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태 중국 북경화지아대학교 교수

 

국내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무려 1000만명을 넘어섰다. 이들 중 약 700만명이 감정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고객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응대하며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매일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거나 조절해 가면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을 감정노동자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감정관리가 업무의 40% 이상일 경우를 말한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란 ‘직업상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회사나 단체 등에서 정한 감정만을 고객에게 보여주는 업무’를 의미한다. 그런데 감정노동자가 지녀야 할 기본원칙이자 절대적인 원칙이 있다.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감정노동이 비단 서비스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직장 또는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 속에서 감정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동안 사업주는 고객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 부당한 요구를 해 왔을 때, 감정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해 주는 일에 소홀했다.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가. 고객 만족도를 제고하는 한편, 고객 감동을 실현하여 수익을 극대화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을의 입장인 감정노동자에게는 지나친 친절만을 강요했을 뿐이다. 때문에 고객은 늘 갑질 행태에 익숙해져 있었고 이는 또다른 행태의 갑질 문화를 양산 또는 재생산케 했다.

고객 갑질 행태에 대한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자. 2013년 4월 국내 P기업 임원이 미국행 K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컵라면에 대한 시비가 발단이 돼 행패를 부린 것으로 사회적 공분과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또 2015년 발생한 ‘인천 S백화점 여직원 무릎사과 사건’은 인격적 모독을 당한 사건이었다. 이처럼 부당한 행태를 고스란히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가치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문화, 그리고 사회·국가적 배려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의 부조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감정의 상품화도 좋다, 그러나 감정노동자에게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을 바랄 수는 없지 않은가.

장기간 지속적으로 감정 업무를 할 경우 심리적, 정서적 질환이 발생될 수 있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 또는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의 특징은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보건의료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실태를 살펴보자. ‘2016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의하면, ‘업무상 즐거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응답이 86.2%에 달했다. 자연스러운 감정 해소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그러니 화가 날 때도 실제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간호부의 경우, 입사자 중 한 해 이직률이 30%에 이르고 있다. 금융권의 경우, 50% 이상이 우울증 의심자로 조사됐다고 한다.

사업주는 갑질하는 고객에 대해 감정노동자에게 거부할 권리를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의 갑질 행태가 지속되는 것은 물론,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라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블랙 컨슈머란 ‘악성 민원을 고의적으로 제기하는 소비자’를 말한다. 그들의 문제는 감정노동자를 마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고객을 우선시 하는 문화는 늘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고객의 지나치고 부당한 언행이나 요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친절 문화는 장려하되 무조건 고객의 비위를 맞추는 행위는 금지해야 되지 않겠는가. 소비자 또한 대우 받으려면 감정노동자와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상호 존중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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