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정치의 현주소는 ‘타락’ 그 자체로 이미 바닥을 쳤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분노와 실망을 넘어 탄식, 허무, 수치, 좌절감과 함께 인내의 한계를 느끼며 어쩌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한다. 우리의 수준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알게 해 줬으며, 이제 그만 부패한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를 건설해야 하는 당위성을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참혹한 정치 현실을 가져온 데는 분명 원인이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문제의 원인을 모른다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따라서 중요한 건 사태의 원인을 찾아 분석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우리가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며 우리의 숙명이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정치와 종교의 공생과 기생관계다. 즉, 정치와 종교는 본연의 사명과 역할을 저버린 채, 종교는 정치에 기생하고 정치는 종교에 기생해 권력과 명예와 돈을 좇는데 반드시 필요한 공생의 관계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헌법 제20조 2항에는 ‘정치와 종교는 분리한다’고 명문화 돼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입법자와 집행자들이 앞장서 법을 불법화시키는 무법천지를 만들어 왔고, 오랜 세월 국민들은 지켜봐야만 했다. 타락한 종교는 타락한 자신들의 거짓을 정당화시키는 수단으로 정치권력이 필요했고, 세상의 거짓 정치는 권력욕에 눈이 멀어 타락한 종교에 표를 구걸해야 하니 세상은 요지경이 될 수밖에 더 있었겠는가.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신사참배, 유신지지, 5공 나팔수, 오늘날 정권마다 물 타기로 이어온 역사가 산 증인이다.

종교의 덕목은 권력과 명예와 돈을 금기시 하고 있다.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던진 일성이 “낮아지라”는 것이었다. 신앙을 잘한다고 자고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의 손을 들어줬으며, 가장 높은 곳에서 왔어도 가장 작고 낮은 세리와 병든 자와 약한 자들과 함께 했으며, 공생애 기간 오직 구원과 영생이 약속돼 있음을 알리다가 자기의 몸까지 희생했다. 사도인 바울 역시 “돈은 일만 악의 뿌리다”고까지 했다. 석가는 자그마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도 있었지만 왜 사람이 나서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는지를 깨닫고자 조물주를 찾아 나섰다. 조선시대 유학자 남사고는 왜 세상에 흥망성쇠가 있어야 하는지를 알고자 도의 길을 택했다. 이것이 바로 종교며 도(道)다.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영성(靈性)이며, 이 영성으로 인해 인간은 누구나 종교성을 가졌으며, 그 종교성이 오늘날 지구촌 대부분의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를 찾고 나아가 신을 찾게 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조물주가 지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도 ‘만물의 영장’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의 욕심으로 인해 종교의 타락을 가져왔고, 종교의 타락은 정치의 타락을 견인해 온 주범이 돼, 정교분리 대신 정치와 종교가 섞여 진흙탕 세상을 만들고 말았으니 비정상이 정상이 된 오늘의 이 비참한 현실이다.

요즘 나라 안팎을 휩쓸고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그 이면에는 어김없이 종교의 추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농락당한 박 대통령은 최태민이라는 사람의 아바타가 되어 지금 이 순간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보인다. 신학도 목회 경험도 전무했으나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의 조모 목사라는 사람에게 일금 10만원을 주고 목사 안수를 받고 목사자격증을 받았다. 이 가짜 목사 자격증 하나가 ‘대한구국봉사단’ 후에 ‘새마음봉사단’이라는 봉사단체를 창설하는 ‘씨’가 됐고, 온갖 이권개입과 횡령·사기 등의 권력비리로 이어졌으며 오늘날 국정농단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각종 보도와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또 하나의 원인이 있다면 지도자들의 무식과 무지다. 정두언 전 의원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안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인기만 있으면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그릇된 정치문화가 오늘의 타락한 세상을 만든 것이다. 옛 성인들이 남긴 어록을 만나보자. 공자는 논어를 지으면서 그 첫머리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C 不亦君子乎)”라 했다. 이는 배우는 것을 즐겼고, 자신의 학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을 찾아 다녔고, 비록 세상에 뜻을 펼치진 못했지만 그래도 만족한다는 의미의 글이며, 공자가 평생 군자가 되기를 힘썼음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율곡은 격몽요결을 통해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학문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막히고 소견이 어두워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했으며, 누구나 군자가 되기 위해 뜻을 세우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일렀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게 학문이며 나아가 학문의 깊이다. 그 학문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고 정신을 지배한다.

땅의 학문이 중요하다면 하늘의 학문 즉, 종교는 어떠하겠는가. ‘천지차이’라는 말처럼, 특히 종교지도자들이라면 하늘의 학문인 종교를 알기에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 성서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했다”고 했으며, 말라기 선지자는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고 했다. 결국 정치·종교지도자들의 무지가 한 시대의 마감을 가져온 것이다.

‘목불택조’라는 말도 있다. 나무가 새를 택하는 게 아니라 새가 나무를 택한다는 얘기다. 정치나 종교에 있어 지도자나 정당이나 종교조직이 국민이나 신앙인이 스스로 찾을 만한 조건을 갖춘다면 왜 찾지 않겠는가.

이제 섭리 가운데 찾아온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어둠에서 깨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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