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판도라’의 주연배우 정진영이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발전소장 ‘평섭’ 연기… ‘판도라’ 인생영화라 생각해 출연 결정
평소 원전 위험성 인식 “아들 어린 시절 꿈이 원자핵 물리학자”
“겁내라고 만든 영화 아냐, 발생할지 모를 재난 대비하자는 것”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영화 ‘왕의 남자’에서 광기 어린 연산군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놀라움을 자아낸 배우 정진영을 기억하는가. 그는 1989년 영화 ‘약속’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이후 심도 깊은 캐릭터 연기를 선보여 출연만으로도 존재감을 나타내는 배우다. 연극판에서 다진 연기력은 스크린을 장악하기 충분했고 지금은 그의 이름 앞에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정진영이 이번엔 영화 ‘판도라’의 발전소 소장 ‘평섭’으로 분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영화 ‘판도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한반도를 위협하는 원전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국민들의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 7일 개봉한 이 영화는 17일 현재 누적 관객 수 271만 9369명을 기록하며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정진영이 맡은 ‘평섭’은 한별 1호기 노후의 심각성을 알고 원전 실태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내지만 이를 빌미로 좌천되고 만다. 이후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제일 먼저 달려와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정치인과 발전소 본부 사이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 영화 ‘판도라’의 주연배우 정진영이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진영은 웨이브가 들어간 머리에 깔끔하게 자란 수염으로 중후한 멋을 뽐내며 기자를 맞았다. 강렬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의 이미지 탓에 대하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정진영은 부드럽고 유쾌한 말투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2년 전 시나리오를 받고 이 작업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 물론 제가 좋아하는 깊이 있는 감성의 영역은 아니지만 ‘인생의 영화’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죠.”

‘판도라’에서 가장 먼저 캐스팅된 정진영은 평소 원전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당시 원전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가 됐었다”며 “이후 고등학교 졸업반인 아들의 초등학교 때 꿈이 원자핵 물리학자였다. 그때 다시 원전에 대해 알아봤는데 문제점이 있더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테면 원전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에서 방사능이 다 빠지는 기간이 20만년”이라며 “그걸 지구 상에 안전하게 격납할 시설이 안전하지 않고 지금은 임시시설이고 핀란드에 만든다고 하는데 경비가 만만치 않는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꺼낸 게 온갖 불행 나쁜 것들이잖아요. 다행히 희망이 같이 들어 있다고 해요. 어떤 사회든 완벽하고 문제없는 사회는 없겠죠. 다만 불행을 이겨낼 희망이 있는 긍정적인 사회가 돼야겠죠.”

영화 ‘판도라’는 원전 사고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한국을 그린다. 국민들의 목숨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정권을 생각하는 정치권과 이들에게 빌붙을 궁리만 하는 기업체, “안전하다”는 정부의 말만 믿고 가만히 있는 기성세대 등 우리의 현실을 현실적으로 묘사해 씁쓸하다.

정진영은 “사고 후 콘트롤타워 없이 내팽개쳐진 사람들의 절망적인 모습이 있는 반면 다수를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라며 “‘영화 같은 일은 발생하지 말아야 할 텐데’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는데 개봉을 앞두고 현실이 돼버렸다. ‘우리나라도 안전하지 않다’라는 게 현실이 된 것이다. 관객들이 겁을 내라고 만든 영화가 아니라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재난을 대비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영화 ‘판도라’의 주연배우 정진영이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지인이 독일에 있었는데 차를 몰고 무조건 서쪽으로 갔다고 한다. 영화처럼 차도는 꽉 막혀 있고 사람은 많았던 상황이었다. 지금 유럽은 탈핵 사회로 가고 있다”며 “우리 영화를 보고 진지하게 얘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노후 원전의 사고를 점검해봐야 한다. 원전에 대해 국민들이 워낙 모르고 정부도 차단돼 있기 때문에 수면 위에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강조했다.

“한동안 모든 게 혼란스럽겠죠. 영화 볼 정신이 있었겠어요. 촛불도 들고 엄청난 사건이죠.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됐으니까 일단락은 된 것 같은데 앞으로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어요. 계속 진행될 것 같고 그런 상황에서 개봉한 것이니까 우리나라도 이번 기회에 올바른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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