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ioachino Assereto, 1640

임준택 관광영어통역안내사/목사 

 

르네상스시대의 그림들은 화려하고 조화롭고 균형미 있는 그림을 추구했다. 약 300년 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이 미술의 사조는 이제 그 균형을 깨뜨리면서 극명한 명암을 대비시키면서 강조할 부분을 강조하고 또한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키는 방법을 쓰는 바로크시대로 넘어간다. 바로크라는 말 자체에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이 있듯이 르네상스의 정형화된 것을 깨트리고 무너뜨리고 싶었던 예술가들에 의해서 미술사는 발전이 되어왔다. 

이 장면은 창세기 27장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야곱은 축복을 받기 위하여 정성껏 준비한 특별한 간식을 준비해서 아비 이삭에게 주었다①. 이 별식은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는 어머니가 직접 준비해 준 것이었는데, 창세기 27장에서 축복받는 장면에는 그 어머니 리브가는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그림에서는 리브가를 등장시켜서 그림의 이야기를 풀어 가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 어머니는 야곱이 축복받기를 원했는데,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예언한 것, 즉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겠다는 말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래서 야곱에게 작전지시를 하고 에서의 옷을 입혔고 팔과 목을 염소의 털을 붙여서 마치 형 에서처럼 변장을 시켰다②. (창 27:15~17) 리브가가 집안 자기 처소에 있는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하여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 그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매….

마침 그때 아버지 이삭은 눈이 멀어서 눈으로 에서인지 야곱인지 구분할 수 없게 눈이 멀게 되었다③. 그런데 이렇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삭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이럴 때 딜레마가 온다. 어떻게 이 위기를 넘길까? 야곱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그런데 또 이렇게 묻는다.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하면서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아~ 귀가 살아있다. 엄청난 긴장감이다. 축복 못 받으면 저주가 임한다는 것을 아는 야곱과 그 어머니 리브가. 사실대로 이야기 해버릴까요, 어머니? 그때 야곱의 등 뒤에는 든든한 후견자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리브가가 버티고 있고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쉿~하고 있다④. 이렇게 축복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 후에도 한 번 더 묻는다.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이때의 긴장감을 이 그림 속에 잘 녹여낸 것인데 이제 여러분은 이 그림속의 엄청난 긴장감을 명암대비와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야곱은 축복을 다 받았고 그 후에 슬픈 표정의 에서가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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