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 10일 청와대 앞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가결을 축하하는 폭죽 수천발이 터졌다. 마치 새해 폭죽놀이를 연상케 할 정도의 장관이었다. 광화문광장에서부터 이어진 수십만 시민들은 그동안 촛불시위 때와는 다르게 보였다. 전날 있었던 국회의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자축하며 평화적 집회를 약속하는 결의를 담았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이날 집회에는 아마도 체육인들도 포함됐을 것이다. 필자는 내심 몸은 촛불집회 시민과 같이 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공유했다. 최순실과 그 일파가 벌인 국정농단에 그 누구 못지않게 좌절과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최순실 사태는 스포츠와 문화에 비리가 집중됐다는 점으로 인해 체육인들은 다름 아닌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 기분이다. 최순실 등은 체육계를 마치 ‘블루오션’이라도 되는 양 마구 유린했다. 최순실 등이 체육계를 타깃으로 삼은 것은 직접 요리하기가 수월하리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최순실 일파 등은 이권 개입, 공금유용, 부정입학, 특혜와 갈취 등 스포츠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도덕한 일면을 보여주었다. 스포츠가 추구하는 공정성과 규칙성을 파괴하고, 개인들이 밀실에서 사익을 챙기기 위해 스포츠의 본질을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렸다.

최순실 사건을 통해 오랫동안 가려졌던 한국스포츠의 구조적 모순이 총체적으로 드러났다. 스포츠가 권력 앞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스포츠는 민족적 자부심을 고양하고 국위선양에 기여한다는 명목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정권을 포함한 대부분의 정권이 정치 도구로 활용했다. 엘리트스포츠를 중심으로 정부주도형의 스포츠정책이 그동안 한국스포츠의 기틀을 확립했다. 

스포츠라고 해서 족벌과 파벌이 성행한 정치, 경제, 사회적인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엘리트스포츠의 폐해는 승부조작, 부정입학, 폭력과 개인의 사유화 등 비리와 부도덕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아마스포츠에서 비뚤어진 승부근성을 배워 성장한 우수선수들이 야구, 축구 등 프로스포츠에서 승부조작과 승부도박에 연루됐고,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에서 드러났듯이 돈을 앞세워 스포츠를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지도자들은 좋은 성적을 올려 개인의 명예와 부를 챙기기 위해 선수들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했으며 경기단체를 사유화하기도 했다.

스포츠 스타들은 성과지상주의에 매몰돼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국가에 기여했으나 이내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몬주익 영웅’ 황영조가 그랬고, ‘신궁’ 김수녕도 마찬가지였다. 쇼트트랙의 안현수는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고도 빙상인간의 파벌싸움에 말려들어 국가대표로 은퇴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로 귀화,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오히려 한국 선수의 등에 칼을 꽂는 ‘저격수’가 되기도 했다. 대중을 배제하고 스포츠를 도구화, 수단화 한 ‘밀실’ 스포츠 행정의 모습이었다.  

한국스포츠가 스포츠 강국으로 올라섰지만 ‘스포츠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밀실 스포츠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순실과 같은 이른바 기득권층이 권력과 돈을 배경으로 밀실에서 스포츠에 대한 농단과 갈취가 계속되는 한 한국스포츠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스포츠는 개인의 운동을 통해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면서 타인과 소통을 이루는 ‘광장’의 열린 공간을 지향해야 한다. 공정하고, 규칙을 준수하고, 예측 가능하고 투명하며 장기적으로 운영되는 게 ‘광장’의 스포츠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소수가 좌지우지 하고 권력층이 스포츠를 호가호위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스포츠가 ‘광장’의 열린 공간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체육인들이 적극적으로 노력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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