 힘들게 항모 운용과 운항을 훈련하고 준비해왔다. 항모는 바다에 떠다니는 거대한 군사기지이며 그것으로 항모전단을 꾸렸을 때는 원양(遠洋)에서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항모 전단을 완벽하게 꾸려 매끄럽게 운용하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절대로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래서 이렇게 항모가 취역한 지 4년여 만에 멀쩡한 항모전단의 모습을 갖추어 먼 바다로의 항해를 감행한 중국의 눈부신 군사적 굴기를 바라보는 주변국과 세계의 시선은 결코 평범하지가 않다. 저들은 서두른다. 랴오닝은 옛 소련의 중고 항공모함을 사들여 성공적인 리모델링(remodeling)을 거침으로써 중국의 첫 항모가 될 수 있었다. 한창 건조중인 제2, 제3의 순수 중국산 항모가 속속 그 뒤를 이을 예정이다. 이런 과정이 완결되면 중국은 핵 항모 10척의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항모 대국이 된다. 중국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급속한 경제적 굴기를 이룬 나라다. 이에 의해 그 같이 발 빠른 군사적 굴기가 효과적으로 뒷받침되고 있으며 국가 역량을 기울이는 군비 확충에 본격 나설 수 있게 됐다는 것은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했듯이, 호주머니 속의 송곳은 겉으로 불거져 보이기 마련이다. 경제적으로 미국을 뒤쫓는 부자가 되고 그 힘으로 방대하게 군사력을 키운 지금의 중국에게서 개혁개방 초기의 ‘빛을 감추고 조용히 힘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겸손함과 주변 국가에 대해 가졌던 조심스런 경계심은 찾아볼 수가 없다. 더구나 저들에게는 항공모함 전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텔스기, 스텔스 함정, 첨단 미사일과 대륙간탄도탄, 우주무기와 우주 요격무기 등 미국과 러시아가 선도하는 최신 트렌드(trend)의 거의 모든 무기를 어느새 개발해 빠짐없이 보유하고 있다. 이런 성과와 배경들은 저들의 낙관론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낙관’과 ‘현재의 힘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따라서 엉거주춤하고 쭈뼛거리던 랴오닝 항모 전단이 급기야 내해(內海)인 발해만을 떠나 한반도의 서해에서 한바탕 화약 냄새 진하게 풍기는 실탄사격을 벌인 후 동중국해와 미국 일본의 봉쇄선을 거침없이 통과해 서태평양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저들의 ‘힘에 대한 자신감’이 송곳처럼 불거져 가능한 일이었다 할 수 있다. 

저들의 저 같은 움직임은 한편으론 마침 미국 대통령 취임을 앞둔 트럼프가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과 의미심장한 소통을 나누어 중국의 신경이 몹시 날카로워지고, 통상 및 무역, 금융, 환율 등을 둘러싸고도 가차 없는 중국 때리기가 진행되는 때여서 그것을 바라보는 세계의 예민한 시선에 예민함을 더해주었다. 사실 이 같이 트럼프가 제기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 흔들기와 중국 때리기 말고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얽히고설킨 난해(難解)한 묵은 숙제들이 많다. 북핵 문제와 한국의 사드(THAAD) 배치, 중일 사이의 센카쿠 갈등, 남중국해 문제 등이 그것들이다. 이런 마당에 트럼프가 ‘돌출’해 중국에 공을 들이고 협력할 생각을 하는 대신 도리어 자극하고 골을 지름으로써 중국이 더욱 발끈해 랴오닝 항모를 동원한 무력시위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할 수 있다. 중국을 이해하려 든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랴오닝 항모 전단은 남중국해를 살짝 비켜 하이난도(海南島)의 해군기지로 돌아옴으로써 긴 원정모험의 첫 나들이를 마쳤다. 기실 그것은 중국 역사에서 먼 바다를 누비며 해상권을 확보할 수 있었던 명나라 정화(鄭和) 제독 시대 이후 중국 함대에 의한 가장 장거리 원정이었다. 랴오닝 항모 전단의 그 같은 원정 경로는 모두 미·중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의 현장을 지나는 것이었다. 그것이 시사(示唆)하는 바는 미국에 대한 경고다. 

하지만 미국이 겁을 집어먹은 것 같지는 않다. 미국과 군사 일체화를 이룬 일본도 그러하다. 누가 뭐라 해도 당장은 미국이 태평양을 충분한 군사력으로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런 미국이 볼 때 랴오닝 항모 전단의 원정 출격은 뻔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으로 비쳤을 수 있다. 아니면 갓 부화한 물오리 떼나 병아리 떼의 봄 소풍이나 봄나들이쯤으로 보아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은 짐짓 예민한 척 하지 않았지만 랴오닝 항모가 미국 군사력에 가하는 부담에 대한 견적(assessment)을 이참에 확실하게 뽑아 버릴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수중에서 공중과 우주에서 해상에서 랴오닝 함대의 일거일동과 통신을 샅샅이 지켜보고 엿들었을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랴오닝 함대의 서태평양 나들이가 있은 후 미국은 곧바로 대대적인 태평양 군사력 증강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중국이 랴오닝호의 운용으로 얻은 것은 되로 얻은 것에 불과하지만 잃은 것은 말로 잃은 것이 될 만큼 크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은 마치 중국의 도전에 대비라도 하듯이 11번 째 슈퍼 항모인 제럴드 포드함의 취역을 서두르는 등 10척인 핵 항모 수를 12척으로 늘리고 준함모급인 대형강습상륙함도 4척을 추가해 항모와 준항모를 합쳐 19척으로 운용하며 전체 해군 함정 수를 현재의 282척에서 355척으로 대폭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렇다고 중국의 기가 꺾일까. 군비가 궁극적인 평화를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군비 없이 평화를 말할 수 없는 것 역시 준엄한 현실이다. 더구나 패권 경쟁이 붙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때문에 태평양 지역의 앞날에 불확실성이 가득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두려운가. 두려움으로는 길가의 돌멩이 하나도 옮길 수 없다고 했다. 쫄지 말고 물러나지 말고 똘똘 뭉쳐서 당차게 사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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