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김영한 전(前)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2014년 11월 22일자로 ‘황선 & 신은미 토크콘서트 장소제공 관련 조치요’라는 메모가 남겨져 있다.(위) 11월 25일에는 ‘長(장)’이라는 표시와 함께 ‘조계사-황선 장소제공-경위 조사 후 조치(자승)’라는 기록이 있다. (제공: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전국언론노동조합)

김영한 청와대 전 수석 비망록 공개에 ‘발칵’ 뒤집힌 종교계

청와대 종교계 사찰·개입 의혹 불거져
자승스님 언급, ‘신부 뒷조사’ 표현도
천주교인권위 “충격적… 협박용?”
민변·언론노조 “진상 규명 필요해”

[천지일보=차은경 기자] 청와대가 종교계를 사찰하고 각종 사안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종교계가 공분하고 있다. 고(故) 김영한 전(前)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서 종교계를 압박한 정황으로 보이는 메모가 발견됐다.

최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은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을 공개했다. 김 전 수석의 유족들이 언론사에 제공해 알려지게 된 비망록에는 지난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의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내용이 담겨있었다. 또한 불교, 천주교 등 종교계와 관련한 표현이 나왔다. 특히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도 발견돼, 불교계 언론은 “헌법 20조에 명시된 정교분리를 위반한 행위”라며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김 전 수석은 지난 2014년 11월 25일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추정되는 ‘長(장)’이라는 표시와 함께 ‘조계사-황선 장소제공-경위 조사 후 조치(자승)’라는 기록을 남겼다. 같은 해 12월 15일에는 ‘종북 콘서트: 국민 혼란 초래, 왜곡-북한 인권 상황’이라고 기록했다.

황선씨는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함께 지난 2014년 11월 19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내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방북 경험을 나누는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 이 토크 콘서트는 종북 논란에 휩싸였고, 장소를 대관해준 조계종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김 전 수석의 기록은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4년 9월 12일 자 비망록에는 ‘총무원장 직선-승랍 20년 vs 10년 대립’이라고 적혀 있었다. 직선제는 지난 2013년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당선된 자승스님의 공약이었다. 당시 조계종 내부에서는 투표권 범위를 두고 승랍(출가 이후 햇수) 20년안과 10년안을 둘러싸고 공방이 있었다.

비망록의 지난 2014년 6월 16일 기록을 보면 ‘불교계 자승. 실천불교승가회 13일 기자회견, 주일 오후 교구본사주지협회 성명 추진–기독교 動向(동력) 유의’라는 기록과 ‘불교계 설득→청문회 보고 성명서 내도 늦지 않아’라고 적혀있었다.

이 같은 김 전 수석의 불교계 메모와 관련해 민변과 언론노조는 “방북 경험을 나누는 행사 장소를 대관해줬다는 이유만으로 조계사를 압박했다면, 청와대의 직권남용”이라며 “청와대가 자승스님에게 직접 압박을 가한 사실이 있는지에 대한 진상 규명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또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와 관련한 언급에 대해서는 “총무원장 선출 방법은 종교계 내부 자치의 영역”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불교계가 문창극 총리 후보의 지명철회를 요구하는 등 정권에 반대하자, 청와대가 총무원장 선출 과정에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는 세월호 사건 직후 지명된 문 후보자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던 때 실천불교전국승가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문 후보의 총리 임명 철회와 청와대 인사책임자 처벌,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한 것을 청와대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조계종은 김 전 수석의 비망록과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 2014년 8월 7일에는 ‘長(장)’이라는 표시와 함께 ‘신부-뒷조사/경찰, 국정원 Team(팀) 구성 → 6급 국장급’(위), 9월 14일에는 ‘신부. 전교조 원칙대로 처리-뚜벅뚜벅, 조용히’라는 기록이 남겨져있다. (제공: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전국언론노동조합)

비망록에는 불교뿐 아니라 천주교와 관련한 내용도 속속 등장했다.

지난 2014년 7월 23일의 기록에는 ‘長’이라는 글자와 함께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선처 탄원(8/11 宣告(선고))-염수정, 자승, 김희중 대주교, 김영주 목사(7/17).-국가전복 기도 세력에 대한 선처 탄원은 곤란. 교황 관련 각종 지원에 불구. 기록으로 남겨야’라고 적혀있었다.

앞서 자승 총무원장과 염수정 추기경, NCCK 총무 김영주 목사, 남궁성 원불교 교정원장은 그해 7월 내란음모사건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9부에 “소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된 7명의 피고인에게도 우리 사회의 화해와 통합을 위해 기여할 기회를 요청드린다”며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낸 바 있다.

또 김 전 수석은 지난 2014년 8월 7일 ‘신부-뒷조사/경찰, 국정원 Team(팀) 구성 → 6급 국장급’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는 경찰과 국정원의 팀을 구성해 특정 신부를 뒷조사하라는 표현으로 읽혔다.

천주교인권위원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신부-뒷조사’라는 김 전 수석의 메모와 관련해 “아마 개인의 약점을 수집해 어떤 사람을 협박하려는 시도로 보여 대단히 충격적”이라며 “누구에 대해 어떤 내용으로 뒷조사가 이뤄졌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불교와 천주교 외에도 ‘성균관장, 자승이의 改革(개혁) 시행 스님’ 등의 내용도 등장해 종교계의 의혹 제기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어수선한 청와대가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