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 봄

박세현(1953~  )

 

살아보려고 지방대학에 이력서 제출
갓 마흔에 원주에 와 국어를 가르쳤다
논문도 쓰고 시도 막 가르치고 겁이 없었어
이젠 약아졌고 힘 빠져서 시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나도 살아야지
치악산 구룡사 계곡에 가 놀다가
처용처럼 돌아온 외로움의 총계가 마흔
나의 봄이었지
나의 많은 봄날이었다구
그 시절 눈트고 지낸 산벚나무와는
지금도 덤덤하게 연락하고 산다
딴 건 몰라도 나의 마흔은 아까워서
다 살지 않고 남겨놓은 장소 거기다
가끔 가보고 싶다.

 

[시평]

나이 마흔을 공자께서는 불혹(不惑)이라고 했던가. 젊은 시절의 열정도, 또 호기도 이제는 다소 사그라진, 그래서 삶을 어느 정도 감정을 누르고 바라볼 수 있을 정도가 된 나이. 그래서 이 나이쯤 되면, 이제 세상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알았노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젊었던 시절의 풋기 같은 헛 용기도 많이 잦아지고, 그래서 조금은 세상에의 눈치도 생겨나는 그런 나이. 이런 나이에, 대학과 대학원이라는 곳에서 살둥 죽을둥 공부도 해보고, 대학의 보따리 장사도 여러 해 해보고, 살기 위해서 이력서를 제출하고 고향도 아닌, 낯이 선 타지 어느 지방대학의 교수가 된다. 

이름이 좋아 대학교수이지, 역신(疫神)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면구스럽게 돌아서는 처용 마냥 낯선 도시에서의 봄은 어쩜 외로움의 총계, 그 실체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마흔에 만나는 씁쓸함이란! 그래서 틈틈이 시간이 나면 가까운 지역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마음 둘 곳을 찾기도 했지만, 그래서 외로이 홀로 꽃이나 피우는 산벚나무와 눈맞춤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제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시절이 덧없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연 일인가. 불혹의 나이, 아직은 삶이라는 희망이 더 많이 남아 있을 듯한 그 나이. 그래서 다 살지 않고 남겨놓았던 그 자리, 가끔은 가보고 싶은 것, 어쩌면 지난날 그리워하는 우리들 마음인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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