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곱과 라반과 레아, 테르부룩 헨작, 1627년, 캔버스 유채.

 

 

임준택 관광영어통역안내사/목사 

야곱은 에서를 피해 이제 하란으로 무사히 도착했다. 거리로 하면 약 600㎞ 정도 떨어진 그곳을 단지 이름 하나 듣고 내비게이션도 없이 찾아간다. 부산보다도 먼 지역을 어떻게 찾아갔을까? 그때는 비옥한 초승달지역을 중심으로 주거지가 형성됐기 때문에 유프라테스·티그리스 강 상류지역에 위치해 있던 하란이라는 지역도 찾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그의 아내 될 사람인 라헬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수고는 이 여인을 보면서 다 얼음 녹듯이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른다. 한 달간의 탐색기를 거쳐 드디어 외삼촌이 제안한다. 무보수로 일할 수 없으니 무엇으로 보수를 정하겠느냐는 물음에 야곱은 지체 없이 라헬을 위해 7년간 봉사하겠다고 답한다. 라헬을 연애하므로 7년이 하루 같았으리라. 창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기나긴 7년이 지나고 혼인잔치가 열렸다. 꿀맛 같은 뜨거운 첫날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럴수가~. 상대방은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이 아니라 그의 언니 레아였다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저녁에 하는 혼인잔치라 하지만 그런 것도 구분 못할 정도로 된 것은 술을 진탕 마시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작품의 테이블위에는 빨간색 포도주가 증거물처럼 놓여있고, 그 옆에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처럼 과일과 소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날도 새고 술도 깨고 여자는 확 깨는 여자가 있는데 ①야곱은 신랑의 차림을 하고 있고 레아는 가슴을 훤히 드러내 놓고 있지만 목도 짧고 살도 쪄 보여서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또한 안력이 안 좋아서인지 그 상황이 면목 없어서인지 눈을 감고 있고 있다. 야곱은 레아를 가리키면서 장인인 라반에게 따지고 있다. ②라반은 긴 장대를 갖고 머리도 벗겨진 구두쇠 혹은 노련한 협상가처럼 비스듬히 앉아서 사위에게 그 지역의 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창 29:26 ‘라반이 가로되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법을 이용하는 갑의 입장인 협상가 라반과 법을 몰라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을의 입장 야곱이 그들의 표정에서 잘 읽혀진다. 갑질은 4000년 전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③서양화에서 개는 충성을 상징하는데 여기에서 작가는 개처럼 7년을 열심히 일했는데 남는 건 개뼈다귀처럼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악덕업주 라반은 10번이나 삯을 변경하는 갑질을 하게 되고 나중에 야곱은 네 부인들과 식솔들을 데리고 야반도주하면서 탈출에 성공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에서를 속였던 야곱이 이번에는 된통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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