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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에 농락당한 청와대… 국정 콘트롤타워 기능 상실
경제 지표 외환위기 수준… 美 금리인상 등 악재 연속
경제 사령탑 장기공백 우려… 각종 악재에 소극적인 한은

[천지일보=임태경 기자]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 농락당한 국정이 혼돈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국제통화기금(IMF)에 난타당했던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제위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최순실 스캔들로 국정이 마비 된 데다가 콘트롤타워 상실로 기획재정부 등 정책당국은 일손을 거의 내려놓고 있어 위기감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수출·소비·투자·고용 불안 등 ‘쿼드러플’ 악재에 시달리고 우리 경제가 오는 15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과 트럼프노믹스가 현실화하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탄핵 정국과 맞물려 수습책을 둘러싼 청와대와 정치권의 대치가 장기화되면서 뒤로 밀려난 경제위기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고 있다.

◆생산‧고용‧소비 등 경제지표 악화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현 경제상황을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여건”이라며 “수출감소와 구조조정 여파로 생산·고용·소득이 부진한 가운데, 미 대선 이후 대외변동성 확대와 최근 국내 정치상황에 따른 소비·투자 심리 위축 등 추가적인 하방위험이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경제정책 당국 수장의 이날 발언은 우리나라 경제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국내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주요 경제 지표는 외환위기 당시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0.3%로 전월보다 1.3%P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 5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지난 8월(70.2%)과 비슷한 수준이다. 생산과 투자가 모두 위축된 상황에서 현대자동차 파업,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 단종과 함께 태풍, 지진 등 돌발 악재로 인한 조업 일수 감소, 여기에 더해 수출 부진까지 이어지면서 공장 가동률이 급속히 둔화됐다.

특히 공장 10개 중 3개꼴로 가동이 멈췄던 1998년(69.8%) IMF 외환위기 당시와도 수치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상황이다.

제조업의 부진은 고용시장을 악화시키고 있다. 10월 제조업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11만 5000명(-2.5%) 줄어든 443만 7000명으로, 지난 7월 이후 4개월 연속 감소했다. 제조업 취업자 감소 폭도 2009년 9월(11만 8000명) 이후 최대치이다.

청년 실업률은 전년보다 1.1%p 상승한 8.5%로, 외환위기 영향권이었던 1999년(8.6%)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경기를 둘러싼 불안감이 커지면서 소비심리도 꽁꽁 얼어붙었다. 소비자들의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1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5.8로 전월보다 6.1p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 2009년 4월(94.2) 이후 7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월 대비 하락 폭도 메르스 사태로 떠들썩했던 지난해 6월(-6.7포인트) 이후 가장 컸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소비 심리 위축은 가계의 지출 감소로 이어져 내수 침체→기업 투자 감소→고용률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기업들의 체감경기도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 12월 전망치는 91.7을 기록해 기준선인 100을 7개월째 밑돌았다.

송원근 전경련 본부장은 “경기가 살아나려면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개선되어야 하는데, 불확실성 증대로 소비와 기업 심리가 모두 꽁꽁 얼어붙었다”며 “면역력이 약해지면 사소한 질병에도 크게 고생하듯,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기업 환경을 위축시키는 작은 요소도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손 놓고 있는 정책당국

상황이 이런데도 최순실 사태에 휘말린 경제정책 당국은 손발이 묶인 채 제대로 대응하지 못 하고 있다.

경제부총리 후보에 임종룡 내정자가 선정됐지만 야당의 반대로 인사청문회가 물 건너 가면서 경제 사령탑 장기 공백에 대한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청와대 시스템이 사실상 무너진 가운데 유일호 부총리가 어정쩡하게 경제 수장의 위치를 사수하고 있지만, 갈팡질팡하는 경제팀이 제대로 된 정책을 펼 것이란 기대 자체가 무리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상목 1차관이 청와대 근무 시절 미르재단 설립에 관여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이 최 차관 집무실까지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는 그야말로 비선실세 농단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내년도 나라 살림살이인 예산안 처리시한은 당장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모든 사안을 블랙홀처럼 빨아드린 최순실 사태로 예산안 심사를 간신히 이어갔지만 누리과정 예산과 세법개정안 등을 놓고 여야가 견해차를 보이며 충돌하고 있어 정부는 자칫 법정 처리시한을 넘겨 성장동력을 잃고 있는 한국경제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지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은도 경기 악화에 대한 부담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금리 인상과 국내 가계부채 문제로 기준금리 조정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도 성장률 목표치인 2.8% 달성도 어려워 전망치 하향 조정도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발(發) 불안요인은 이미 금융시장에서 나타나고 있어 한은의 통화정책 대응에도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미국 차기 행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기대로 달러 가치가 급상승하고 채권 금리도 급등해 한은은 국고채 1조 2700억원 어치를 직접 매입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긴급 처방에 불과할 뿐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한은이 지난달 29일 공개한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은 최근 경기 흐름에 대해 4분기 실물경제 성장률 실적치가 전망치를 다소 하회할 위험이 높아진 가운데 내년도 전망의 불확실성도 확대돼 사전 전망치에 미달할 위험이 커졌다고 경고음을 냈다.

대부분의 위원은 “미국 대선과 최순실 사태 등 예기치 못한 대내외 불확실성 요인들의 전개과정을 면밀히 점검해나가야 한다”며 “여러 지표를 종합적으로 주시하며 통화정책의 적정성을 지속적으로 재확인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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