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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동아시아 관광] ③한국 화교의 시초는?… 임오군란 때 온 40여명의 상인
장수경 기자  |  jsk21@newscj.com
2016.12.25 0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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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부터 등장한 근대적 형태의 관광여행. 동아시아의 3국, 즉 한중, 한일, 중일 간에는 고대로부터 끊임없이 역사적 접촉과 상호 간의 이동이 있었지만,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이 시작된 건 근대 이후의 현상이다. 3국간의 근대적 관광여행이 시작된 후 지난 120~130여 년간 여행 형태, 여행 목적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와 관련, 한국 사회를 중심으로 한 근대적 관광 여행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1992년 첫 중국 고향방문 관광에 나선 한국 화교, 촬영지는 베이징의 만리장성임(왼쪽 위), 한 부부의 패키지 관광 중의 기념촬영 모습(오른쪽 위), 길거리 음식 맛보는 한국 화교(왼쪽 아래), A씨의 족보, A씨가 직접 중국의고향에 가서 적어 온 족보를 액자에 넣어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 벽면에 걸어 놓음(오른쪽 아래) ⓒ천지일보(뉴스천지)

1889년, 인천 화교 수 1천명
한중 수교 후 고향 방문 시작

中, 1949년 이주억제책 실시
한국 화교 고향 방문 끊어져

한중수교 후 귀환 이주 시작
여행사 패키지 관광도 등장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중국에서 온 한국 화교(華橋)의 수가 상당하다. 이들은 서울·인천 등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안고 살아가는 한국 화교는 언제 한국에 왔을까. 또 어떤 노정으로 고향방문 관광을 하게 됐을까.

◆한국 화교, 언제 국내 들어왔나

21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동아시아 관광의 상호시선’에 실린 ‘한국 화교의 고향방문 관광과 시선의 변화’ 자료에 따르면, 근대 이후 국제 이주의 증가와 더불어 변화해 온 관광의 현상을 한국 사회 내에서 가장 잘 파악해 볼 수 있는 대상이 ‘화교(華橋)’다. 한국과 중국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조공을 통한 관(官) 무역과 사(私) 무역으로 서로 왕래했다.

하지만 중국인이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에 머물며 살게 된 것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다.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 구식군대가 일으킨 병란) 때 한국에 파견된 광둥성 수사제독(水師提督) 우창칭(吳長慶) 휘하 군대를 따라 40여명의 상인이 입국했는데, 이들이 한국 화교의 시초가 됐다.

당시 청나라는 ‘상민수륙무역장정(商民水陸貿易章程)’, 즉 통상조약을 강요해 화교유입의 길을 터놓았다. 이에 따라 1883년에는 서울·인천·부산 등 주요 도시에 210명의 상인과 111명의 관리가 주재했고, 1884년에는 서울과 인천 등에 화교 수가 급증했다. 1884년 인천, 1887년 부산, 1889년 원산에 화상조계지(華商租界地)가 설치됨에 따라 화교 수는 인천에만 1000명을 넘어섰다.

한국 화교의 특징은 뭘까. 그들의 90% 정도가 산둥성(山東省)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는 1898년 의화단(義和團)의 북청사변(北淸事變)으로 산둥성 일대가 전란에 휘말리자 피난지로서 한국을 택하게 된 것이다.

1948년 수립된 한국 정부가 외국인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화교의 한국 유입은 종식됐다. 또한 1949년 중국 정부가 성립되면서 이주억제책으로 외국 이동이 금지됐고, 일 년에 한 번 있던 한국 화교의 고향 방문도 끊어지게 됐다. 화교무역의 배경이었던 중국과의 교역도 불가능해졌고, 화교들은 한국에 정착하게 됐다.

◆한중수교 후 고향 방문 시작

한국 화교의 중국방문 및 귀환이주는 냉전시대의 막이 내리고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한 1992년 한중수교 전후부터 시작됐다.

한국 화교들은 중국 산둥성의 웨이하이시(威海市)와 옌타이시(烟台市)를 중심으로 고향 방문과 귀환이주를 시작했다.

1세대들은 2000년을 전후로 은퇴 후 생활이나 병 치료, 휴양을 목적으로 산둥성의 고향 주변 도시에 거주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교 2세대는 주로 사업 목적으로 그곳에 살았다. 보따리상으로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소규모 무역에 종사하는 이도 있다. 부모의 중국 내 친족관계를 이용해 고향 마을에서 공장을 운영하거나, 한국식 중화요리나 횟집 등의 음식점을 경영하기도 했다.

◆고향 방문 관광→여행사 패키지 관광

하지만 한중수교 전후로 고향에 다녀온 화교들은 고향에 대한 후진적인 이미지로 이후에 관광으로 중국을 찾지 않기도 했다. 이에 국내여행사의 중국관광 패키지가 다양하게 개발됐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한국 여행사가 내놓은 중국관광 패키지를 이용한 중국 관광이 늘어났다.

가이드는 대부분 중국 조선족이어서 중국어로도 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반면 관광 패키지는 음식의 질이 낮고, 가이드가 과도하게 쇼핑을 강요할 뿐 아니라 여행사에서 계획한 일정대로만 움직여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정작 가보고 싶은 곳을 갈 수 없는 것. 이에 한국 화교들 사이에선 자체적으로 관광을 가자는 의견이 모이기 시작했다.

◆자발적인 고향 방문 시작

그러나 자체적으로 관광을 떠나는 건 쉽지 않았다. ‘안전’ 때문이다. 중국 관광을 다닐 경우 관광 도중에 강도를 만나는 등 뜻밖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것.

그래도 자체적인 관광은 시도됐다. 고향 방문을 하면서 화교들은 패키지 관광으로는 경험할 수 없던 ‘고향의 음식’을 맛보게 됐다. 이는 중국에서 먹어보았던 것이라기보단 어린 시절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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