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피겨와 리듬체조의 두 요정 김연아와 손연재는 요즘 황당한 표정들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 파장이 자신들에게까지 미쳤기 때문이다. 정치인도 아닌, 스포츠 선수가 마치 게이트와 관련한 인물로 부각되니 어리둥절할 법하다.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은 최근의 사태와 관련, “아무 관련이 없다”고 강력 부인하고 있으나 풍문은 막힌 둑이 터진 것 마냥 줄줄 퍼져나가고 있는 모양새다.

진원지는 ‘늘품체조’이다. 2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시연에 참석했던 늘품체조에 둘의 참석여부를 두고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김연아는 이 시연회에 불참, 고위층에 찍혀 불이익을 당하고, 손연재는 참석해 특혜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김연아는 시연회 이후 박근혜 정부에 미운 털이 박힌 것처럼 국가에서 주는 상복이 없었던 데 반해, 행사에 참석한 손연재는 대한체육회에서 3년 연속 최우수상과 대상을 수상해 묘한 대비를 이뤘다.

광팬들의 열렬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두 선수 사이에는 불신의 골이 마치 깊은 것처럼 비쳐진다. 일부 김연아 팬들은 손연재의 SNS에 “메달권에도 들지 못하는 선수가 너무 큰 혜택을 받은 것 아닌가” “3번 연속 대한체육회 최우수선수상 받은 거 돌려내라” 등의 비난글을 올렸다. 

손연재 소속사는 풍문이 모두 근거없는 억측이나 추측성 기사에서 나온 것으로 리듬체조라는 비인기종목에 투신해 국위를 선양해온 운동선수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으나 사이버 공간상에서는 비방이 좀처럼 식지 않는다.

김연아는 늘품체조 불참 논란에 대해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 일정을 소화하느라 가지 못했다. 또 동계 종목 선수인데 이미지가 맞지 않는 행사라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공교롭게 자신의 생각이 잘못 전해져 파문이 확산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게 김연아 측의 생각이다. 김연아는 지난달 말 대한체육회의 2016 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참석, 항간에 나돌고 있는 ‘홀대설’을 불식시켰다. 김연아는 지난해에 스포츠영웅 선정에서 12명의 최종 후보에 선정됐고 인터넷 팬 투표에서도 82.3%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1위에 올랐지만 50세 이상을 후보로 한다는 선정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스포츠영웅이 되지 못했다. 올해부터 나이제한이 없어지면서 스포츠영웅이 됐다.

원래 김연아와 손연재는 이번 늘품체조 논란사태와 관계없이 광팬들에 의해 비교의 대상이 되면서 찬반시비가 자주 벌어졌다. 둘이 비인기종목인 피겨와 리듬체조에서 갑작스럽게 떠오른 스타였던 데다 빼어난 용모를 갖춰 팬들 사이에 호불호가 서로 엇갈렸다. 재벌회사인 삼성과 LG가 각각 김연아와 손연재의 스폰서를 맡아 회사의 CF 간판모델로 내세운 것도 둘 간의 자존심 대결을 부추겼다.

늘품체조 논란이 있기 전까지 수년간 달궈졌던 김연아와 손연재의 라이벌 관계는 한동안 잠잠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김연아가 2014 소치동계올림픽 이후 은퇴를 했고, 손연재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과 2015 광주유니버시아드와 2016 리우올림픽 등에서 세계 수준급 기량을 과시하며 선수생활을 이어나가 선수적인 측면에서 서로 비교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스포츠에서 라이벌은 서로를 성장시키며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데 기여를 한다. 라이벌과 경쟁하다보면 흥미와 성취도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경쟁이 과열되거나 서로를 헐뜯거나 야유하는 등 악의적인 방향으로 라이벌 관계가 이어지면 스스로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김연아와 손연재는 선의의 레이스를 펼치며 사실 순기능적인 측면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선수 가뭄 속에 갑작스레 화려하게 떠오른 둘은 피겨와 리듬체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일으키며 한국스포츠의 수준을 높여주는 데 일조를 했다.

뜻하지 않게 늘품체조 파문에 휩싸여 라이벌 관계가 다시 불거졌던 김연아와 손연재에 대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는 이제 그만 거둘 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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