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들이 훼파된 사랑의일기연수원 터에서 찾아낸 세종시민기록사진들 (제공: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천지일보(뉴스천지)

기탁받은 땅에 세운 금석초 폐교되자 
충남연기군서 사랑의일기연수원 유치
신도시개발로 LH에 연수원 부지 매각

LH, 보상도 없이 연수원 내쫓아 논란 
추기경 일기 등 기록유물도 대거 유실
고진광 대표 “민간 노력 무참히 짓밟혀”

◆이주대책도 없이 강제 철거된 기록유물 보고(寶庫)

[천지일보=김지현 기자] “철거되기 전에 아이들 일기와 김수환 추기경 일기 등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는데, 얼마 안 돼 이렇게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다니 너무 허망하네요.”

지난 1일 건물마저 훼파된 사랑의일기연수원 터를 찾은 시민들이 땅 속에 쓰레기처럼 묻힌 일기장을 꺼내며 이구동성 허망함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 9월 28일 세종시 금남면에 위치한 사랑의일기연수원(대표 고진광)에 이른 아침부터 법원 집행관들이 들이닥쳤다. 법원이 통고한 연수원 이주 마감일은 2018년 9월 5일이었기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다. 집행관들은 박스에 연수원에 있던 각종 일기와 세종시민기록물들을 쓰레기처럼 담았다. 무엇을 어디에 담았는지 집행목록조차 작성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연수원을 운영해온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 대표가 저항도 해보고 자해소동도 벌여봤지만 대기하던 경찰에 의해 모두 저지당했다. 그렇게 삽시간에 사랑의일기연수원이 13년간 지켜온 100만점의 어린이 일기와 저명인사들의 일기, 세종시민기록물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후 현장에는 훼손된 일기장이라도 지켜내려는 지역민과 어린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 지난 9월 28일 사랑의일기연수원 강제집행이 진행됐다. 이후 연수원 철거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직접 훼손기록물들을 찾고 있다. 연수원에는 100만명 어린이 일기와 세종시민 기록물 등이 보관돼 있었다. (제공: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천지일보(뉴스천지)

사랑의일기연수원은 세계 유일의 일기박물관을 목표로 2003년 옛 금석초등학교(세종시 금남면 금병로 670 집현리)에 세워졌다. 충남 연기군 차원에서 유치했으며, 인추협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운영해 왔다. 연수원에는 100만여점의 어린이 일기를 비롯해 1만여점의 가족작품과 연기군민의 생활도구들이 보관돼 있었다. 세종시민기록물 3000여점이 보관된 세종시민기록관도 운영하고 있었다.

▲ 폐교된 금석초등학교에 세워졌던 철거 전 사랑의일기수원 앞에서 학생들이 사랑의일기연수원 보존을 촉구하고 있다. (제공: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천지일보(뉴스천지)

◆김수환 추기경‧어린이 일기‧세종시민기록도 사라져 

김대중 전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의 일기 등 기록유물의 가치가 있는 일기도 상당수 보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4년 세종시가 신행정수도로 지정되고, 다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 본격화되자 등기권자인 충남교육청이 연수원 부지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박상우)에 매각처분했다.

그러나 매매 과정에서 거주자 3명과 공익시설인 연수원에 대한 보상계획은 제외됐다. 연수원 측은 LH공사와 보상을 둘러싸고 법정 소송을 진행했으나 지난 7월 패소했고, 지난 9월 28일 LH공사는 강제집행을 진행했다. LH는 5억원의 부당이득금까지 내라면서 연수원 운영을 맡았던 인추협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다 최근 연수원 측에서 개원이후 줄곧 가꿔온 은행나무 30주를 정체 미상의 사람들이 밀반출하는 과정에서 땅 속에 보관해둔 일부 세종시민투쟁기록물과 어린이 일기장마저 훼손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 사랑의일기연수원 터에서 발굴된 김수환 추기경 기념사진. (제공: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천지일보(뉴스천지)

철거 두 달여가 지나 직‧간접적으로 만난 시민과 세종시의회 관계자들은 사랑의일기연수원 철거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연수원 유치 단계부터 봐왔다는 세종시 주민 이종민(남)씨는 “연수원을 강제 철거한 것은 LH에서 100% 잘못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연수원은 우여곡절 많았던 세종시 출범 당시 투쟁기록도 보관하고 있었다”면서 “금석초교가 폐교된 곳에 연수원이 세워져 나무, 창, 샷시 등도 없었다. 시민들의 자원봉사로 매만지고 조경까지 한 곳”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충남교육청이 LH에 매각처분할 당시 거주자 3명과 공익시설이 있었다.

