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 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최순실 게이트’ 이후 ‘창조경제’가 스타트업들에게는 주홍글씨가 되고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박근혜 정부 창업정책인 창조경제의 핵심으로 정부·지방자치단체·대기업이 함께 지역 창업가를 후원하는 공간이었다. 대기업이 혁신센터 한 곳씩 맡아 수십억원씩 출연했다. 현재 전국 17개 지역의 18개 혁신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각 혁신센터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대기업들이 상호 협업하는 지원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지역의 혁신센터는 고용존 설치, 청년 취업 지원과 신규 인력수요 창출, 청년희망재단 등과 협력하여 창조적 일자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확산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의 상징인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혁신센터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미지 하락’ ‘혁신센터 폐쇄에 대한 불안감’ ‘정부 지원감소’ ‘투자유치 차질’ 등 4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창조경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멀쩡한 스타트업들까지 미심쩍게 보는 경우가 많고 투자를 약속했던 벤처캐피털이 결정을 미루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이 전국의 혁신센터 입주 기업 75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은 최순실 사태 후 센터 폐지 등 미래 불안감(36%), 이미지 하락(22.7%), 지원 감소(21.3%), 투자유치 차질(5.3%)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스타트업들은 그러나 최근 사태에도 불구하고 혁신센터를 더 확대(62.7%)하거나 적어도 현 수준을 유지(36%)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절반이 넘는 업체들은 혁신센터가 폐지될 경우 닥칠 가장 큰 어려움으로 ‘사무 공간과 각종 지원’(52%)을 꼽았다. ‘투자 유치 애로’(21.3%), ‘기업 홍보 타격’(14.7%) 등이 뒤를 이었다. 정부 스타트업 활성화 대책 중 업체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은 ‘창업생태계 조성’(32.4%)이었다. ‘정부지원 확대 및 창업 육성기관 설립’(28.3%)과 ‘창조혁신센터 조성’(23%) 등이었다.

다행히 미래창조과학부는 창업생태계 조성이란 큰 방향은 유지하면서 혁신센터에 대한 일부 수술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5일 총리·부총리 협의회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는 “그간 혁신센터가 ‘제2의 벤처 붐’ 조성에 기여해 왔음을 감안해 지속 확산해 나가기로 했다”며 “센터 운영 상황을 전반적으로 점검해 발견된 문제점은 신속히 보완하되, 미래 성장 동력 확충을 위한 창업·벤처 육성 거점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6일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다행히 폐쇄가 우려되던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 관련 국비 예산 436억 5000만원을 확보했다. 스타트업 활성화와 창업지원 등이 지속돼야 한다는 의견이 국회에서 공감대를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매칭펀드 방식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도 되살아날 공산이 커졌다.

매번 정권에 따라서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어떤 사업이라도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입주업체들은 “현 정권에서 추진하던 게 다음 정권에서 엎어지면 창업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혁신센터를 정치적으로 매도하지 말고 그간 쌓은 노하우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창조경제가 잘못됐다고 창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안 된다. 다음 정권에서 창조경제란 이름의 스타트업 활성화 정책이 전면 폐기되면 한국 창업 생태계는 황폐화된다. 다만 창조경제와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입주기업의 희망대로 창조경제와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이름을 떼고 명칭을 바꿔서라도 유지하거나 새 출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혁신센터도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질적 성장을 유도해야 한다. 차제에 지역별로 수요와 성과, 특색 등을 감안해 옥석을 가리고 자생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혁신센터는 사실상 정부 주도로 창업 생태계를 조성한 것이지만 자금과 판로가 부족한 스타트업들에게는 대기업의 초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돌파구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협력하며 혁신을 주도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청년실업 등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스타트업을 육성해서 히든 챔피언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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