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군사쿠데타가 난 지 한 달 뒤인 1961년 6월 박정희와 이병철이 만난다. 이병철이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된 기업인 11인의 석방’을 요청하자 박정희는 ‘정부정책에 대한 기업들의 협력’을 요구한다. 전경련의 전신인 ‘경제재건촉진회’ 탄생 비화다. 탄생 과정부터 ‘정경유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기업들이 스스로 참여한 형태를 취했지만 박정희 정권의 강권에 의해 창립했고 이후 정경유착의 고리 역할을 수행하면서 힘을 키워왔다. 

전경련이 지난 55년간 무엇을 했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전경련이 그동안 ‘저지른 죄’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기억 속에서 몇 가지만 끄집어내 보자.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에게 차떼기로 대선자금을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했다. 박근혜 정권 들어와서는 친정부 데모를 일삼는 어버이연합의 차명계좌에 5억이 넘은 돈을 송금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핵심 문제가 되고 있는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700억이 넘은 돈을 몰아주었다. 

전경련은 반값등록금과 감세 철회, 경제민주화에 반대하고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집단 소송제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제조 및 판매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회피하고 소비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다. 박근혜 정부와 짬짜미 속에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개악을 목적으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1000만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악성 여론몰이를 했다. 지난 1월 박근혜 대통령이 이들이 준비한 서명대 앞에서 서명하는 모습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아마 세계에 유례가 없을 것이다. 

전경련은 정권의 요구에 호응하는 대신 반대급부로 재벌대기업의 이익을 챙기는 정경유착의 산실이었다. 국민의 지탄을 받는 이유다. 이름은 전체 경제인의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인 것처럼 보이지만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입법을 좌절시키고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시키는 법률을 만드는 데 모든 힘을 쏟는 재벌들의 이익집단에 불과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부패의 수렁에 빠트려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기관’이 됐다. 적폐 중의 적폐다.  

LG는 최근 전경련에 탈퇴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대기업이 공식적으로 탈퇴 의사를 밝힌 건 처음이어서 여기 저기 보도가 됐다. 일부 언론에선 전경련과 LG의 오랜 악연이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보도 태도에는 LG의 전경련 탈퇴의 의미를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LG의 구본무 회장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전경련을 탈퇴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이번 결정은 국민들 앞에서 한 약속을 지키는 차원으로 봐야 한다. 뒤늦게나마 LG가 국민의 뜻에 호응한 것을 적극 평가하고 싶다. 국회 청문회에서 탈퇴 의사를 밝힌 삼성과 SK의 ‘총수’는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국민 앞에선 약속하고 뒤돌아서선 딴 맘먹으면 국민이 이해하겠는가?

29일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국민께 사랑 받는 단체로 거듭나겠다”고 하면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해체론을 일축한 것이다.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우리 사회와 국가에 그만큼 해악을 끼쳤으면 이제라도 국민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해체하는 게 도리다. 아직도 국민의 준엄한 뜻을 모르는가. 그동안 쌓은 업이 얼만데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되겠는가?

‘싱크탱크 전환론’은 옳지 않다. LG 구본무 회장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전경련을 미국의 ‘해리티지 재단처럼 운영하고 회원사 간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썩어도 너무 썩어 다른 무엇으로 전환돼도 부정비리, 부패의 온상으로 계속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깔끔하게 해체하는 게 옳다고 본다. 썩은 고목에 꽃이 필 리 없지 않은가.   

전경련은 무려 반세기 동안 국가기관을 끼고 한국경제를 주물렀다. 박정희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게 순리였다. 아무리 늦더라도 전두환 정권 퇴진 때는 역사에서 퇴장했어야 했다. 정치와 국민은 바뀌어 가는데 재벌과 전경련은 그대로다. 박근혜-최순실 사태가 터진 이 시점에 50년 적폐의 전경련을 해산시키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경련처럼 정경유착 하는 조직이 만들어질 수 없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절실하다. 앞으로 정경유착을 하는 조직은 발본색원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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