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촌’서 새로운 길을 묻다
[쉼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촌’서 새로운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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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언저리 높은 곳에서 위치한 윤동주문학관은 버려진 청운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들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색 먹거리 가득 ‘통인시장’
‘한글창제’ 세종대왕 나신 곳
카페로 변신한 이상의 집
인왕산 자락길 윤동주문학관

[천지일보=이지수, 이민환 기자]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되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년 5월 꿈 많던 22살의 윤동주(1917~1945)는 연희전문학교에 입학 후 ‘새로운 길’이라는 시를 쓴다. 즐거움과 기대, 앞으로의 희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길 떠나기 전, 이번 탐방은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중 얼마 전 인상 깊게 본 영화 ‘동주’가 떠올랐다. 정했다. 서촌이다. 그리고 발길은 주저 없이 한 곳을 향했다. 서울 종로구 서촌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으로.

◆ 성군이 태어나시다… ‘엽전’으로 通

겨울 햇볕치곤 제법 따뜻했던 지난 13일 오전 9시. 일찌감치 서둘러 서울역버스환승센터에서 7016번 버스에 몸을 실은 일행은 통인시장 보건소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이참에 서촌 곳곳에 있는 명소들을 둘러볼 작정이었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을 말한다. 청계천 물줄기가 흘러내려 오는 곳으로 상촌 또는 웃대라고 불렀다.

경복궁 동쪽인 북촌이 역사적으로 왕족과 사대부의 거주 공간이었다면 서촌은 의관과 역관 등 중인의 생활공간이었다. 세종대왕이 나고 자란 곳이 있어 ‘세종마을’이라고도 부른다. 버스에서 내리면 넓은 대로가 나오는데 자하문로다. 이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통인시장 못미처 도로변에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서울 북부 준수방에서 겨레의 성군이신 세종대왕이 태조 6년(1397) 태종의 셋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셨다”는 글과 함께.

특이한 점은 인근 상점과 건물 간판이 대부분 한글이다. 서울시의회와 종로구에서 세종대왕 탄생지 주변 서촌 일대의 상가와 건물을 한글 간판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지역민과 상인들도 한글 창제의 주인공인 세종대왕 탄생지가 있는 지역에서 한글 간판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적극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 통인시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세종대왕 나신 곳 표지석. ⓒ천지일보(뉴스천지)

일행의 첫 방문지는 ‘통인시장’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듯 통인시장에 들러 엽전 도시락으로 배를 두둑이 채우고 갈 생각으로 ‘도시락카페 통(通)’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1인당 5000원을 내면 엽전 10냥을 준다. 엽전으로 음식을 구매한 뒤 다시 카페로 들어와 먹으면 된다. 엽전도시락은 말 그대로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엽전으로 사 먹는 도시락이다. 통인시장 명물인 기름 떡볶이를 비롯해 마약 김밥, 감자전, 떡갈비 등 다양한 메뉴들을 즐길 수 있다.

점심시간이 되자 시장 안은 금세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 학교에서 단체로 온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경복중학교 학생들이 시험을 마치고 현장체험학습으로 시장을 찾았다. “사장님, 저희가 제일 처음 왔어요” “기름 떡볶이 얼마에요?” 줄 서 기다리던 학생들은 음식점 사장님의 손길을 더욱 재촉했다.

◆ 일제강점기 짧은 생을 산 소설가

통인시장을 나와 골목길 사이를 걷다 보면 고층 건물 사이로 고즈넉한 한옥들이 자리 잡고 있다. 서촌에는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독립운동가 해공 신익희, 시인 이상과 윤동주, 화가 박노수와 이상범, 이중섭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이들이 살았다. 그 가운데 일부 집터와 옛집이 지금도 남아있다. 이 중 한 곳을 찾았다. 소설가 이상의 집이다.

