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눈이 산천을 하얗게 뒤덮는 날엔 꿩 몰이가 재미있다.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소리소리 지르며 푸드득 푸드득 나는 꿩을 정신없이 몰고 쫓는다. 몰이꾼에 쫓겨 다급해진 꿩은 어설프게 머리만을 눈 속에 파묻기도 한다. 이런 경우 몸은 훤히 드러나 있으므로 그냥 손으로 집어들면 잡을 수 있어 꿩 몰이는 여기서 끝난다. 어쩌면 이같이 겨울에 벌어지는 꿩 몰이와 같은 ‘권력 몰이’가 이 땅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국정농단 스캔들’에 쫓긴 대통령은 그 ‘권력 몰이’로 궁지에 몰려있다. 그는 청와대에 몸을 숨긴 것 같지만 결코 숨긴 것이 될 수는 없다. 열린사회에서 공인이 숨을 곳은 없다. 숨길수록 더 드러나며 또 더 드러내고야 마는 힘이 작용하는 것이 열린사회의 무서운 속성 아닌가.

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촛불을 들고 청와대를 압박하는 국민은 대통령이 멀쩡한 나라를 망가뜨려놓았다고 믿을 이유가 충분하기에 격분해 들고 일어났다. 다른 때와 확실히 차별화되는 점은 국민의 순수한 충정이 시위문화에 잘 반영되어 돋보인다는 점이다. 이번 시위의 큰 특징으로 꼽히지만 가족 간, 이웃 간에 벌어지고 있는 시위 참여에 대한 자발적인 촉구와 권면도 역시 그 같은 충정의 발로(發露)에서 멀지 않다. 사실 입에 담을 거리는 아니지만 이들 시위 군중에게 대통령 권력에 대한 욕심이 추호라도 있을 턱은 없다. 가끔 쌀밥에 뉘가 섞이듯 건강한 시위 분위기를 흐려놓으려는 미꾸라지 같은 시도가 없지는 않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이성을 잃지 않는 절대 다수의 참여자들에 의해 제지되곤 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외국이라면 이 정도의 대군중이 모인 시위에서 방화나 약탈, 여타 불상사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 국민의 성숙성과 집단이성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우리 스스로만 놀라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이에 놀라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정치권의 행태는 실로 실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국민이 걱정해오던 구태에서 한 치도 더 나아진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시위대의 주장에 영합하며 그것을 이용하고 부화뇌동하기에 바쁘다고 말해도 크게 틀릴 것이 없다. 그들의 임무는 국회에서 민의의 수렴으로 찾아져야지 시위 참여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시위에 열심히 참여해왔다. 짐짓 그들은 그런 체했지만 정작 국민과 사심 없는 공분(公憤)을 나누기 위해서 시위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국민은 이미 읽어두고 있다. 경향 각지의 시위 현장에 경쟁적으로 얼굴을 내미는 대권주자들이 발언권을 제지당하는 수모를 겪는 일이 없지 않다는 것이 그것을 웅변하고도 남는다. 대권주자들뿐만 아니라 어느 시위 현장이든 정치인들을 환영하는 곳은 없다. 이런 수모에도 이들이 시위 현장에 얼굴 내기를 그치지 않는 것은 무서운 권력욕을 가슴속에 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들의 존재감을 키우는 좋은 기회가 돼주는 것이 시위 참여인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것 때문에 그들은 조금도 얼굴이 붉어지는 일 없이 카메라와 대중에 얼굴이 가장 잘 비치는 자리를 골라 태연히 앉아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들을 사로잡는 목적의식은 목하 고립무원의 대통령으로부터 언제 굴러 떨어져 나올지 모를 권력을 낚아채기 위한 맹렬한 ‘권력 몰이’, 바로 그것이다.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들에게는 현재의 상황과 아울러 미래의 불가예측성에 대해 심히 불안을 느끼는 국민과 달리 이 다음 국면에 대한 걱정이나 근심이 없어 보인다, 오로지 당장의 ‘권력 몰이’에 올인(all in)하는 모습이다. 국민은 그런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경계하며 두려워한다. 정치인들의 그 같은 ‘권력 몰이’에 이용당하는 국민과 시위 군중은 그들을 위한 ‘꿩 몰이꾼’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더 말할 것 없이 그 꿩, 그들이 꿈꾸는 권력은 순수한 충정으로 시위에 나선 ‘꿩 몰이꾼’들의 수고에 의해 그 정치인들의 손으로 들어가는 것이 된다. 밥상 차리는 사람 따로, 그 밥상을 받는 사람 따로다. 우리 정치 풍토는 나쁜 사람을 바꿀 인물 대안(代案)을 찾는 일이 썩 쉽지가 않다. 마치 ‘호랑이를 피하면 늑대를 만난다’거나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적절한 비유가 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뭐 그렇다고 봐진다. 이런 불신 풍토에서 확실한 대안일지 아닐지 모르는 정치인에게 ‘꿩 몰이꾼’으로 이용당하는 것은 국민과 시위 군중에 참을 수 없는 모욕이며 굴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국민과 시위 군중의 생각이 이렇다 할 때 정치인들이 곧 호박처럼 굴러 떨어질 대통령 권력의 새 주인이 서로 자신이라고 착각한다면 어리석어도 한참 어리석은 것이 된다. 특히 야당 인사들이 그런 착각에 빠지기 쉽지만 지금의 권력이 야당에 갈 진자(振子)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믿는 국민은 꼭 그들의 생각처럼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만약 기어이 권력의 새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시위의 선동이 아니라 난국의 타개책과 수습책, 후속 단계의 치국(治國)의 방략을 제시해 자신이 바로 국민이 찾는 적임의 대안 인물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에서 제(諸)정파 및 정치인 간에 펼쳐지는 합의도출 과정에서 국민에 설득력을 발휘하는 중심적인 리더십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일이다. 사실 벌써 그렇게 했어야 한다. 대통령의 퇴진이 민의에 의해 역류가 불가능한 것이 됐다면 ‘하야’든 ‘탄핵’이든 빨리 가닥을 잡아 방법과 시기에 대해 조속히 합의를 이루고 시행해 혼란을 단축하는 일에 동참했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준엄한 책무였음에도 그들은 국회 밖 시위 현장에서 헛되이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물론 야당에만 뒤집어씌울 비난은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의 잘못은 더 먼저이고 더 크다. 대통령과 대통령의 호위무사나 친위대처럼 소인지용(小人之勇)을 뽐내던 여당의 일부 사람들에게서는 여전히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난국을 타개할 결단과 스케줄이 있는지가 알쏭달쏭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면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든 아니든 그 다음 단계의 혼란과 국정공백은 수습되기 어렵다는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나. 대통령과 여당은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결단을 앞세워야 하며 야당은 당장의 ‘권력 몰이’를 지양한 ‘퇴진’ 후의 혼란에 대비하는 도량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고 안 하고는 그들 맘이지만 탐욕적인 ‘권력 몰이’보다는 그런 도량이 국민들에게 더 감동을 줄 수 있을 것만은 자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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