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이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입증한 날이었다. 지난 9일 불참 1명, 기권 2표,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7표 ‘1 234 56 7’이라는 묘한 결과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우주의 기운이 탄핵을 도왔다고들 했다. 10일 다시 촛불을 든 시민들은 촛불의 승리라며 탄핵투표 결과를 자축했다. 아울러 황교안 총리 퇴진, 박근혜·김기춘·우병우 구속 등을 외쳤다. 참여인원은 줄었지만 소리는 더 엄중해졌다. 이날 거문도 내 백도유람선 선착장 앞바다에서는 깃발을 단 어선 10척이 해상 퍼레이드를 벌였다. 깃발에는 ‘박근혜 즉각 구속 수사하라’ ‘용왕님이 노하셨다 당장 퇴진하라’ ‘김기춘을 얼른 구속하라’ 등 대통령 퇴진과 관련된 내용이 담겼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을 당시에는 탄핵을 반대하는 촛불이 광장을 메웠다.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기각 판결이 내려지자 탄핵을 진행한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은 이후 총선에서 121석과 9석을 얻으며 쓰라린 패배를 맛봤고 열린우리당은 과반수가 넘는 거대 여당으로 거듭났다. 그때도 역시 권력은 민심을 이기지 못했다.

탄핵소추안 가결은 새로운 싸움의 시작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남아있고,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마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여론은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상 헌재의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대통령의 하야도 불가능하다. 당장 퇴진하라는 촛불민심과 헌법이 충돌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은 헌법수호 과정이었다. 퇴진도 헌법 질서 아래 이뤄져야 한다. 현재로선 헌재가 판결에 속도를 내 국민이 원하는 결론을 내는 것만이 이 혼란을 줄일 유일한 방법이다. 대통령 탄핵의 시발점이 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대통령과 권력자들이 법을 무시해 빚어진 전대미문의 사태였다. 그렇기에 촛불로 시작된 대통령 퇴진은 더더욱 헌법질서를 지키며 마무리 돼야 한다. 일련의 탄핵 정국에 대해 외신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은 발전하는데 정치는 퇴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로 드러난 낡고 부패한 정치를 어찌 해결해야 할지도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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