‘날개’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이상은 1937년 사상혐의로 일제 경찰에 체포돼 수감 중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26년 7개월의 짧은 생애로 요절한 일제강점기 문인이다. 그가 세 살 때부터 20여년간 살았던 집터 일부를 문화공간으로 꾸몄다. 카페 혹은 쉼터 같은 분위기다.

통유리로 된 외관과 달리 내부로 들어가면 오래된 한옥의 뼈대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독특하다. 이상의 집은 문화유산을 보전·관리하는 문화재청 산하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관리하고 있다.

문승현 문화유산국민신탁 보전관리팀장은 “이상의 집은 모두 이용객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며 “누구든지 1000원 이상 기부하면 따뜻한 캡슐커피를 마시며 카페처럼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22살 청년 앞에 놓인 ‘새로운 길’

일행은 탐방 마지막 코스이자 최종 목적지인 윤동주문학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자하문 터널 방향으로 주택 사이에 좁다란 길을 따라 꾀 한참동안 올라가니 비로소 인왕산 자락길 시작점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이 눈에 들어왔다.

윤동주문학관은 인왕산 언저리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버려진 청운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들었다. 외관은 단아하면서도 차분함마저 감돌았다. 반듯한 건물이 마치 순수 청년의 올곧은 삶을 느끼게 해준다. 입구로 들어가는 벽면에 윤동주의 얼굴과 그의 작품 ‘새로운 길’을 철판에 구멍을 뚫어 실루엣처럼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중국 지린 성 용정시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 그를 기리는 문학관이 왜 서촌에 있을까.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 시절(1941년 5월) 서촌에 있는 소설가 김송(金松, 1909~1988)의 집(종로구 누상동 9번지)에서 5개월의 짧은 시간을 하숙했고 별 헤는 밤, 쉽게 쓰인 시 등 주옥같은 작품을 이 시기에 완성했다. 윤동주는 같은 집 하숙생인 후배 정병욱과 아침 식사 전 인왕산 중턱까지 산책 삼아 오르곤 했다. 청년 윤동주는 인왕산 자락을 거닐며 매일같이 시상을 가다듬었으리라.

▲ 인왕산 자락길 시작점에 있는 윤동주문학관. (제공: 윤동주문학관) ⓒ천지일보(뉴스천지)

내부에 들어서니 시인 정지용의 표현을 빌려 ‘추운 동 섣달 눈 속에 핀 꽃’과 같았던 윤동주의 삶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윤동주문학관은 총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됐다. 제1전시실 ‘시인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열된 사진과 친필원고 등이 짧지만 고귀한 그의 일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대의 아픔 속에 괴로워하고 자아 성찰하는 시인의 자세를 느껴져 절로 숙연해졌다.

전시실 중앙엔 시인의 고향이자 무덤이 있는 용정에서 가져온 나무 우물이 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라는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외딴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조성했다.

‘열린 우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제2전시실의 묵직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물처럼 천장엔 하늘이 보이고 물탱크에 담겨있던 오래된 물때 흔적이 벽면 곳곳에 지층처럼 남아있다. ‘열린 우물’을 지나 또 하나의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반대의 공간이 나온다.

제3전시실 ‘닫힌 우물’이다. 거친 벽면과 서늘한 내부, 천장에서 흘러내려오는 한 줄기 빛만 존재하는 공간이 윤동주가 생을 마감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를 떠올리게 만든다. 철문이 닫히자 투박한 벽면은 그의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 화면으로 바뀌었다.

10분짜리 영상이었다. 캄캄하고 서늘한 그곳에서 영상을 보고 있자니 암흑의 시대 속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던 청년 윤동주를 만나는 듯했다.

여운을 가득 안은 채 밖으로 나오니 서울 도심 풍경이 한눈에 보였다. 경복궁과 청와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시인 윤동주는 매일 인왕산에 올라 조선총독부가 들어선 경복궁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결국 물음표만 남긴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이 바뀌고 건물의 형태가 달라졌어도 과거는 변함이 없다. 서촌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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