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23일 평양에서는 노동당 초급당 위원장대회가 소집됐다. 이는 이전의 당세포비서 대회보다 한 단계 높이 격상된 행사로 지난 5월 노동당 제7차 대회 이후 직제가 비서에서 위원장으로 당 책임자들이 바뀐 후 처음 열린 대회이다. 초급당(당원 31명 이상의 단위에 설치하는 당 위원회)은 리 단위와 공장 기업소, 그리고 군대의 대대급 당 책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보고 내용이 주목을 끈다. 즉 그는 전례를 깨고 노동당 간부들의 부정부패를 비교적 강하게 질타했다. 이날 김정은 위원장은 제1차 전국 노동당(전당) 초급당위원장 대회에서 부정부패가 하부 당조직까지 만연한 것을 질타하고 이를 시정할 것을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번 당 제7차 대회가 열렸던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대회 개회사를 통해 “일부 당 일군(꾼)들 속에서 나타나는 부족점들이 우리의 당사업 발전을 저애(해)하며 대중 속에서 우리 당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있는 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그는 “이번 대회의 기본 목적은 모든 참가자들이 당적 량(양)심을 가지고 자신들을 돌이켜보며 결함을 대담하게 시정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초급당 사업에서 일대 혁명을 일으키는 대전환의 계기가 되도록 하자는 데 있다고 강조하시였다”고 통신은 전했다.

통신은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초급당 조직에 내재한 결함, 초급당위원장들의 역할과 사업방식에 관한 문제를 비판적으로 분석 결산하고, 초급당 조직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자로 나선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도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 행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초급당 사업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심각한 결함들”이라며 이번 대회를 통해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남 부위원장은 “당과 수령의 권위를 훼손시키거나 그에 감히 도전하려는 자그마한 요소도 가차 없이 짓뭉개버려야 한다”면서 “조선노동당 위원장 김정은 동지의 말씀과 지시를 즉시 접수, 즉시 대책, 즉시 집행, 즉시 보고하는 강철같은 규률(규율)과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김정은의 통치권에 도전하거나 권위를 훼손하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강력히 응징할 것을 주문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김정은 위원장은 또 개회사에서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비상이 높아지는 데 겁을 먹은 제국주의 반동세력들이 유엔 ‘제재결의’를 조작해내고 (국가별) ‘단독제재’까지 떠벌이며 발악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승리에 대한 가장 명백한 증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의 국제정세 상황은 조선노동당이 택한 병진 사상과 로선(노선)이 얼마나 정당하고 정확하였는가를 더욱 뚜렷이 실증해주고 있다”면서 동북아시아를 비롯한 국제정치·남한 정세에 대해 설명했다고 중앙통신은 덧붙였다.

한편 이날 개막식에는 노동당 상무위원 가운데 김영남·박봉주 등 2명이, 정치국 정치위원 가운데 양형섭·로두철·박영식·리명수·김원홍·최부일 등 6명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노동당 당수인 김정은이 참가하는 노동당 행사에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원 절반이 참가하지 않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는 그만큼 북한 당국이 김정은의 ‘참수작전’과 ‘정밀타격의 공포’에 질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당 지배력의 보존을 위해 당 엘리트 절반을 불참시킨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 노동당 안에 얼마나 유휴 인력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명약관화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번 초급당위원장 대회 주석단의 배경도 예외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즉 노동당의 기발이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를 압도하는 배경 그림을 연출해 뭔가 개인숭배보다 집단지도체제로 가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 공산당 행사의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중국식 개혁·개방 노선 선포에 임박한 듯한 인상을 피력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속단하기는 어렵다. 김정은 스스로 개혁 개방론자로 둔갑할 수는 있어도 오랜 관료주의에 젖어온 기득권층을 설득하는 일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 최고위 간부 몇십명은 더 쏴 죽여야 북한이 변화의 열차를 출발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초급당위원장 대회가 변화의 분수령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노동당이여 환골탈태하시라.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