철거를 하려면 당연히 점유자와 상의를 해야 하는 데 안했다”면서 “관리비용도 많이 들었는데 철거 전에 적법한 절차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LH가 행정심판이 마무리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강제집행한 부분에 대해 사과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물론 명분이 안 되는 이번 일에 대해 입장표명을 해야 한다”면서 “세종시민기록관도 만들어 사랑의일기연수원에서 역사적 기록을 보존하고 관리해온 부분을 반드시 명시해서 보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사랑의일기연수원에는 세종시민투쟁기록물도 보관하고 있었다. 연수원이 철거 되기 전 세종시민기록관을 찾아 둘러보고 있는 홍영섭 세종시정무부시장 (제공: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천지일보(뉴스천지)

◆“시민이 조성한 곳, LH가 보상도 없이 내쫓아”

세종시민 방인옥씨는 “김수환 추기경 등 저명인사들의 일기는 물론 아이들의 소중한 일기와 역사를 이렇게 무자비하게 훼손한 것은 잘못”이라며 허망함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훼손된 자료를 다시 잘 정리하고 조치원이나 변두리라도 건물을 지어 가져간 일기와 모든 자료를 보관할 수 있도록 LH와 한국토지개발공사, 세종시가 협력해서 지원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종시 정무부시장 “세종시 소관 아니지만 안타까워”

홍영섭 세종시 정무부시장은 “세종시는 (신도시) 예정지 외 지역을 담당하기 때문에 신도시 예정지에 위치한 사랑의일기연수원은 세종시 소관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사랑의일기연수원이 신도시 개발로 철거됐는데 그런 것(일기, 시민투쟁기록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행복청과 LH가 (보관·전시할) 건물을 지어 세종시에 넘겨줘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여론이 좋지 않은 부분에 대해 “아이들의 일기나 시민 기록이 훼손된 부분에 대해 정서적으로 참 안타깝게 느끼고 있다”면서 “하지만 법인체(인추협)가 관리하는 곳인데 대책을 잘 마련하지 못한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준일 세종시의장은 “개인적으로 기록물을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 “LH로 넘어가면서 훼손된 많은 자료를 어떤 방법으로 복구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구적으로 세종시 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학생들에게 교육이 될 수 있는 자료로 되살려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사랑의일기연수원 철거현장에서 훼손된 일기장 등 기록물을 수거하고 있는 고진광 대표 (제공: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천지일보(뉴스천지)

◆LH “강제집행, 연수원에 사전 예고… 법적 문제없어”

LH 관계자는 이번 연수원 강제집행이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계자는 “일단 판결(7월)이 나면 하시라도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 단지 대전지방법원에서 연수원의 편의를 봐주고자 2주간의 시간 여유를 준 것이었다. 자율적으로 이전을 하라는 시간을 준 것인데 그때까지 이전을 하지 않아 강제집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2018년 9월 5일로 집행마감일이 기재된 것과 관련해서는 “집행관이 현장에서 설명을 하고 날짜를 기재할 때 실수로 잘못 기록(2018년 9월 5일)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장에 방문해 구두 상으로 조만간 철거한다고 통보하고, 통지서를 부착한 날로부터 14일 후(2016년 9월 28일)에 집행한 것”이라며 강제집행 절차에 문제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사랑의일기연수원을 운영해온 고진광 인추협 대표는 “유지 보수비만 7억여원 들어간 연수원 이전비로 2300만원을 제시했던 LH가 연수원 강제집행에는 집행비 4800만원과 보관료 1700만원 등 무려 6500만원을 쏟아 부었다”고 폭로했다. 이어 “사랑의일기연수원을 아끼고 사랑해준 국민 여러분께 본의 아니게 죄인이 됐다”면서 “연수원 부지가 마련돼 흩어졌던 자료들이 재전시 되면 소중한 기록유물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지고 연수원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 사랑의일기연수원을 13년간 운영해온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대표 ⓒ천지일보(뉴스천지)

◆“이전비 2300만원 제시한 LH, 강제집행엔 6500만원 써”

사랑의일기연수원을 운영해온 고진광 인추협 대표는 “유지 보수비만 7억여원 들어간 연수원 이전비로 2300만원을 제시했던 LH가 연수원 강제집행에는 집행비 4800만원과 보관료 1700만원 등 무려 6500만원을 쏟아 부었다”고 폭로했다. 이어 “사랑의일기연수원을 아끼고 사랑해준 국민 여러분께 본의 아니게 죄인이 됐다”면서 “연수원 부지가 마련돼 흩어졌던 자료들이 재전시 되면 소중한 기록유물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지고 연수원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고 대표는 “수십년간 시민사회 운동을 했지만 직접 당해보니 너무 기막히고 억울하다”면서 “공사인 LH가 신도시 개발로 수십 수백배의 차익을 챙기면서 민간의 노력으로 지키고 보존해온 기록물을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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