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편집인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자 ‘우주의 기운’을 받은 투표결과라며 각종 패러디가 쏟아져 나왔다. 불참 1, 찬성 234, 반대 56, 무효 7. 이 숫자를 나란히 배열하면 1234567이 되니 흡사 ‘우주의 기운’이라도 담긴 게 아닌가 하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탄핵표결 전 한 여론조사기관은 탄핵 찬성 여론이 78.2%라고 발표한 바 있는데 탄핵 찬성표가 300의 78.2%인 234명으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니 신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헌재 판결이 ‘1234567’의 다음 연결 숫자인 ‘89’일 만에 난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하지만 ‘우주의 기운’이란 말이 단순히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비선실세, 정경유착 등으로 얼룩진 작금의 정치현실은 비단 현 정권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수십년을 곪을 대로 곪아 지금에 와서 터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우주의 기운이 도운 탄핵가결 외에도 지난달 30일 이정현 대표가 “탄핵이 되면 장을 지지겠다”고 표현한 것을 두고 이정현 대표의 손에 장을 지지는 패러디 사진도 방출되고 있다. 심지어 북한 김정은까지 나서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조롱하는 패러디도 등장했다. “누나, 나는 핵 쏜 적 없는데 핵 맞았다며? 뭐 탄핵?” “뭐라고 누나? 남친? 남친 해달라고? 아, 남침…” 등의 조롱 섞인 패러디까지 등장할 정도니 요즘 말로 ‘웃픈’ 패러디다. 

어쩌다가 대한민국의 정치판이 이렇게까지 추락했을까 생각하니, 추락하는 것이 비단 정치뿐만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할 것 없이 다 추락하고 있었음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당장 내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컸고, 내 앞에 놓인 구불구불한 삶의 길이 너무도 버거웠기에 함께 나서서 추락하는 대한민국을 막지 못했던 것뿐이다. 그러던 것이 때가 되어 촛불민심으로 하나 되어 활활 타오르게 되었으니 이제부터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시작이 돼야 하겠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송구영신 호시절’을 위해 국민이 끝까지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할 때다. 촛불이 문화가 되고 민심이 되어 대한민국을 하나로 만들고, 더 좋은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되고, 때로는 버팀목이 되는 것은 분명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촛불민심에 기대어 다른 생각, 다른 목적을 이루려 해서는 안 된다.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촛불을 가장한 흉기를 손에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촛불은 대한민국의 치부를 도려내는 검이 되어야지, 누군가의 이권이나 권력을 위해 절대 다수를 해치는 흉기가 돼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지금의 촛불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그 촛불을 든 한 사람, 한 사람의 바른 판단과 용기 있는 선택이 중요하다. 

무엇을 혹은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때론 희생이 따르기도 한다. 내가 선(善)이라고 믿었던 것이, 내가 의(義)라고 생각했던 것이 거짓이 되기도 하고, 오해와 편견으로 터부시했던 것들이 외려 선(善)의 편일 때도 있다. 내가 지금껏 지켜왔던 신념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나의 신념을 지키려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내 허물을 덮으려다 더 큰 허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내가 먼저 지금의 나를 만든 편견 혹은 관념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처음 그 틀을 깨고 나오는 것이 괴롭고 힘들 수 있다.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고정관념과 사회적 통념에서 오히려 객관적이 될 필요가 있다. 때로는 내 옆 사람이, 때로는 언론이 우리의 눈과 귀를 막고 혼란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옳은 것을 찾아가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끝없이 승리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 내가 손에 든 촛불이 진정 대한민국, 나아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다. 

촛불을 든 손은 편견이 없어야 한다. 촛불을 높이 치켜든 그 마음은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이는 비단 정치에서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반에 걸쳐 함께 호흡하고 있던 모든 분야에 걸쳐 해당되는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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