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남길. (제공: NEW)

날렵한 외모와 달리 수더분
영화 이야기엔 열정적으로 변신
철없는 둘째 아들 역 위해
살찌워 도시적인 이미지 탈피

방사선 피해 생생하게 연기
“보여준 것은 기초적인 단계
너무 징그러워 수위 낮춘 것”

“연기, 일반인 같은 느낌 중요
대중과 섞이는 경험 밑바탕 돼”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그는 특이하다. 날렵하고 잘생긴 외모와 다르게 말투는 시골청년처럼 수더분했다. 그러다가 영화 이야기만 하면 열정적으로 변했다. 영화 ‘판도라(박정우 감독)’에 대한 열정은 더 그랬다.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무뢰한’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대중적인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배우 김남길이 이번엔 영화 ‘판도라’에서 철없어 보이지만 인간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믿음직스러운 청년 ‘재혁’ 역을 맡았다. 영화 ‘판도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한반도를 위협하는 원전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국민들의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최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남길은 영화 ‘판도라’의 이야기 상자를 열었다. 이날 만난 김남길은 영화에서보다 다소 핼쑥한 모습이었다. 그는 “영화에서는 일부러 찌웠다. 제가 도시적이거나 차갑거나 나쁜 남자 쪽 이미지가 많았다”며 “‘재혁’은 수더분하고 철없는 둘째 아들이어서 마른 모습은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어색하지 않을까 해서 살을 찌웠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재혁’은 방사성 물질에 피폭되면서 좀 더 부어 보인다. 김남길은 “살을 단계적으로 찌웠다. 마지막 장면 찍을 때는 하루 이틀 정도 밥을 안 먹었다. 좀 핼쑥해질 줄 알았는데 뒤쪽으로 갈수록 체력만 딸리고 몸이 붓더라”고 귀띔했다.

▲ 영화 ‘판도라’ 스틸. (제공: NEW)

영화에서 ‘재혁’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고 있지만 아버지와 형의 목숨을 앗아간 원전이 싫어 마을을 떠나고자 한다. 그러던 중 원전 폭발이라는 사상 최악의 재난을 마주하게 되고 가족 같은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재난 현장으로 들어간다.

김남길은 방사성 물질에 고통받는 ‘재혁’의 모습을 생생하게 연기했다. 보는 사람이 다 괴로울 정도였다고 말하자 김남길은 “원래의 고통보다 좀 더 낮춘 거다. 저희가 보여주는 것은 각혈이나 구토, 피부 반점 정도인데 그게 가장 기초적인 단계”라며 “감독님이 보여주신 자료화면을 보니 방사능에 몸이 오염되면 피부가 망가져서 재생이 안 되더라. 심하면 바로 즉사할 수도 있다. 그 피해를 본 사람의 모습이 너무 징그러워서 수위를 낮춘 것”이라고 털어놨다.

제작진과 배우들은 실제화하기 어려운 원전을 현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촬영 전 제작진과 배우들의 회의는 필수였다. 김남길은 “제작진들은 화이트보드에 ‘원자로가 있고, 뭐가 있고’라고 설명하면 배우들은 멍한 표정으로 듣는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감독님과 정진영 선배님은 발전소나 구조적인 공부를 하셨다. 그리곤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냐며 다른 배우들에게 설명하셨다”며 “우리는 하청업체 직원이기 때문에 실제로도 부분만 알고 일을 한다. 연기할 때도 ‘저기 가서 이렇게 해’라고 말하면 배우들이 이해하고 우르르 가서 찍고 그랬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번 영화는 장르가 재난인데 정서적인 연기가 안 되는 거예요. 표현하고 난리를 치고 그래야 하는데 그게 능수능란하게 베테랑 선배님들처럼 못한다고 들었죠. 경상도 사투리를 써야 하니까 이게 더 감성 표현하는 데 걸림돌이 됐어요. 사투리를 하면서 몸을 쓰니까 자꾸 고개를 까닥거리며 대사를 해서 지적을 받았죠(웃음). 진짜로 시간이 좀만 더 있었으면 경상도 사람처럼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텐데… 그저 욕심이라는 것을 알았죠.”

▲ 배우 김남길. (제공: NEW)

지난해 5월 이후 참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대중을 찾은 김남길은 “대중들은 영화 찍는 동안 방송활동을 하거나 해서 공백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땐 안 그랬는데 그렇게 기억 속에 지워지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제가 이렇게 영화를 조용히 찍고 인터뷰하는 것도 행복하다. 많이 내려놓다가 보니까 잊힐 때가 있고, 이후에 좋은 작품으로 만날 때가 있는 것 같다. 대중들에게 꾸준히 기억돼야 한다는 부담감·조바심은 예전보다 없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일반인 같은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배우는 직업이 배우일 뿐이잖아요. 잘된 배우들이 연기력이 안 느는 이유가 대중들 안에 녹아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얼굴이 알려지고 나면서 알아보는 걸 불편하니까 옷을 잘 입고 다녀야 하고 한 장의 사진으로 나를 평가하고 이런 게 부담돼서 지하로 숨고 그랬어요. 지금은 대중목욕탕을 가거든요. 때밀이 아저씨한테 때도 밀고 사람들 안에 섞여 있어요. 이런 경험들이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죠. 이런 얘기도 두렵고 불편해요. 나는 그렇지 않은데 다른 관점으로 평가할까 봐…. 해야 할 연기가 어떤 건지 아직 잘 모르지만 내가 원하는 작품으로 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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